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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사짜'에게 말려들지 않기

3주일 쯤 전의 일. 오래 전 도움을 받았던 분의 요청으로 웹 마케팅 상담을 하게 되었다. 컨설팅이라 부르긴 좀 민망하고 상담이 적절할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길래 정말 아무 생각없이 약속 장소로 갔다. 대충 어떤 일을 하고 있고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 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곧장 본론으로 들어 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웹 사이트를 보여 주며 어떠냐고 묻는 것이다.

한 20분 정도 그 웹 사이트를 보며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설명을 들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웹 사이트를 이리 저리 클릭하며 살펴 봤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두 가지 질문을 했다,

"혹시 이 사이트에 투자 했나요?"
"혹시 이 사이트 만든 분과 친분이 있나요?"

둘 다 아니라고 했다. 다시 질문을 해서 사이트에 투자한 것은 아니지만 함께 일하자고 해서 진행할 예정이고 만난 지 일주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구체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웹 사이트가 얼마나 엉망진창이며 당신이 하려는 행동이 얼마나 멍청한 일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당신을 호구로 보고 있음을 최대한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했다. 15분이 지난 후 - 15분이나 설명을 했다는 게 화나는 수준의 웹 사이트였다 - 그는 대충 이해를 한 것 같았고 그 사람과 그냥 친한 사이로 지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기 분야에서 꽤 경력이 있고 나이와 경험도 풍부한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분야의 사람들과 만났을 때 잘 속는다. '사짜' - 요즘에 배운 표현인데 사기꾼 - 들은 그런 사람들을 귀신같이 알아 낸다. 나도 짧은 인생을 살며 그런 사짜들을 몇몇 경험하기도 했다. 진정한 '사짜'들은 자신이 사기꾼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심지어 진실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뱀의 혀와 어머니의 이해심으로 여러분에게 다가 온다. 여러분이 좋아할만한 비전을 제시하며 무언가를 함께 하자고 한다. 여러분은 그런 '사짜'들과 이야기를 하며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 이건 정말 훌륭한 기회야. 게다가 내가 투자하는 거라곤 작은 시간 뿐이잖아.'

드디어 말려든 거다. '사짜'들은 그렇게 시작한다. 처음엔 여러분에게 접근하고 그 다음엔 열심히 들어 주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일단 여러분의 작은 노력을 받아 간다. 그리고 점점 더 큰 것을 요구한다. 일단 노력 혹은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아무리 조언을 해도 먹히지 않는다. '사짜'들은 먹을 게 있어야 덤벼든다. 이번 경우엔 여러분의 경험과 시간이 그 대상이다. 그리고 나중엔 그 이상을 가져가려 할 것이다. 자기 분야라면 그 '사짜'의 사기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분야의 '사짜'를 만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여러분은 그 '사짜'가 필요한 어떤 능력을 가진 먹잇감일 뿐이다. 게다가 여러분이 열정적이며 간절하며 모험적이라면 '사짜'는 그저 여러분을 툭 건드리기만 해도 나머지는 다 알아서 움직일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몇 주 전에 만난 그는 딱 그 시점 - 노력을 바치는 시점에 있었다. 나는 그에게 '사짜'와 만난 지 얼마나 되었나 물어 보았고 아직 빠져 들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래서 불필요할 정도로 자세히 그 웹 사이트가 무슨 문제가 있고 그가 시간을 투자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그 관계를 끊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아직 '사짜'의 작업이 완료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조금 더 진행된 상태였다면 아마 나는 설득하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자신의 인생을 탕진하고 싶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지 않나. 

주변에 '사짜'에 말려드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사짜'를 욕하지 않는 게 좋다. '사짜'들은 그런 주변의 반응까지 고려해서 작업을 한다. 여러분이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더 깊이 말려 들도록 이미 충분히 교육된 사람이라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낫다. 허공에 침 뱉는 조언을 하느라 내 시간마저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말려 들었는 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렇게 물어 보고 어떤 반응이 오는 지 지켜 보면 된다, "그 사이트(사업, 서비스, 아이템, 사람! 등등) 아무리 봐도 답 없는데 왜 거기에 시간 낭비를 하는 거니?"

- 니가 그 사이트를 잘 몰라서 그래

이런 식의 대답이 돌아오면 백발백중 말려든 상태니 그냥 내버려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