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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e Story

빠른 일처리를 요구하는 사람들

내가 회사에서 근무할 때 대개 일처리가 빠른 편이었다. 어떤 일이 맡겨지면 들어온 순서대로 즉시 처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 게 빠를 지 고민했고 모아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나중으로 미뤄두는 식으로 했기 때문이다. 컴퓨팅으로 비유하자면 차례대로 들어 온 잡(job)을 순서대로 무조건 처리하는 게 아니라 해당 잡이 얼마나 중요한 지 또는 다른 잡과 어떤 관계가 있는 지 판단한 후 당장 처리할 필요가 없다면 버프나 스택에 담아두는 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컴퓨팅과 달라서 어떤 사람은 일을 맡길 때 무조건 빨리 처리하기를 원한다. 이성적인 설명은 필요없고 내가 맡긴 일이니 혹은 내가 상사니까 혹은 내가 갑이니까 무조건 빨리 처리해 달라는 식이다. 이럴 때 문제가 발생한다.

무조건 빠른 일처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 중심적이라는데 있다. 이런 사람들은 특히 회사나 조직의 근본적인 이익이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내가 어떤 일을 빠르게 처리해야 조직의 효율이 높아진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일을 빨리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거나 요구할 때도 똑같은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자신의 일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급하게 처리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신과 조직을 함께 바라본다면 자신의 일이 늦게 처리될 수도 있고 그것이 더 나은 효율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무조건 빠른 일처리를 바라는 사람에게 다른 조직의 상황을 설명하며 우선 순위가 뒤로 밀릴 수 있다고 말하면 그들은 대개 이해를 하는 듯 하다. 그리고 묻는다,

"그래서 제가 맡긴 일은 언제 처리될 수 있나요?"

이건 마치 우선 순위가 모두 1로 지정된 일이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과 같다. 어떤 사람도 자신이 남에게 요청하는 일의 우선 순위가 2나 3 혹은 그 이하로 떨어지길 원치 않는다. 또한 자신이 맡긴 일이 스스로 하면 한 시간이면 충분한데 남에게 맡겼더니 10시간이 걸린다는 답변을 듣는다면 결코 이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모든 일에는 순위가 있기 마련이고 자신도 그 순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 위와 같은 질문 즉 내 일은 언제 처리되는 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여기서 참을 수 있는 시간이 있고 그것을 넘어설 때 이성을 상실하게 된다,

"아니 대체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가 뭡니까!"

이쯤이 되면 일 자체의 중요성은 이미 별 의미가 없다. 자신이 맡긴 일이 생각보다 늦어진다는 것을 단지 업무 중요성과 효율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평가 절하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맡긴 일의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게 되고 그것은 곧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일은 반드시 자신이 처리해야 하고 또한 어떤 일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 처리해야 한다. 자신이 일을 빠르게 처리한다고 다른 사람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한 자신의 일은 언제나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조직에게 똑같은 가치가 있을 가능성도 없다. 빠른 일처리를 요구하는 사람은 스스로 이런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인정하지 않는다면 조정과 변화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빨리 처리 부탁드려요"라고 의례히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왜 내가 언제까지 그 일을 처리할 수 있음을 듣지 못하는 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남에게 어떤 일을 맡길 때 내가 해야 할 말은 빠른 처리 요구가 아니라 "언제까지 가능한지?"라고 물어보는 것이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다,

"이 일을 처리하는데 최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요?"

어떤 일을 맡길 때 실제로 얼마나 걸리든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가장 늦게 일이 끝나는 시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일을 맡는 사람에게 자신과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늘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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