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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Insight

한국 포털의 어두운 미래


2008년 10월 현재 한국 포털 사업자에 대해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포털이 한국 IT 기업의 특성 중 하나로써 발전시켜야 한다는 관점이며 또 다른 하나는 포털에 대한 애증의 관점이다. 후자는 한국 포털의 존재를 인정하며 동시에 포털로 인해 큰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과 단체다.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단체 중 하나인 음악저작권협회는 지난 7월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운영사를 형사고소했고 지난 10월 7일 NHN과 다음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다. 음악저작권협회는 포털 사업자가 불법 음원을 단속하지 않고 방치했다며 형사고소를 했다. 이들은 포털이 한국 음반 사업을 죽음으로 이끈 주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단체 외에도 한국의 포털 사업자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는 단체는 꽤 많다. 음악을 비롯한 만화, 소설, 영화 등 각종 저작권 단체들이 포털을 통한 불법 콘텐츠 유통에 이를 갈고 있다. 이들 저작권 단체 못지 않게 각종 신문과 잡지, 방송사 등 언론사들의 포털에 악감정도 만만치 않다. 최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비롯한 몇몇 신문사는 (주)다음에 대한 뉴스 공급을 중단했다. 언론사와 포털의 갈등은 오래된 일이지만 본격적으로 언론사가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포털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다는 단체는 이들 뿐만 아니다. 수 많은 단체들이 한국 포털에 대한 애증을 갖고 있다.



포털에 대한 애정과 증오

한국 포털에 대해 악감정을 갖고 있는 수 많은 단체와 개인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포털이 밉지만 포털과 함께 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포털과 함께 하지 않으면 사업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포털에 대한 애정이 있고, 포털에 휘둘리고 포털 때문에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증오의 마음이 있다. 이것은 포털에 콘텐츠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과 개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이다.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Portal) 웹 사이트의 어원적 의미와 초기 사업 모델은 직접 콘텐츠 생산이 아니라 콘텐츠를 유통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현재 포털의 모습을 보면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10여년 전 포털 사업이 막 태동하던 시절의 국내외 포털 웹 사이트는 "링크 디렉토리(Link Directory)"를 기본으로 "검색(Search)"이 공존하는 형태였다. 링크 디렉토리는 각 주제 별로 구분된 각종 웹 사이트의 주소를 저장하고 있었다. 어떤 사용자가 대학교 웹 사이트를 찾고 싶으면 포털에 와서 그 대학교의 이름을 디렉토리에서 찾거나 검색을 하는 방식이었다. 포털은 그 링크 정보만 저장하고 있었고 사용자들은 포털에서 링크를 클릭하여 그 웹 사이트로 이동하면 되었다. 그야말로 어떤 정보를 제공하는 웹 사이트로 이동하는 관문(Portal : 포털의 사전적 의미는 관문이다)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이런 사업 모델에는 큰 문제점이 있었다. 포털은 정보를 제공하는 링크 사이트로써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었지만 수익 모델이 매우 취약했다. 기껏해야 베너 광고 정도를 붙이는 수준이었고 이런 수익 모델로는 포털 서비스를 운영하기 힘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업은 근본적으로 성장하려는 속성이 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려는 것은 대개 인간의 속성일 뿐만 아니라 사업 자체의 속성이기도 하다. 포털 사업 또한 마찬가지 속성을 갖고 있고 성장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베너 광고라는 취약한 수익 모델에 기초한 포털 사업의 문제점을 인식한 포털 사업자들은 다양한 시도를 개시한다.

2000년 즈음 국내 포털 사업자들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도했다. 하나는 포털이 포괄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 영역을 확대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다음, 라이코스코리아, 네띠앙과 같은 사업자들은 음반, 영화, 출판, 게임 등 다양한 사업 영역에 대한 투자를 통해 포털 사업의 수익성 개선에 도전했다. 반면 NHN은 조금 다른 방향을 선택했는데 소위 '검색 키워드 광고'의 도입이 그것이다. NHN은 포털을 통해 검색하는 사람들에게 '광고를 판매한다'는 관점에서 포털 사업을 진화시켰고 다른 포털 사업자들은 다양한 사업 영역에 대한 투자를 통해 포털 사업을 진화시키려 노력했다. 포털 사업의 진화 방향은 달랐지만 모든 포털 사업자는 두 가지 필요 요건이 있었다. 하나는 양질의 콘텐츠였고 다른 하나는 포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킬러 서비스(Killer service)였다. 다음과 NHN의 경우 킬러 서비스로서 각각 한메일/카페와 지식in을 만들었다. 그러나 두 기업 모두 양질의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다양한 파트너와 제휴 계약을 맺었다.

2000년 즈음에 다음과 NHN을 통해 제공되는 많은 서비스 - 구인구직이나 증권 정보, 뉴스 등 - 대부분은 무료로 제공되거나 매우 낮은 비용만 지불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혹자는 이것이 포털의 불공정 계약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명백히 잘못된 주장이다. 당시 개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 웹 사이트들은 포털을 통해 자사의 콘텐츠를 더 많은 사용자에게 보여 줄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 때문에 무상으로 콘텐츠와 서비스를 포털에 제공하는 경우가 흔했다. 실제로 포털은 이런 웹 사이트들에게 큰 이득을 줬다. 현재 연 간 매출 100백 억원의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의 경우도 포털과 제휴를 통해 거의 무상에 가까운 서비스를 공급함으로써 1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모집할 수 있었다. 포털은 자사에 필요한 서비스를 무상으로 공급받아 포털 방문자의 서비스 만족도를 높일 수 있었고 서비스 제공사는 포털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이후 포털과 관계를 청산하며 한 동안 어려움을 겪었지만 과도기를 거친 후 현재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포털과 협력 관계에 있던 모든 업체가 이 경우처럼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포털 사업자들이 고의적이며 악의적으로 자사의 이익을 위해 파트너 사업자의 고혈을 빨아 먹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이것은 마치 한국 대기업이 악덕 자본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그들이 한 역할이라곤 스스로 배불리기 뿐이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포털의 사업 구조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상적인 환경'은 어떤 의미에서 이기적인 시장 분배 요구라는 생각도 든다. 포털 사업자가 힘겹게 만들어 온 사업 부문이 안정화되고 수익 구조가 보이기 시작하자 시장의 파이를 내 놓으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특히 신문사들이 포털에 대해 주장하는 수익 분배 구조의 모순이라는 주제는 상당 부분 신문사 자체의 온라인 수익 구조 확보 실패로 인한 것임에도 포털의 사업 구조에 문제의 근본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 포털의 미래

순수하게 사업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 포털 사업은 연간 3~4조원 규모의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포털 사업을 네이버, 다음과 같은 검색 중심의 포털이 아닌 게임 포털까지 확대한다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진다. G마켓, 옥션과 같은 오픈 마켓 또한 쇼핑 포털로 규정할 경우 그 규모는 더욱 커진다. 구인구직, 증권, 뉴스 등의 웹 사이트 중 포털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사업자까지 포함한다면 한국 포털 사업의 규모는 한국 온라인 소비자 시장의 대부분에 관여할 정도로 그 규모와 영향력이 커진다. 한국 포털의 미래에 대해 예측할 때 단순히 검색 중심의 포털인 네이버나 다음만 고려한다면 그 예측은 매우 부분적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한국 포털 사업자를 다양한 주제 별 포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까지 포괄한다면 현재 포털에 가해지고 있는 각종 규제 정책의 문제점이 더욱 커짐을 알 수 있다.

최근 몇년 간 정치권과 미디어사를 중심으로 한국 포털 사업자에게 가해지고 있는 사이버 모욕죄, 실명제 도입, 신문법 개정, 게임 등에 관한 강력한 법률적 제재 조치 등은 포털 사업에 대한 지원이나 활성화보다 규제 정책이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한국 포털 사업의 경우 NHN이 코스닥에 상장되며 검색 광고라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도입한 2003년을 시점으로 사업화 과정에 돌입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 이후 5년은 특히 광고 사업 부문에서 오프라인 사업자들의 몰락과 포털의 영향력 강화로 정리할 수 있다. 우연히도 이 시기는 인터넷과 IT 사업을 중시하던 이전 정권의 집권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정권이 포털을 밀어 줬고 포털은 정권의 이익에 복무했다"는 소문까지 떠돌기도 했다. 그러했다는 근거가 어디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포털에 대한 규제 정책을 내놓은 사람이나 단체들은 한결같이 현재 포털의 문제점을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국 포털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유는 포털 사업의 성장성 한계나 한국 시장의 영세성 때문이 아니라 정치권에 의해 언제든 포털 사업 부문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포털 사업자들은 그들의 사업적 성과나 기술적 도전에 의해 평가 받기 보다는 외부 세력의 개입에 의해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포털 사업자의 해외 진출이나 기술적 진보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매우 낮고, 규제에 대한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국 포털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서비스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북미의 대표적인 웹 서비스 기업인 '구글'이 그들만의 독특한 서비스 구조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도 나름의 구조를 확보하고 있다. 한국적 상황에 맞게 진화한 사업 모델을 '폐쇄적'이라거나 '일방적'이라는 형용어로 가치 절하하는 것은 마치 자신에게 불필요하게 냉정한 한국민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 같다.

웹(WWW)은 과거 10년 전에 비해 훨씬 복잡해지고 정교해졌다. 과거에 비해 현재 웹 사이트들은 보다 높은 기술로 개발되고 있고 사용자들의 요구 수준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제 하나의 웹 사이트를 한 명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만들어 성공 신화를 만드는 것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드는데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해지고 있다. 한국에서 걸출한 웹 서비스가 지난 몇 년 간 잘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돈과 인력과 기술이라는 국가적 기반 자원의 한계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반면 오픈 소스 (Open source)나 개발자 교육에 대한 한국의 정책적, 산업적 지원 상황은 매우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포털 사업자들은 한국의 웹 서비스의 기술적 과제에 도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지난 몇 년 간 수행해 왔다. 네이버와 다음 등 주요 포털 사업자들은 해외 웹 서비스를 벤치마킹하고 한국적 상황에 적용시키기 위해 내부에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국내외 개발자 그룹을 연계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정책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를 비롯한 각종 단체의 포털에 대한 규제 정책만 강화되고 있는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 포털에 대한 정치적 관점을 버리고 접근한다면 한국 포털은 미래의 웹 서비스에 대한 선진 모델이 될 수 있다. 한국 포털은 규제보다는 더 많은 기술적 지원과 정책적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다. 지원 정책이 강화된다면 한국 포털은 지난 몇 년 간 진행해 온 자기 개선 노력과 국가와 정부가 관심갖지 않았던 웹 서비스 개발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이 몇 년 더 지속된다면 한국의 웹 서비스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가가치를 통해 새로운 사업모델과 콘텐츠,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 한국 포털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시도가 포털 사업에 대한 제재로 귀착된다면 우리는 국가적으로 의미있는 경쟁 우위 사업을 스스로 붕괴시키는 결과를 맡게 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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