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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노무현이 죽었다. 조갑제를 비롯한 쓰레기들의 이야기를 빌자면 '자살'이다. 맞다. 비록 그의 죽음 시점에 경호관들이 거짓 진술을 했다는 의혹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가 스스로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렸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듯 하다. 자살이 맞다.

노 무현을 싫어하고 저주했던 자들은 바로 이것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을 부각시키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의미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자들은 그저 노무현의 자살을 부각시키며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냈던 자가 자살이라니 말이 되는가? 결국 자신의 부정부패를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라지게 만들고 싶었던 것 아닌가? 하는 꼴이 열사니 뭐니 하며 스스로 목숨 끊었던 과거의 자들과 뭐가 다른가?" 라고 말이다. 사실 조갑제 류의 인간들은 철퇴를 맞을까 겁이나 말을 못했겠지만 "노무현이나 박종철이나 이한열이나 뭐 다를 게 있나? 한결 같이 멍청하게 목숨이나 끊은 놈들!"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들도 알겠지, 그 따위로 이야기했다가는 자신들의 지지자조차 고개를 돌릴 것이라고.


어쨌든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무현의 죽음을 전해 들은 지난 5월 23일 아침 7시 30분, 한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386세대의 신화가 끝났구나' 노무현의 죽음으로 386 세대가 그토록 바랬던 소위 '진정한 민주주의 수령의 통치'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386 세대는 나보다 10~5세 정도 앞선 세대다. 내 누님 세대 정도다. 그들은 교복 세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교조 세대도 아니다. 그들은 사회 생활을 할 즈음에 1987년 6월 항쟁을 경험한 세대거나 그 이전 세대다. 그러니까, 현재 40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가 386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들의 선배라고 볼 수 있고 또한 그들이 지지하고 염원했던 시절을 같이 꿈꾸었던 사람이다.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4.19 세대라고 볼 수 있고 그래서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386 세대에게 그야 말로 '꿈의 실현'이었다. 자신들이 목숨 받쳐 받들 수 있는 대통령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노무현은 수령(首領)이었다.


여기까지 내 글을 읽은 사람은 이미 이해하겠지만 여기 표현하는 '수령(首領)'은 사전적 의미의 그것이 아니다. 맞다, 북한에서 이야기하는 바로 그 '수령'이다. 노사모를 비롯하여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열렬히 환호했던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을 그들의 수령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북한의 '수령'에 대한 많은 글을 읽어 보았고 대학을 다니던 시절 3년 동안 '수령'이란 단어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공부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단어의 의미는 모호하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나는 '수령'이라는 단어를 가부장적 권위와 아버지의 친근함 그리고 친구로써 순수함을 가진 어떤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수령'이라는 단어는 이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가 있다.

' 수령'은 또 다른 의미에서 모든 것에 대한 보호와 끝없은 믿음이다. 수령이라는 의미를 가지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항상 버리고 또한 항상 자신의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 어떤 순간이 아니라 항상 그런 마음 가짐을 유지하고 결정적인 순간 또한 그 믿음이 유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수령'은 단순히 어떤 정치적 지도자가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걸고 가족적인 정치적 관계를 유지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수령'의 헌신성을 길게 설명할 수있지만 영화 <인스팅트(instinct)>를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고릴라 '실버백'이 왜 인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향해 뛰어 드는 지 이해한다면 '수령'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는 노무현의 죽음을 고릴라 '실버백'의 죽음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실버백'은 고릴라가 아닌 주인공(안소니 홉킨스 분)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인간 무리로 뛰어 들어 스스로 죽는다. 그러나 결국 '미국민'인 주인공은 자국으로 공수되고 정신병동에 갖힌다.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이 영화가 얼마나 노무현의 죽음과 닮아 있는 지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노무현은 386세대의 아이콘이었다. 386세대, 그러니까 당시 30대이면서 80년대 대학,사회생활을 했고, 196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의미한 그 단어에 '노무현'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미 늙어 버린 김대중과 또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386세대에게 '노무현'은 시대의 아이콘이자 형님이자 친구이자 또한 '수령'이었다. 아마 노무현도 그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 같다. 지난 2002년 노무현이 흘렸던 눈물이나 그가 대통령 재임 시절 수 없이 외쳤던 386 세대에 대한 지지를 보면 그가 진정 '수령'으로서 386세대를 바라 봤음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북한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수령'이 되지 못했다. 될 수 없었고 되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결국 그는 자신을 대통령 자리까지 올려줬던 386세대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갔다. 아마도 그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대통령 직을 그만 두고 봉하 마을로 내려가 상생의 정치를 꿈꾸던 짧았던 10개월이 아니었던 가 싶다. '수령'으로서 자신의 직함을 버리고 그냥 아버지로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봉하 마을의 주민으로서 살았던 그 짧은 시절이 아니었던 가 싶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고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시점이 되자 노무현은 '수령 노무현'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강요받게 된 것 같다. 소수의 지지자와 극심한 압박감은 그가 선택하지 않았던 '수령 노무현'의 마지막 길을 걷게 한 것 같다. 결국 그는 '수령 노무현'으로써 삶을 종결햇다.

보라! 그가 죽자 얼마나 많은 자들이 그를 위해 고개를 숙였는가? 보라! 그가 자신의 자존을 지키자 얼마나 많은 자들이 그를 지지하지 않았음을 후회했는가? 보라! 그의 시신이 한 줌의 재로 변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는가?

다 거짓이다. 386세대의 '수령'으로서 노무현은 이미 2002년에 끝났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노무현은 수령으로서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 그러나 사람들 특히 386세대들은 노무현이 여전히 자신들의 '수령'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그런 바람과 달리 386세대들은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곧장 자신의 생활로 돌아갔다. 그 이후 노무현은 외로웠고 그 많은 공격을 스스로 견뎌야 했다. 386세대가 뽑았던 대통령 노무현을 그들은 지켜주지 않았다. 개새끼들.


노무현은 죽었다. 다시 살아날 수도 없고 노무현의 죽음이 더 이상 미화되거나 또 다른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도 없다. 노무현의 죽음과 함께 386세대의 꿈도 끝났다. 그들의 신화도 끝났다, 완전히. 그들이 '수령'이라 믿었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 가장 많이 비판하고 욕했던 노무현이 죽음으로써 386 세대는 그들의 신화를 스스로 버렸다. 386 세대가 지금 노무현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은 대부분 자신의 추억과 기억과 절망에 대한 탄식일 뿐이다. 자신들의 신화에 대한 아쉬움 뿐이다. 노무현이라는 신화에 대한 애닳음 뿐이다. 그들은 노무현의 죽음이 슬픈 게 아니라 자신들의 아름다운 신화가 사라진 것이 슬픈 것이다. 씨발놈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움과 함께 386 세대의 비겁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노무현을 위해 죽은 자 어디 있는가? 그들은 그저 노무현을 아이콘으로 만들고 존경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차라리 노무현을 좋은 아저씨, 할아버지로 기억하는 고딩들의 울음이 반갑다. 노무현의 영정 앞에서 통곡하고 울부 짖으며 그를 그리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왜 지키지 못했는가? 대통령이라서? 대통령은 공직이라 지키지 않아도 되었나? 그냥 욕하면 되었나? 니미랄 경제가 그토록 중요했나?


이런 말 하면 안되지만 나는 노무현의 죽음이 반갑다. 첫째, 그가 더 이상 자신의 이상과 괴리된 세상에 살지 않아도 되니 반갑다. 둘째, 그가 싸워서 절대 이길 수 없는 개 엿 같은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의 세상에서 고통 받지 않아 반갑다. 셋째, 오리 키워서 유기농으로 농사 지어봐야 결국 빚만 지고 말텐데 농사 지으려고 노력하시려니 걍 편한 세상에 사시는 게 반갑다. 아...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그가 살아서 웃음 지으며 우리를 만나는 모습보다 더 행복한 게 있겠나. 그가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의미에서 그의 죽음은 반갑다. 개 쓰레기 같은 386 세대의 버리고 싶은 끄나풀에 묶여 있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저주하고 자신을 거부했던 그 따위 사람들이라면 버리는 게 낫다.


" 노무현님, 당신도 아시잖습니까. 당신이 유명을 달리 하셨을 때 가장 먼저 달려 온 사람들이 누굽니까? 봉하 마을의 주민들이었고, 대구, 부산, 진주, 포항에 있던 당신을 생각하던 경상도 깽깽이들 아닙니까. 그리고 한참 지나서야 쓰레기 같은 정치인들이 왔죠. 뭐 돌아가신 당신은 잘 모르시겠지만 현실은 그랬습니다."


386세대의 '정치적 수령'이었던 노무현은 갔다. 그와 함께 386 세대의 정치적 역정도 끝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정치적 아이콘으로 내세웠던 노무현의 자살과 함께 386 세대의 정치적 의미 또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더 이상 혁신과 과거의 노력은 의미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386세대 니들한테 더 이상 노무현은 모범이 아니라고!"


난 91학번이다. 1991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내 이전 세대가 386 세대다. 내 선배들 그러니까 386 세대라는 형님 누님들에게 묻고 싶다. 노무현의 영정 앞에서 그토록 서럽게 울던 형님, 누님들에게 묻고 싶다.

"노무현을 누가 죽였나??

일단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386 세대라는 인간들이 해 줘야 할 것 같다.

당신들이 대답하면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 지 우리가 하겠다.
노무현을 그저 좋아했던, 노무현 아저씨, 노무현 할배를 좋아했던 우리가 대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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