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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e Story

무서운 사람들 시리즈...


"무서운 개발자"의 열광적(?) 반응을 보며 무서운 시리즈를 써 보면 어떨까 잠깐 생각했다.
내가 경험했던 무서운 사람들에 대한 시리즈 말이다.

무서운 사장... 무서운 총무과장... 무서운 선생님... 무서운 3개월 군대 고참...
무서운 의사... 무서운 검사... 무서운 엄마... 무서운 아파트 경비...

그 중 가장 무서웠던 사람은 '무서운 의사'였다. 그 다음은 '무서운 변호사'였고
그리고 '무서운 컨설턴트'도 있었다. 이 3명의 공통점은 자신의 전문적 분야를
무기 삼아 아무런 설명도 없이 어떤 결론만 이야기해 주었고 내가 설명을 요구하자
아주 불쾌하다는 듯 "설명해줘도 당신이 알아 듣기는 해?"라고 말했다.

무서운 의사는 내가 몸이 아파서 입원했던 1개월 동안 내가 그저 어떤 병에 걸렸고
자신의 말만 잘 들으면 나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처방하는 약에 대해 물었지만 별 다른
대답이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 "왜 그 약을 써야 하는가? 약의 정체는 무엇인가?
투약 시간은 왜 그렇게 되는가?"라고 물었지만 그저 웃기만 했다. 하도 물어 대니 나중엔
"참 궁금한 게 많은 분이군요"라며 헛웃음을 짓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 물었고
결국 내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무서운 변호사는 내가 왜 그런 법률적 문제에 부딪쳐 있는 지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 알려주지 않았고 자신에게 일을 맡기면 해결해 주겠다고
했다. 그는 자문 비용에 1천만원과 시간당 50만원의 상담비용을 요구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주 싼거에요."라고... 나는 두려웠지만 그 변호사와 계약하지 않았고 한달 정도 관련 법률을
공부해서 결국 2백만원의 관련 비용을 지불하고 소송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던 한달 동안 내가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내가 컨설팅을 하기 전에 내가 다녔던 회사에도 자주 컨설턴트가 찾아왔다. 어떤 컨설턴트는
회사의 조직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유유히 사라졌고, 어떤 컨설턴트는 외부 자문을 하더니
어느 날부터 회사의 한 부서장이 되었고 머지 않아 내 바로 위 상사가 되었고 조금 후에
나를 해고 했다. 그 사건을 겪은 후 나는 외부 컨설턴트가 회사를 방문하면 항상 조심스럽게
대했다. 그 컨설턴트가 내 상사가 될 지 어찌 알겠는가? 특히 그가 반갑게 웃으며 내게 커피
한 잔을 하자고 할 때 나는 어쩌면 다음 주에 사장이 날 불러서 해고할지도 모르겠다는 망상에
사로 잡히곤 했다. 그건 내가 일을 잘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날이면 직원들과 함께 새벽이 되도록 술을 마시며 컨설턴트와 사장과 그 일당들을 욕했고
다음 날 숙취에 지각을 하거나 회의에 늦게 들어가곤 했다. 



무서운 개발자에서 개발자 대신 어떤 직종이나 직책을 넣어도 말은 통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글은 개발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같은 사람들, 소위 Geek나 Hacker 스타일의 개발자들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시절에 개발자들은 폐쇄적인 공간에서 개발하는 것이 당연했다. 내가
20대였던 20여년 전에도 그런 환경이 개발자들에게 일반적이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폐쇄적 환경을 즐기던 개발자들이 서로 소통하기 매우 힘들었을 수 있다. 물론 고퍼나 유즈넷
이 있었지만 지금의 인터넷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웹이 갖는 개방적 커뮤니케이션은 힘들
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이제 과거와 같은 폐쇄적인 개발 환경을 반기는 기업이나
프로젝트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거의 모든 개발 환경은 비즈니스와 고객이라는 두
주제로부터 개발자를 완벽히 분리하지 않게 되었다. 많은 개발 주제가 비즈니스와 고객의
요구에서 시작하고 개발의 주체 - 프로그래머든 스크립터든 아키텍처든 뭐든 간에 - 는
그 요구를 분석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이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우리는 두 가지 현실에서 살고 있다. 하나는 당위의 현실이고 하나는 부정의 현실이다.
내가 변화해야 한다는 당위와 그 변화가 마땅치 않다는 부정이다. 무서운 개발자는
그런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무서운 개발자에 나온 이야기에서 나는 마치 사장에게 해고를 권고한 사람으로
스스로 묘사하고 있다. 내가 뭐라고 이야기하든 결국 그 사람들을 해고하도록 종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걸 부정하고 싶지 않기에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사장은 나를
만난 첫날부터 대안이 있다면 개발팀 전체를 엎어 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2년 동안
참았고 그 사이에 개발팀과 갈등으로 인해 회사를 떠난 기획자와 마케터가 수도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개발팀에게 모두 이야기했다. 개발팀은 오히려 분노했고
사장과 그 일당의 만행(!)에 대해 내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사장에게 가감
없이 전달했다. 그리고 사장과 개발팀의 끝장 토론을 제안했다. 거의 8시간에 가까운
토론이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후 사장은 조직의 해체를 결심했다. 놀랍게도
사장은 개발팀을 자연스럽게 해고할 법률적 준비를 모두 끝낸 상태였다. 나는 사장을
설득했고 개발팀 전원에게 3개월의 급여를 지급하며 해고할 것을 권고 했다. 그리고
해고 대상이 되는 개발팀에게 관련 업무와 유사한 회사에 추천장을 썼다. 물론  그걸
거부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 받아 들였다. 그래도 내가 해고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왜냐면 나 또한 그 상황에서
무서운 컨설턴트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내 직업적 도덕성에 비춰
어떤 문제도 없었다고 믿고 있다.


p.s : '무서운 개발자'에 많은 댓글이 붙은 이유를 안다. 현실적으로 개발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 남들에게 무섭게 보인 적이 없으며 오히려
우습게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난데없이 '무서운 개발자'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무섭다'는 이유가 사실은 나쁜 행동의 개발자를 의미해서 더욱 울컥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서운 개발자든 나쁜 개발자든
그냥 개념없는 개발자들 간에 내가 이야기한 그런 식의 개발자는 늘 고객을
두렵게 만든다. 무섭다는 것이 어떤 힘이나 권력으로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라.
그 무식한 사람과 함께 달려야 하는 사람은 얼마나 겁나겠는가. 그래서
무섭다고 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