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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개발자에게 주어지는 공짜 서버의 의미?

윤석찬(Channy Yun)
사내 개발자에서 서버 한대씩 나눠 준다는 모토로 오랜 기간 준비한 사내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베타 오픈했습니다. Daum의 개발자들이 창의적으로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 보는데 쓰였으면 하네요^^

다음에서 생활하는 윤석찬님의 트윗을 보고 개발자에게 공짜로 제공되는 서버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개발자를 위한 놀이터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아주 오래 전에 한 친구의 배려로 한 서버를 멀리서 사용한 적이 있었다. 거의 무제한 트래픽과 공간이 제공되었는데 admin 권한으로 접속해서 이런 저런 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쉘 스크립트를 만들면서 유닉스에 대한 공부도 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기도 했다. 나중엔 Frontpage를 사용해서 홈페이지 업데이트를 하기도 했고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컴파일하기도 했다. 서버용 프로그램을 몇 개 설치했다가 서버를 날려 버릴 뻔 하기도 했는데 매일 접속해서 이런 저런 테스트를 해 보는 게 굉장한 즐거움이었다. 그 친구가 회사를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서버에 대한 접속 권한을 상실했는데 나중에 비슷한 환경을 찾으려고 하니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서버를 임대하는 게 그리 큰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10만원 미만으로 충분히 자기만의 개발 환경을 구축하는 독립 서버를 임대할 수 있다. 굳이 회사에서 제공하는 독립 서버를 이용하지 않아도 마음만 먹는다면 독립 서버에서 뭔가 할 수 있다. 담배를 피는 개발자라면 담배도 끊을 겸 독립 서버를 임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주 구체적인 목적과 행동이 없으면 서버를 임대를 결정하는 건 쉽지 않다. 회식 자리에서 내가 거하게 한 번 쏘는 건 쉽게 결정할 수 있지만 개발자와 그/그녀 자신을 위한 '서버 임대'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의아하게 생각할 것 없다. 나만을 위한 서버는 곧 내가 또 다른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찬님의 트윗에서 볼 수 있듯 그 또한 '개발자들의 창의적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는데 쓰였으면...'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나는 개발자는 아니지만 그런 조건이라면 망설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멋진 놀이터를 만들어 놓고 놀이터의 사용 조건으로 "창의적으로 즐겁게 놀아야 한다"고 해 두면 입장하기에 망설여지지 않을까? 그럴 바에야 놀이터 주변의 공터에서 마음 맞는 애들끼리 모여서 아무런 제한없이 닥치는대로 노는 걸 선택하겠다.

오래전에 다녔던 회사에선 윈도 익스체인지 서버를 이용한 인트라넷이 있었다. 회사의 보스는 늘 인트라넷의 자연을 이용하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하자고 했다. 보스의 요구에 따라 여러 사설 게시판이 만들어졌다. 대개 "전략적 아이디어"나 "고객 응대 사례 모음" 같은 것이었고 들어가보면 몇 개의 파일이 가끔 올라오곤 했다. 그 중 가장 인기 있던 게시판은 "Get User Experiences!"였다. 거기엔 사용자 경험을 강조하는 각종 자료들이 올라왔다. 최근 유행하는 만화, 잡지, 영화, 유머, 다른 사이트의 이기글이 가득했다. 맞다, 요즘 같으면 저작권 위반으로 줄줄이 신고가 들어갈 그런 내용들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이 게시판에 새로운 내용이 없나 확인하는게 전임직원의 생활일 정도였다. 몇 달 지나자 수 천개의 게시물이 올라오게 되었고 회사 사람들은 굳이 다른 사이트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그 게시판만 보면 요즘의 트랜드를 이해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보스는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결국 공지를 통해 "회사의 자원을 낭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적절한 방식으로 회사의 자원을 이용하기 바랍니다."라고 일갈을 토하고 말았다. 그 때부터 슬슬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보스가 글을 올린 사람들과 자주 찾아와서 읽는 사람들의 근태를 추적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오래지 않아 그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사라져 버렸다.


다음에서 개발자를 위한 무료 서버를 제공하는 것은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곳이라면 좋을 것이다. 개발자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냥 내버려두는 그런 곳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그렇듯 '놀면서 일하라'는 조건이 없다면 참 좋을 것이다. 놀면서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