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guacu ONLY

게임과 웹, 그 미묘한 만남

지난 수요일 (주)네오위즈 게임즈의 개발자의 날 행사에서 <게임과 웹, 그 미묘한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강연 주제에 대해 몇 번의 대화를 주고 받은 후 3가지 주제를 제안했는데 그 중 게임 포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주제를 하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이번 강연은 내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오랫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1년 가까이 진행했던 게임 포털 관련 프로젝트의 성과와 한계를 정리하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최초의 시간이었다. 또한 고객사와 했던 일에 대한 비밀 유지를 철저히 해야하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운 자리기도 했다.


삼성동 아셈타워 36층

발표는 삼성동 아셈타워에서 있었다. 2년 전 쯤 당시 이 건물에 있던 구글 코리아 방문 이후 오랜만에 와서 고층부 엘레베이터를 찾느라 한참 헤매고 다녔다. 36층 회의실에 도착하니 막 이전 발표가 끝난 상황이었다. 10 분 정도 기다리며 준비하신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주제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드리며 참석한 분들에 대한 소개도 들었다. 네오위즈 게임즈의 개발자를 위한 행사라서 다른 분야의 분들은 참석을 하지 않았는데 내 강연은 그 특성 때문에 기획자 분들도 참가 신청을 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몇몇 분들이 새로 오셨고 기획자들이라는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강연은 1시간 30분 정도였지만 끝나고 나니 20분 정도 더 지나 있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한 주제에 대해 너무 강조를 한 탓인지 강연 후에 참석자들의 표정이 좀 굳어 있었다. 전에 한 선배가 내 강연을 듣고 했던 이런 평가를 했던 기억이 난다,

"넌 무슨 이야기를 해도 진지해지는구나"

이번 강연은 내가 최근 1년 동안 게임 포털을 기획하며 느꼈던 것과 반성했던 것 그리고 게임 포털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게임 포털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게임 포털이 플랫폼이라면 반드시 동작해야 하는 어떤 것이 부족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혁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혁신을 위한 과제를 발굴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혁신적인 게임 포털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했지만 바람과 현실은 간극이 컸다.

2시간여 강연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게임 포털의 한계를 인정할 때 변화의 출발점을 알 수 있다. 한계를 구체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단지 새로운 것만 바라면 실제로 변화 시킬 지점을 찾을 수 없다. 게임은 웹을 이해해야하고 웹은 게임을 이해해야 한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이해하기를 멈춘다면 변화는 없다.


게임에서 웹을 보는 방법

이 글에서 다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게임 개발자들이 웹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게임 포털 프로젝트를 하며 게임과 웹의 공통점에 대해 많은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중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이 있는데 모든 웹 사이트는 게임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 공통점은 연구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되었는데 한 가지는 "복잡성과 변용 가능성"이라는 것이었다. 게임 개발자들이나 게임 기획자들이 웹 사이트를 분석하는 방법에 대한 예를 들며 DCinside와 같은 사이트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지 이야기했다.

대개의 게임 개발자들, 혹은 게임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만나 DCinside와 같은 사이트의 활성화 이유를 물으면 일반인들이 대답하는 것과 비슷한 대답을 한다. 그러나 나는 게임 개발자의 입장에서 DCinside를 이렇게 분석할 수 있다고 예를 들어 설명했다,

"DCinside는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웹 사이트가 아니다. 처음 이 웹 사이트는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정보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콘텐츠로 구성되었다. 시스템은 아주 간단했고 제로보드를 사용한 게시판으로 구성되었을 뿐이다. 게임 개발자 입장에서 이 사이트가 과거 그토록 활성화되었던 이유를 어떻게 추론할 수 있을까? DCinside는 마치 아주 간단한 로직으로 구성된 오목 게임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이트는 오목 게임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것이 아니라 검은 색 돌과 흰색 돌로 모자이크 그림을 그리든, 돌 튕겨내기를 하든, 출석 체크용으로 쓰든 또 다른 어떤 식으로 놀든 관계없는 구조를 제공했다. 그게 이 사이트가 성공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어렵고 복잡한 게임의 규칙과 기능이 제공되는 게임이 아니라 간단한 규칙만 존재하지만 그걸 응용할 수 있는 영역이 다양한 게임 말이다."

이 예를 이야기하며 네오위즈 게임즈 사람들에게 여러번 강조했던 것은 "이런 식으로 게임이 웹을 판단하는 것은 옳다"는 점이었다. 나는 게임 포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거의 1천여 개에 달하는 과거와 현재 웹 사이트를 이 관점에서 분석했고 성공한 웹 사이트들은 성공한 게임과 유사한 공식이 있었다. 모든 웹 서비스 혹은 웹 사이트가 활성화된 커뮤니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게임은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어떤 게임은 커뮤니티가 활성화될 수 없다는 근거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돈을 쏟아 붓는다면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기 힘든 게임에서 커뮤니티를 활성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생산적인 행위가 될 것이다. 콘텐츠가 사용자간 입소문, 직접 수익 모델과 광고 수익 모델 등 게임의 다양한 주제가 웹 서비스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게임과 웹의 공통점을 계속 찾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일은 나와 같은 전문 컨설턴트나 학술적인 과제가 있는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이지 현업에서 해야 할 일은 아니다. 게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게임의 입장에서 웹을 이해하는 것이 결코 틀린 행위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 전문가가 경제적 관점에서 사회문화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틀렸을까? 최초에 그런 시도를 한 사람은 막대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경제와 사회문화가 아주 다른 영역이라고 인지하던 시절에는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경제학자는 당연히 사회문화와 관련된 영역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경제적 관점에서 사회문화를 설명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논의와 논쟁, 도전이 있었을 것이다. 게임과 웹도 마찬가지다. 지금 게임을 위해 종사하는 사람들은 게임의 입장에서 웹을 설명하는게 옳은 행위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회사가 경험하고 연구했던 과제들은 그런 분석의 방법이 옳음을 증명하고 있다.


웹에서 게임을 보는 방법

게임에서 웹을 보는 방식이 정형화되고 이론적 근거가 확실한 방법을 계속 찾아가야 한다면 웹 또한 게임을 보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는 웹 스피어(web sphere : 웹 생태계)와 게임 스피어(game sphere : 게임 생태계)의 차이점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두 스피어가 태생적인 차이점이 있으며 그것은 "열린 계"와 "닫힌 계"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웹은 콘텐츠를 다양한 플랫폼에서 손쉽게 접근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웹은 어떤 플랫폼(OS나 개발 환경이나 하드웨어의 특징, 네트워크의 한계성)에서든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 있었기에 복잡한 규칙으로 완결된 세계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웹이 일상의 다양한 분야에 접목될 수 있는 것은 웹 자체가 원래 유연한 시스템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다시 말해 고의적으로 유연한 시스템을 고안하기 위해 웹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복잡한 규칙을 갖지 않는 게 콘텐츠 자체를 유통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고안되었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팀 버너스리가 쓴 다양한 글을 검색해 보라. 그가 연구자들과 함께 웹을 고안할 때 텔레비전에서 웹 서핑을 할 수 있도록 염두하고 고안했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반면 게임은 그 단어 자체가 의미하듯 즐거움을 위해 어떤 규칙에 따라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한다. 넓은 의미에서 게임을 정의하면 '어떤 규칙을 통해 즐거움을 추구'하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게임 자체는 규칙에 종속적이다. 게임 내부에서 허락되는 행동이 게임을 벗어날 때 허락되지 않는 것도 그런 게임 자체의 근본적 속성에 기인한다. 이런 근본적 속성이 있는 게임이 네트워크 게임이나 MMORPG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매우 섬세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게임일수록 보다 복잡한 규칙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게임은 이러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며 만약 그 규칙을 위배한 어떤 행동이 게임 내부에서 발생한다면 그것은 단지 "잘못된 행동" 혹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때문에 게임은 근본적으로 "닫힌 계"다. 게임은 이런 "닫힌 계"의 특성에 맞게 세계관과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사용자에게 새로운 "환상"을 부여한다. 게임은 환상계로 접근하기 위한 규칙과 세계관을 반드시 가져야 하고 그것 자체가 닫힌 계의 특성을 강하게 만든다.

웹이 게임을 이해하려면 이런 특성을 상식이 아닌 철학적 수준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웹은 열린 계이고, 게임은 닫힌 계라는 정말 상식적인 수준의 이해밖에 갖지 못한다. 그런 이해 수준에서 혁신적인 게임 포털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웹이 게임을 이해해야 게임에 맞는 웹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가슴이 아팠다

강연을 하며 계속 얼마 전 경험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내가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 이유가 내가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한 과정이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 힘차게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수렁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강연을 하며 여러 번 "컨설턴트로서 힘들었고 책임을 느꼈다"는 표현을 자주 했다. 내가 컨설턴트가 아닌 그 회사의 직원으로서 게임 포털 프로젝트를 담당했다면 아마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 되었든 못 되었든 모두 내 책임으로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컨설턴트라는 직업의 한계로 인해 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강연을 하는 중 계속 증폭되는 느낌이었다. 왜냐면 컨설턴트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제한적인데 그런 것 때문에 많은 컨설턴트들이 자신의 책임 보다 고객사의 책임을 먼저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내 책임의 영역을 희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컨설턴트가 그런 '책임감'을 이야기할 때 스스로 아마추어라고 고백하는 셈이기 때문에 또한 점점 부담이 커졌다.

이번 강연은 지난 몇 개월간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것을 털어내는 고백이었다. 나는 웹 서비스 분야 중 서비스 전략 수립과 제작, 운영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뿐 게임 자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게임을 만드는 분들에게 웹이 가지는 속성과 특성,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런 고백을 하는 자리였다. 때문에 네오위즈 게임즈의 임직원 중 내가 뭔가 특별한 아이디어나 머리를 맑게 만들어 줄 아이템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참석한 분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강연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내 이야기 중 내가 뼈저리게 느꼈던 게임과 웹의 차이점,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 강연은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나 또한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강연을 할 수 있었으니까.


강연이 끝나고

하루종일 NDD(Neowiz Developer's Day) 행사 때문에 힘들었던지 다들 피곤한 표정이었다. 더구나 강연 시간이 20분 넘게 지나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강연 후에 건물 1층에서 준비하셨던 분과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네오위즈 게임즈 개발자들이 생각하는 이야기와 지난 1년 간 시도했던 다양한 변화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사람의 생각이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었다. 나와 같은 강연자는 한 회사를 잠깐 방문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회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그런 고민을 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강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노력이 부질없는 것이 아니며 충분히 가치 있고 또한 다른 사람들도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아닐까?

기념품으로 줬던 네오위즈 게임즈 로고가 있는 USB 전자 시계가 지금도 옆에서 깜박거리고 있다. 참 고운 색깔이다. 이 USB 전자 시계는 컴퓨터에 전원이 들어와 있을 때 아래와 같이 밝게 빛난다. 그러나 컴퓨터 전원이 꺼져도 밝은 빛은 사라지지만 각종 정보는 유지된다. 사람도 그래야 할 것 같다. 항상 고민하고 항상 혁신하며 빛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러나 항상 자신에 대한 신념과 나아가는 길에 대한 믿음은 잃지 말아야 한다. 빛나지 않더라도 최소의 노력으로 정보는 유지하는 이 시계처럼 언제나 신념과 믿음 그리고 고민을 유지해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강연 발표 자료 : 강연 동영상은 2주 후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PPT, 4.3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