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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e Story

실전 연봉협상 스킬

연봉 협상으로 검색하면 수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 검색되어 나온 이야기들 대부분은 다 알고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자면

- 연봉 협상 전에 자신의 성과를 수치화하라
- 과도한 연봉 인상 요구는 화를 부른다
- 연봉 테이블이 존재함을 잊지 말라
- 현상 유지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기타 등등. 이런 이야기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지만 '협상'이라는 과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연봉 협상은 말 그대로 자신이 1년 동안 받을 연봉을 고용주와 협상하는 것이다. 연봉이 무조건 올라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고용주가 "당신과 더는 계약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고 선포할 수도 있다. 반대로 여러분이 "이 정도를 안 주면 더는 회사에 다닐 수 없다"고 선포할 수도 있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이 1년마다 서로의 조건을 내놓고 협상하는 게 연봉 협상이다.

이론상 그렇다는 말이다. 현실은 시궁창이고.

시궁창인 현실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면 이렇다,

- 우리 회사는 연봉 테이블이 있다
- 니가 연봉 테이블 이상의 조건을 제시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
- 어쩔래?

대부분의 회사에서 연봉 협상은 2가지 중 하나다. 동결 혹은 근속 연수에 따라 자연 증가하는 인상분을 받아들일 것. 협상장에 앉은 것은 요식 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바로는 얼마나 유연하게 연봉 협상에 임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연봉 협상을 늘 대표이사와 했는데 몇 가지 스킬을 사용하여 만족스러운 연봉 협상을 한 경험이 있다. 그 핵심은 '급여 이외의 조건으로 협상하라'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 조정 요청

지난 일 년 간 뼈 빠지게 일했고 보스도 그걸 인정한다. 그러나 연봉은 10% 이상 올려주기 힘들다고 했다. 나도 회사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이상을 올리기 힘들다는데 동의했다. 대신 계약 조항에서 출퇴근과 관련한 사항을 변경시켜 달라고 했다. 9시 출근~6시 퇴근인 조건을 탄력 출근제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11시 이전에 출근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다. 대신 출근 시간 기준으로 퇴근 시간 또한 오후 8시까지 근무하는 것을 명시하자고 했다. 이런 때 저녁 식사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조항도 달았다. 당시 나는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곳에서 출퇴근하고 있었는데 연봉 인상을 포기하는 대신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 달라고 한 것이다. 보스는 형평성 문제가 있다며 난색을 보였다. 다른 직원들이 이상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면 회사에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유급 휴가 

또 다른 회사에서 연봉 협상을 할 때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적 있다. 나는 연봉을 동결하는 대신 2주일의 유급 휴가를 요청했다. 유급 휴가를 최소 3일 단위로 끊어 쓸 수 있도록 요청했고 제한 일수를 2주일로 해 달라고 했다. 현존하는 일주일의 여름휴가와 별도의 유급 휴가를 요청한 것이다. 보스는 한참 머리를 굴리더니 허락을 했다. 나는 그 후 2주일의 유급 휴가를 세 번에 걸쳐 사용했다. 고달픈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리프레시 휴가를 다녀올 수 있었고 보스도 나도 좋은 선택을 했다는데 이의가 없었다.


식대 

큰 회사와 달리 많은 작은 회사들은 점심 식대를 직원이 부담한다. 한 달 기준 15만 원 정도의 식대가 소요된다. 이것을 회사 경비로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식대는 일정 금액 한도에서 급여와 달리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세금 감면에 유리하다. 연봉 인상분 대신 식대를 회사에서 처리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실질적 연봉 인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유류비라든가 기타 잡비를 회사에서 처리하도록 협상하는 것도 연봉 협상의 방법이 된다.


인센티브

영업직이 아니더라도 연봉 협상 조건 중 인센티브 조건을 강화하는 것은 좋은 협상 방법의 하나다. 굉장히 특이한 조건이긴 하지만 나는 "개발자의 근속 연수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안한 적 있다. 작은 기업일수록 개발자들의 퇴사가 더욱 잦은 편이다. 보스에게 "개발자가 1년 이상 근속한다면 개발자의 연봉 대비 5%를 인센티브로 제공하라"고 제안했다. 그래 봐야 연봉 1천만 원 기준으로 50만 원의 인센티브다. 실제로 계산해봤을 때 회사에 입사한 지 1년 안에 퇴사하는 연봉 4천만 원 개발자를 위해 회사가 지출하는 비용은 3백만 원이 넘었다. 기존 개발자가 퇴사할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 퇴직금, 신규 개발자 영입을 위한 비용, 교육 비용, 기회 비용을 보수적으로 계산할 때 그랬다. 그러니 내가 개발자가 퇴사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관리하는 조건으로 개발자 연봉의 5%를 인센티브로 달라는 건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제법 파격적인 조건이긴 했지만 ,보스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퇴사하면 안 주면 그만이고 근속을 개런티로 5%의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었으니까.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연봉 협상'은 단순히 내가 받아야 하는 급여를 협상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큰 조직일수록 이런 특별한 협상을 하기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잘 찾아보면 연봉 협상에서 내가 제안할 수 있는 많은 또 다른 협상 조건이 있다. 어떤 사람은 연봉 협상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낮은 수준의 제안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협상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대신 맥북 에어와 24인치 모니터와 허먼밀러 체어를 주세요. 어차피 그것 모두 회사의 자산으로 잡히니 문제 될 것 없잖아요?"

회사가 안 받아들이면 어떤가? 연봉 협상을 매월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달라지는 수준 이상으로 재미있게 접근해 본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사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