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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마케팅 대행과 빨래의 공통점

과거 카페, 미니홈피, 블로그에 이어 최근 몇 년 사이 트위터, 페이스북이 기업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기업 스스로 마케팅과 홍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칭 프로페셔널을 주장하는 SNS 마케팅 대행사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많다.

빨래를 널어 달라고 부탁한 아내의 요구를 충실히 수행하다 둘의 공통점이 생각났다.


1. 특별하지는 않지만 알아야 할 기술이 있다

빨래를 잘하는 기술이 있다. 특별한 것도 아니고 말로 설명해도 충분히 이해되는 가벼운 것들이다. 속옷과 겉옷을 같이 빨지 말아야 한다. 울 소재의 옷은 세탁기에 돌리다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어떤 옷은 차가운 물에 어떤 옷은 미지근한 물에 빨아야 한다. 색조가 있는 옷과 하얀 옷은 같이 빨지 않는다. 물론 이런 작은 기술이나 요령 없이 세탁기에 빨래를 몰아 넣고 돌려 버려도 된다. 대개는 그렇게 한다.

마케팅을 대행할 때 특별하지 않지만 가벼운 기술을 모른다면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친근함을 표현하기 위해 쓴 짧은 트윗 하나가 브랜드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색상의 옷을 한꺼번에 빨다가 모든 옷이 광대 옷으로 변해 버릴 수도 있다. 대행사는 규정된 것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그러니 세탁하는 작은 기술과 요령은 배우고 직접 지시해야 한다.


2. 제대로 널어야 한다

세탁기에서 건조까지 모두 시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전기 요금도 문제지만 자연 건조가 훨씬 낫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비가 오는 장마철이나 급하게 말려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서 베란다나 빛이 잘 드는 곳에 넌다. 세탁물을 널 때 탈탈 털어서 남은 물기를 제거하고 구김살이 없게 널어야 한다. 바지는 거꾸로 널어 두면 건조 과정에서 구김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냥 구겨진 상태로 널면 다 마르고 난 후 다시 물을 뿌려서 다림질을 힘들게 해야 한다. 널 때 조금 고생을 하면 다림질을 해도 쉽고 어떤 옷은 그냥 입어도 된다.

마케팅 대행사가 SNS에 올리는 글은 고객사가 보낸 글을 조금 고친 것이다. 어떤 대행사는 문학적 재능을 발휘해서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글을 쓴다. 대개의 경우 고객사가 승인한 내용을 그대로 올리거나 조금씩 나눠서 적절하게 올린다. 그러나 고객사가 원하는 것처럼 탈탈 털어서 모양을 제대로 잡아서 올리는 경우는 드물다. 제대로 안 털고 올라간 글들이 많을수록 고객사가 나중에 감당해야 할 일도 많아 진다. 처음부터 제대로 널면 될텐데 대행사의 역량에 의존하다 모든 세탁물을 다시 힘들게 다림질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3. 빨래를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

아파트 바깥에서 보면 베란다에 널린 다른 집의 빨래를 볼 수 있다. 작은 아이들 옷과 수건이 많이 널린 집을 보면 '아 저 집은 어린 아이가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이불 빨래와 커튼이 널려 있는 집을 보면 '오늘 청소를 크게 하고 있구나'라고 짐작한다. 빨간색 브레지어와 팬티가 널려 있는 집을 보면 '남편이 널었군'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빨래를 보면서 그 집에 어떤 일이 있었는 지, 어떤 사람이 사는 지 상상해 보는 건 나만 그런 걸까?

대행사가 올리는 글이든 고객사가 직접 올리는 글이든 그것이 해당 회사의 본질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객들은 충분히 상상을 할 수 있다. 새벽 2시에 올라 온 트윗의 글을 보고 상상하는 것과 오후 6시 이후엔 아무런 반응이 없는 트윗의 글을 통해 상상하는 것은 다르다. 별 반응도 없는 농담과 자기 칭찬으로 가득한 글을 보며 상상하는 것과 작지만 의미있는 회사 내부의 과제를 이야기하는 글을 보며 상상하는 것도 다르다. 널려 있는 빨래를 보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한 것이다.



남은 빨래 마저 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