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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디자이너와 경영자의 인터페이스 토론

웹 디자인에 대한 상식만 있는 경영자와 웹 디자이너가 인터페이스에 대해 토론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가 수도 없이 경험했던 사례 중 하나를 표현해 본다,


경영자 : 우리 웹 사이트 좀 바꿔야 할 것 같은데...
디자이너 : 어떻게 바꾸길 원하세요?
경영자 : 내 생각보다는 실무자들의 생각이 훨씬 중요하지, 근데 내 생각은 어쩌구 저쩌구... 이런데 내 생각보다는 아무래도 전문성이 있는 디자이너의 생각이 훨씬 중요하지. 자네 생각은 어떤가 듣고 싶어.
디자이너 : ...


경영자의 자리에 상급자 혹은 다른 파트 담당자 혹은 경영자가 아닌 누군가를 넣어도 이야기는 비슷하다. 디자인에 대한 상식 정도만 있는 어떤 사람이 전문적인 영역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이야기하는 패턴이 있다. '내가 그걸 잘 모르긴 하지만 말야...'라고 서두를 시작한 후 그 다음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가 끝날 즈음이면 웹 디자이너는 거의 말을 잃기 마련이다. 왜냐면 상대방이 이미 어떤 주제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히 있고 그것을 철회하거나 수정하기 위한 토론을 할 생각은 전혀 없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 즉 상대방이 토론할 의지가 없다는 웹 디자이너의 생각이 옳은 것일까? 어쩌면 상대방은 우선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풀어낸 후 웹 디자이너의 전문적 견해를 듣고 싶은 게 아닐까? 웹 디자이너가 상대방에 대해 편견을 갖고 지레짐작한 것은 아닐까?

아니다. 웹 디자이너의 생각이 옳다. 저런 식으로 대화하는 사람은 대부분 웹 디자이너와 인터페이스에 대해 토론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지시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식의 대화 예제를 뽑자면 수 백 가지는 넘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제는 분명히 토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업무 지시를 위한 '상세한 설명'일 뿐이다. 대부분 현업에서 발생하는 경영자와 웹 디자이너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토론은 토론이 아니라 다양한 업무 지시 형태일 뿐이다. 우리 회사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을지 모른다. 축하한다. 상위 1%에 해당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은 그리 흔한 행운이 아니다. 그 회사 오래 다니길 강력히 추천한다.

나는 이런 문제를 컨설턴트로서 수없이 경험했고 나 또한 토론이 아니라 주장을 하는 경영자의 관점에서 일하는 실수를 한 바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 또한 그런 실수를 분명히 했다. 깊은 반성을 통해 나는 이런 문제가 웹 디자이너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 즉 경영자나 상급자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것은 실무 경험과 실수를 거듭한 사람의 이야기이고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웹 디자인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경영자(경영자 대신 다른 직급을 써도 된다고 말했다)가 웹 디자이너와 웹 사이트 인터페이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웹 디자이너의 입을 닫게 만들지 않고 그들과 토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뻔하고 뻔한 대답은 일단 제외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라", "먼저 이야기하게 하라" 따위의 뻔하고 뻔한 대답은 실질적인 답이 되지 못한다. 나는 매우 현실적인 답을 하고자 한다. 이 답을 실전에서 테스트해 보라. 그 결과를 확신할 수 없지만 분명 과거와 다른 방법이 될 것이며 그 결과를 공유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첫째, '기술적인 용어'로 질문하라.
현재 웹 사이트가 인터페이스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기술적으로 이야기하라. 기술적인 용어는 웹 유저빌러티나 패턴 디자인과 같은 주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술적 용어 대신 '좀 오래되지 않았나?'라든가 '마음에 들지 않아' 혹은 '고객이 싫어해' 따위의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웹 사이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왜 마음에 들지 않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기술적 용어는 어떤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둘째, 문제의 본질을 이야기하라.
이건 좀 더 기술적이며 철학적인 문제다. 현재 존재하는 웹 사이트를 승인한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이전 팀장이나 경영자였다면 아마 당신(경영자)은 매우 자유롭게 현재 사이트의 인터페이스 문제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걸 만든 사람이 바로 코 앞에 앉아 있다는 점이다. 그 웹 디자이너는 지시에 의해 그렇게 만들었을 수 있다. 그럼 현재 문제의 본질은 웹 디자이너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그것을 지시한 사람에게 있다. 때문에 현재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 웹 디자이너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쉬운 이야기같지만 현실에서 이 문제는 결코 쉽거나 가볍지 않다. 자신이 디자인한 웹 인터페이스에 대한 의문의 제기는 결국 웹 디자이너 자신에 대한 문제 제기와 다를 바 없다. 그렇지 않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웹 디자이너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경영자는 웹 인터페이스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수 십 번 반복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당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핵심적인 문제, 즉 문제의 본질이 사람의 역량이 아니라 깊은 토론과 고민이 부족했다는 것으로 주제를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종류의 웹 인터페이스에 대한 문제도 결국 웹 디자이너 자신에 대한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결국 그 웹 디자이너는 참고 일하거나 회사를 그만두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셋째, 집요하고 전문적으로 질문하라.
이건 매우 중요하고 또한 경영자가 웹 디자이너와 대화하기 위한 핵심적인 항목이다. 만약 웹 인터페이스와 관련한 어떤 질문을 하고 싶다면 매우 집요하고 전문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영자는 웹 인터페이스에 대한 상식만 있을 뿐 전문적인 식견이나 학습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확실하고 명확하고 분명하게 "그런 경영자조차 집요하고 전문적으로 질문할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웹 인터페이스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없는 경영자가 웹 디자이너에게 집요하고 전문적으로 질문하는 예를 하나 알려 주겠다.

글의 목록을 보여주는 네비게이션에 대해 경영자는 의문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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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표현된 네비게이션에 대해 경영자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경영자는 디자이너를 불러 떠들어 대는 대신 스스로 "현실에 이와 비슷한 인터페이스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경영자 자신이 웹 디자인이나 인터페이스에 대한 학습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검토하기는 힘들다. 때문에 일상에서 자신이 경험한 것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표시하는 인터페이스를 경영자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15층 건물에서 15층엔 '위로'라는 표시가 없고 1층엔 지하가 없기 때문에 '아래로'라는 표시가 없다. 사람들에게 "이 건물은 원래 지하층도 없고 16층 이상도 없어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용자는 그런 간단한 인터페이스 때문에 이 건물의 층수와 지하층이 없음을 알게 된다. 경영자는 그런 사실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왜냐면 경영자와 웹 디자이너를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경영자가 보다 현실적인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고 사용자의 요구를 잘 분석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영자 스스로 그런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바보 취급을 받을 것이다. 사실, 바보다.

경영자는 현실적인 경험에 기초한 인터페이스의 수정을 요구하고 웹 디자이너는 이것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웹이라는 인터페이스의 특이성을 고려하여 받아 들이는 토론을 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경영자와 웹 디자이너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토론 형태다.

물론 '이론상' 그렇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경영자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의외로 웹 디자이너가 토론의 대상이 될만한 경험과 지식과 통찰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매우 많다. 나 또한 이런 웹 디자이너를 수도 없이 만났다. 토론은 그래서 더욱 더 중요하다. 말도 안되는 인터페이스를 요구하는 경영자가 누구인지 판단할 수 있고, 제대로 인터페이스에 대해 요구를 해도 구현하지 못하는 얼치기 웹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지금도 능력없는 경영자와 능력없는 웹 디자이너가 서로 대충 이야기하며 대충 믿는 척하고 대충 토론하는 척하며 자신의 무능함을 서로 이해(!)하는 웹 사이트 인터페이스를 만들고 있다.

바보들의 행진이다.


어떻게 하면 되는 지 이야기를 했으니 이 글을 읽는 현업 실무자라면 한 번 도전해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그게 인생이다, 도전하고 절망하는 것. 하지만 그렇게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인생일까? 천만의 말씀! 도전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도전 과제를 찾아야 한다. 멍청한 경영자의 멍청한 요구와 얼치기 웹 디자이너의 사기성 웹 인터페이스. 그 결과를 보고 있는 당신은 무슨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대신 잠깐 호흡을 고르고 생각해 보라. 만약 다시 도전을 해야 한다면 무엇을 위해서 해야 하겠는가?

당신들이 누구를 위해 웹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 우리의 웹 서비스를 이용하며 즐거워하고 감사하며 또한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바보와 얼치기와 싸우는 이유는 오직 그것 때문이다. 우리가 만든 웹 서비스 때문에 인생의 작은 부분이 변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당신이 경영자라면 내가 한 조언을 좀 더 생각하며 경영하라. 당신이 웹 디자이너라면 내가 한 조언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인터페이스의 기본에 대해 더욱 열심히 공부하라. 당신이 그런 경영자와 웹 디자이너를 목격한 사람이라면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당신 스스로 변화하라. 노력없이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