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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GPS Logger를 이용한 취재 로드맵

오늘 한 일간지 웹 사이트의 기획을 하는 분과 만났다. 현재 웹 사이트에 대한 이야기와 새로운 수익 모델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몇 가지 새로운 웹 서비스를 알려줬다. 후반부에 이야기했던 한 아이디어를 정리해 본다.






일단 이 아이디어는 날밤님에게 바친다. 몇달 전 그가 GPS Logger를 사용한 웹 서비스를 만든 후 상담 요청을 해서 만난 적 있는데 그 때 했던 이야기를 이번에 써 먹었기 때문이다.



1. 이야기의 출발

컨설팅을 받으러 온 한 일간지 웹 사이트(이하 신문사닷컴)에서 새로운 포맷과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투자할 금액도 그리 많지 않고 현재 운영 중인 웹 사이트의 방문자도 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도 자원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다량의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니 그 자원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혁신은 해야 한다. 이럴 때 동네 북처럼 거론되는 웹이다. 웹은 싸니까, 웹은 쉬우니까, 웹은 혁신적이니까... 기타등등의 이유를 붙여 웹을 통해 큰 비용을 쓰지 않고 효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길 원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요구를 받아 들여야 한다.

한탄스러운 상황에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적은 비용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효과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다. 이럴 때는 문제 의식 자체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2. 딜레마

문제는 '비용을 가급적 쓰지 않고' 또한 '현재 상태를 유지하며' 게다가 '혁신'까지 하고 싶다는데 있다. 경제학적으로 딜레마다. 투입되는 자원이 없는데 산출물의 질이 높아지는 경우는 비리나 삽질이 연루된 경우 외엔 별로 없다. 따라서 비용을 가급적 쓰지 않고라는 전제가 틀렸다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질문을 바꿨다,

"소요되는 비용에 비해 활용되지 못하는 부분을 발견하여 혁신할 수 있는 방법은?"

비용이 소요되기는 하지만 결과물이 비용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상품으로 전환될 수 있음에도 부주의나 무관심에 의해 버려지는 가치를 재 발견하겠다는 말이다. 이 지점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신문사닷컴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모든 콘텐츠의 생산자인 '기자'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많은 기자를 만나며 그들이 했던 이야기와 내가 블로그를 통해 경험했던 많은 기사 작성 사례, 신문사닷컴의 고민을 종합하여 머릿속에서 한참 굴린 끝에 이런 한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나의 기사를 쓰기 위해 기자들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움직이는데 기사에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거나 부수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좋다, 뭔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많이 움직인다는 것이 아이디어의 출발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3. 아이디어 만들기

하나의 문장을 여러 개로 쪼갰다.

- 기자가 하나의 기사를 쓴다
- 여러 사람을 만난다, 다양한 방식으로
-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동한다
- 비정기적으로 여러 곳을 이동한다
- 어떤 장소, 어떤 시간에 어떤 사람을 만난다

쪼갠 문장을 반복해서 되뇌었다. 이 문장들을 어우르는 하나의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다. 곧 하나의 아이템이 나왔다, "지도(map)" 몇 가지 다른 아이템이 떠오르긴 했지만 지도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지도에 뭘 표시해야 하지? 이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아마도 시나리오'를 사용한다. 실제 구현되기 힘들더라도 '아마도'라고 이야기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가 움직인 경로를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가 만난 사람을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의 메모를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가 쓴 기사를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가 찍은 사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에도 기자가 먹은 음식을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기자가 작성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것이다. 이런 콘텐츠가 지도 위에 매핑될 수 있다면 그것에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콘텐츠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 그 지역에 대한 코멘트와 링크
- 그 지역에 대한 사진과 동영상
- 기자가 만난 사람에 대한 추가 정보
- 기자가 방문한 지역에 대한 '동감' (나도 방문해 봤다)

좋다, 이 정도면 지도라는 콘텐츠 위에 매핑할 또 다른 콘텐츠의 방향은 대략 잡혔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도대체 어떤 기자가 취재 활동을 하며 이런 정보를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을까? 기자가 무슨 관광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기자에게 이런 정보를 일일이 기록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4. 사람에 대한 생각

내가 새로운 웹 서비스를 기획할 때 가장 먼저, 가장 오랫동안 고려하는 것은 '사용자의 편리함'이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지도 위에 멋진 정보를 기록하고 싶어도 그런 정보를 기자가 일일이 기록해야 한다면 기자에게 매우 불편한 서비스다. 콘텐츠의 제공자인 기자 자신이 불편하고 귀찮은 서비스를 이용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돈이 더 생기는 것도 아닌데 기자들이 이런 서비스를 위해 헌신할 까닭이 없다.

그렇다고 데스크(편집장)가 이런 콘텐츠를 기록하도록 기자들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기자의 본분은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것이고 뉴스를 작성하고 보도하는 것이지 그 주변의 콘텐츠를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기자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데스크는 정신이 나갔다고 할 것이다. 결국 기자들에게 뭔가 해 주길 바래서는 안된다.

그럼 포기? 아니다. 고민을 좀 더 해 보자. 기자들이 뭔가 적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바로 그 때 떠 오른 것이 'GPS Logger'다. GPS는 위성을 통해 현재 위치를 추론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GPS Logger는 GPS 기록을 저장하는 작은 기계를 말한다. 작은 MP3 플레이어 정도 크기의 GPS Logger를 켜고 이동하면 이 기계는 각각 다음과 같은 정보를 기록한다,

- 현재 위치, 시간, 이동 속도, 고도

게다가 이 기계 중 싼 것은 몇 만원도 하지 않는다! 비싸봐야 10만원이다!




5. 서비스 구현

기자들에게 GPS Logger를 주면 된다. 가방에 넣고 다니라고 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회사에 돌아오면 GPS Logger를 아르바이트생에게 던져 주라고 이야기하면 된다. 아르바이트생은 GPS Logger를 컴퓨터에 연결해서 기자가 움직인 경로를 컴퓨터에 저장한다. 기자들에게 직접 서버에 GPS Logger를 업로드하라는 것은 가혹하다. 아르바이트생을 쓰자. 물론 땡땡이를 친 기자라든가 사생활 보호를 주장하며 찜질방이나 안마를 한 기자들이라면 직접 입력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그럼 구멍난 시간은? 어쩌면 이 서비스는 신종 기자 감시 시스템이 될 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데이터는 지도 서비스에 매핑되어 기자의 하루 경로를 지도 위에 표시하게 된다. 나중에 지도에 접속한 기자는 그 시간대에 만난 사람들을 직접 입력할 수 있다. 기자들은 자신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의 의미로 지도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며 나중에 이 정보는 기자들의 '취재 수첩'으로 동작한다. 이 정보 중 일부는 사용자에게 공개되고 이 서비스는 신문사닷컴 메인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노출된다,

"Repoter's Road Map"



6. 그림 그리기

이야기를 하는 중 수첩을 꺼내서 웹 사이트의 구현 모습과 구현되어야 할 콘텐츠, 개발해야 할 과제를 그림으로 그렸다. 말로만 듣고 잘 이해를 못하던 것도 간단한 그림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중에 "다른 기자들의 로드맵 보기"라든가 "관련 기사 보기"와 같은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다.

비주얼리제이션(Visualization)은 아이디어를 설득하고 구체화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매우 훌륭한 방법이다. 특별한 도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연필과 종이가 있으면 된다. (그린 그림은 귀찮아서 생략)



7. 종합적 사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걸린 시간은 2분 정도. 글을 길게 썼지만 생각하는데 걸린 시간은 몇 십초 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디어는 종합적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지 순차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종합적 사고는 '똥 누며 담배 피며 휴대전화로 게임하며 숨쉬고 눈 깜박이며 침 넘기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동시에 다섯 가지 이상의 일을 하고 있지만 똥 누는 것과 눈 깜박이고 침 넘기는 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종합적 사고로 아이디어를 내 놓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이디어를 내 놓은 구체적인 고민은 한 두 가지지만 나머지 몇 가지 고민은 부지불식 간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종합적 사고는 타고 난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이런 매쉬업(mash-up) 형태의 아이디어는 많은 토론과 종합적 사고를 통해 나올 수 있다.


물론 이 아이디어는 헛점이 많다. 또한 내 이야기를 들었던 그 회사가 이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아이디어는 위대하지만 구현되지 않은 아이디어는 똥이다.

신문사닷컴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웹 서비스를 이야기한 후 그 아이디어를 관철시키기 위해 필요한 다음 과정을 말했다. "비전의 제시"와 "효과의 확신"이 그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재미있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그 아이디어가 돈이 되나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래서 아이디어는 항상 사업의 비전과 그 아이디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효과를 확신시켜야 한다. 이런 생각 또한 종합적 사고의 일부다.

나는 이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며 "Repoter's Road Map"을 API로 제작하여 제휴사 웹 사이트에 공급하고 개인 블로그의 widget으로 공급하면 신문사닷컴으로 향한 트래픽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증가하는 트래픽은 광고 수익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런 새로운 시도를 미디어를 통해 홍보하여 업계의 주목을 받고 그 주목을 광고 수익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합적 사고로 아이디어를 낸다면 아이디어 자체의 완결성을 아이디어 이상의 영역에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일반 사업의 영역이다. 만약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면 아이디어의 후반부에는 반드시 사업적 고려가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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