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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e Story

인터뷰하고 욕 퍼먹는 고급 스킬

http://www.thisisgame.com/board/view.php?id=1105980&category=103&subcategory= 

라그나로크 온라인 2를 지난 2월 22일 다시 서비스하기 시작할 즈음 개발 총괄인 전진수 이사의 인터뷰. 그라비티에서 개발한 <라그나로크 2>는 부실한 운영으로 욕을 먹다 2010년 서비스를 중단했는데 올해 2월 22일 재오픈 했다. "다시 제대로 운영해 보겠다"는 제작사의 약속과 달리 오픈 첫 날부터 임시 점검과 불안정한 서버 운영으로 게임 플레이어의 비난이 있었다. 그 와중에 개발 담당 이사의 인터뷰가 기사화되었다.

이 기사는 하나의 성지가 되어 지금도 많은 게이머와 개발자들이 분노의 댓글을 달고 있다. 다름 아니라 개발을 총괄한 전진수 이사가 언급한 아래와 같은 내용 때문이다.

<라그나로크 2> 개발팀은 야근이 많았다. 평일 야근은 기본이다. 밤 10시를 넘기는 철야도 빈번했다. 이로 인해 초반에 의욕이 넘쳤던 사람들도 지쳐서 그만두는 일이 잦았다.

 

열정적인 직원이 있었습니다어느 날 그 친구가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자신과 헤어지겠다고 선언했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저에게 물어봤습니다. 결국 안타깝지만 회사를 그만두게 됐죠또한 야근을 너무 많이 해서 신물을 계속 토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전진수 이사 역시 2년 동안 밤 10시 이전에 퇴근한 일이 거의 없었다고 고백했다. 밤 12시면 그나마 빠른 퇴근이었다.  

 

밤을 새워도 괜찮았는데 조금씩 피로가 누적되는 것 같았습니다. 첫 번째 CBT 때는 과로가 겹쳐서 입원하기도 했었죠원화팀장도 책임감이 강해 무리한 강행군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목과 허리가 굽혀지지 않았던 적도 있었어요.

 

그만큼 <라그나로크 2>에 대한 애정이 깊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장 오래된 직원은 제로딘 엔진으로 개발할 때부터 있었는데 열의가 굉장히 강합니다그 외에도 다들 어떻게든 <라그나로크 2>를 살려보려고 노력하고 있죠마케팅을 맡은 친구도 <라그나로크 2>오픈 준비만 세 번을 했다고어떻게든 이번에는 오픈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하더군요.(웃음)” 



인터뷰 기사를 읽은 대부분 사람이 "야근이 자랑이냐?", "야근해서 만든 게임이 그 모양이냐?", "개발자들의 어그로를 끌기로 작정한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전진수 이사가 그런 표현을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자신들이 야근을 불사하며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매우 노력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심지어 야근 때문에 파혼당할 뻔한 사례도 있었다고 말하며 이 인터뷰를 보게 될 독자들이 자신들의 노고를 이해해 주기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잘못이다. 읽는 사람들이 충분히 오해하게 말했다. 혹은 인터뷰어가 잘못 적었거나. 이렇게 말하는 게 옳았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야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입원을 할 정도로 피로가 쌓였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피로를 풀어 줄 수 없어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어떻게든 이번에는 오픈하겠다는 직원들의 열정을 이길 수 없었다."

이렇게 말했다면 지금과 같은 인터뷰 기사에 붙은 댓글은 없거나 적어도 지금처럼 성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전진수 이사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야근 지옥으로 몰아넣었다고 자랑스럽게 인터뷰에서 떠들어 댈 정도로 멍청하다고 믿고 싶지 않다.

물론 다른 가능성이 있다. 전진수 이사는 정말 야근으로 점철된 개발 일정과 환경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 뜻밖에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 특히 지위가 높고 자신이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자기 확신이 강하고 의욕과 책임감이 높은 사람들이 가끔 야근과 강도 높은 노동을 한 것이나 자신이 그런 환경을 만든 것을 자랑스러운 치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전진수 이사가 했던 이야기와 아주 유사한 사례가 있다. 지난 2000년 넷마블이라는 게임 회사를 열었던 방준혁 사장 (현 CJ E&M 고문)이 회사 이미지를 인터뷰하며 했던 이야기다. 당시 인터뷰 기사를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방준혁 사장이 초등학교 선생님 출신이냐?"고 질문했었다. 오래된 기사라 검색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는데 바로 기사를 찾았다. "방준혁 넷마블 출근 자"로 검색했더니 2003년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가 나온다. 기사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출근시간도 감독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에는 정각 9시부터 막대 자 하나를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밤늦게 일하느라 지각한 직원들의 손바닥을 때렸다. 장난하듯 가볍게 치는 수준이었지만 규칙 준수에 대한 사장의 의지를 전달하기에는 충분했다는 것이 직원들의 반응.

이처럼 그는 조직의 체계 유지와 규율 준수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다니는 직원들에게는 직접 꿀밤을 때린다. 톡톡 튀는 게임 기업답지 않게 사무실 벽에 ‘절대 정숙’이라는 커다란 문구가 쓰여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당시 이 기사를 돌려 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참고 있는 직원들이 대단하다." 그러나 인터뷰 전문을 읽어 보면 방준혁 사장은 게임 회사라는 특성 때문에 직원들의 생활 리듬이 깨지고 그런 식으로 불규칙한 생활을 하며 좋은 게임을 개발할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그런 행동 - 자로 손바닥을 때리고 꿀밤을 주는 것 - 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 요즘 이런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면 전진수 이사보다 더 큰 이슈가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 시절엔 SNS도 없었고 블로그도 겨우 만들어질 즈음이었다. 

독자들이 인터뷰 전체를 보지 않고 에피소드에 집착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인터뷰어가 제대로 인터뷰 내용을 전달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전진수 이사도 방준혁 사장도 정말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언급한 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좋고 나쁘냐 문제가 아니다. 주변 사람들 특히 부하 직원들이 힘들어 하는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보스와 일하는 것은 아주 불행한 일이다. 목표 달성이 과정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걸 인정 못 하는 보스들이 의외로 많다.


그저 인터뷰 과정에서 흥미로운 에피소드라고 이야기한 것인데 독자들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라고 비난을 퍼붓는 그런 예라고 믿고 싶다. 오해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