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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서비스 기획자의 자질

웹 서비스 기획자는 웹 사이트나 웹에서 구동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인터페이스, 고객 관리, 서비스 운영 - 이것을 웹 서비스라고 한다 - 등을 기획하는 사람을 말한다. 나는 지난 몇 년 간 '웹 기획자'라고 흔히 불리던 직종을 굳이 '웹 서비스 기획자'라고 불러 왔다. 과거의 웹 기획이 갖는 문제점을 거론하고 현재 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은 웹 기획자가 아니라 '웹 서비스 기획자'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웹 기획자와 웹 서비스 기획자의 차이점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적절한 시점에 아주 깊숙이 거론하겠다.
 
웹 서비스 기획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과거 웹 기획자에게 필요한 자질을 포함하여 그 이상의 무엇이다. 웹 기획자의 자질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웹 서비스 기획자에게 있다. 웹 기획자는 웹 서비스를 기획할 수 없다. 단지 웹 사이트를 기획할 뿐이다. 좀 더 실무적으로 말하자면 웹 기획자는 스토리보드를 쓸 수 있지만 서비스의 구조와 시스템을 기획할 수 없다. 서비스의 구조와 시스템을 기획하려면 웹 서비스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둘은 "서비스"라는 단어의 차이만큼 매우 큰 차이점이 있다. 마치 영장류와 인류의 차이처럼.

그 차이점은 무엇인가? 국제적인 모 컨설팅 회사에서 자주 써 먹는 이론에 의하면 "통찰력(insight)"의 유무다. 그것이 있으면 웹 서비스 기획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논란이 될만한 이야기다. 마치 동일한 그룹의 프로그래머의 역량이 최대 20배까지 차이가 난다는 주장과 비견될 정도로 논란이 있는 말이다. 아마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많을 것이다. 어떤 프로그래머 그룹을 조사했더니 가장 훌륭한 업무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최대 20배까지 존재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이것은 소문이 아니라 실제로 문헌 조사와 학술적 검토를 통해 증명되었다. 기획도 마찬가지다. 100명의 기획자를 모아서 무언가를 기획한다고 사상 최고의 웹 서비스가 나오지 않는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국내외 웹 서비스를 생각해 보라. 그런 서비스가 대규모의 웹 기획자 때문에 만들어 졌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블로그 관련 서비스만 봐도 네이버 블로그, 이글루스, 태터툴즈, 올블로그 중 처음 시작할 때 대규모의 웹 기획자들이 모여서 만들었다는 근거가 있는가? 도움을 준 기획자 운운할 필요 없다. 핵심은 한 명 혹은 한 명과 그를 도와주는 또 다른 한 명 정도였다.

나는 엘리트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창조적 역량은 극소수에게 존재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엘리트주의는 엘리트가 아니면 쓸모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지만 내 이야기는 다르다.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라는 말이다. 성공적인 서비스를 만들려면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는 엘리트, 굉장한 바보 혹은 천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그냥 대충 똑똑한 사람들 수백 명이 모여서 웹 서비스를 기획해봐야 그저 그런 서비스가 나올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웹 사이트를 기획하는 정도라면 웹 기획자로 충분하다. 뭐가 시스템인지 뭐가 코드인지 뭐가 니드(need)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정도의 웹 기획자 정도만 있어도 99%의 웹 사이트는 만들 수 있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1%의 다른 웹 사이트다. 1%의 다른 웹 사이트가 바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와, 굉장하다!"라고 소리치거나 "이건 변화의 시작이다"라고 떠들어 대는 그런 사이트, 혹은 웹 서비스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기획자는 그냥 웹 기획자가 아니다. 웹 서비스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신이 만드는 웹 서비스가 어떤 변화를 가져 올 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없고 돈 주고 살려고 해도 살 수도 없다. 어디 있는 지 알아야 사든가 말든가 하지.

웹 서비스 기획자의 자질은 이런 것이다. 없는 것을 만들어 내고, 남이 뭐라하든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관이 있고, 변화의 핵심을 뚫어 내는 통찰력.

진정한 웹 서비스 기획자는 남들이 이미 기각한 어떤 사실을 다시 돌아 보고 포기의 이유가 정당한 지 확인한다. 어떤 수익 모델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지만 그것 때문에 수익 모델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다시 그걸 극복할 방안을 내 놓으면 되니까.

진정한 웹 서비스 기획자는 자신이 속한 회사나 조직이나 지인들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조언은 늘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주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내가 기획하는 웹 서비스는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의 문제임을 분명히 인지한다. 자신의 사회적 생명을 걸고 기획할 수 있는 웹 서비스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라고 믿는다. 급여는 다음이다.

진정한 웹 서비스 기획자는 변화는 당연한 것이고 변화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야말로 허무한 망상임을 이미 알고 있다. 블루오션과 레드오션이 얼마나 무의미한 잡설인지 알고 있고 내가 만드는 것이 블루오션이면 그에 맞게 대응하고 레드오션이면 모든 경쟁자를 날려 버릴 각오로 임한다. 어줍짢게 블루오션만 찾아서 쉽게 살려 하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기획하고 만드는 웹 서비스는 결국 레드오션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간 일하며 지금까지 이야기한 웹 서비스 기획자가 되려고 스스로 노력했다. 많은 회사를 경험했고 과오와 은원을 반복했다.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나는 그 많은 회사를 다니며 끊임없이 배웠고 그 분들 - 내 회사의 동료와 상사와 사장들 - 의 인내심 덕분에 지금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 분들은 나를 해고 했고, 나를 모함했고, 나를 배척했다. 그러나 또한 그 분들은 나를 이해 했고, 나를 위로했고, 나를 격려했다. 아마 내가 좀 더 겸손했다면 어떤 회사에 꽤 오랜 기간 근속하며 일했을 것이다. 과거 내가 자주 회사를 떠난 이유는 더 많은 것을 더 빨리 배우고 싶은 욕망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 짧은 인생에서 배운 웹 서비스 기획자의 자질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걸 다 합치면 한 삼십년은 배워야 웹 서비스 기획자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몇 년전에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경우 배우는 것보다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 급격히 성장한다는 것이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내 인생에 대해 많을 것을 순식간에 알 수 있었다. 배우기 보다는 가르치면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 어설픈 지식을 배움을 통해 극복하는 속도가 1이라면 가르침을 통해 성장하는 속도는 10 혹은 100 혹은 그 이상이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때 내가 얼마나 무지한 존재인지 금새 깨닫는다. 어떤 위대한 선현의 말씀보다 빠르게 깨닫게 된다. 천 마디의 격언보다 훌륭한 것은 스스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대학 시절에 그런 과정을 수없이 거치며 문예창작이나 기획에 대해 급격히 빠르게 배울 수 있었다. 컴퓨팅을 시작했던 오래 전에 내가 했던 일은 무료 강좌였다. 강좌를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줄 수 없음을 깨닫고 또 새로운 배움을 얻었다. 그 과정은 대학을 마치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반복 되었다. 만약 내가 어린 나이에 팀장이 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여전히 그저그런 웹 기획자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최근 2년 사이 내가 가르침을 통해 크게 깨달은 곳은 두 개였다. 하나는 웹 기획 강의였고 또 다른 하나는 해피빈이라는 비영리 기부단체에 대한 강연이었다. 재작년 웹 기획 강의를 하며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바에 대해 정확히 답할 수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이었고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은 원래 안되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능력과 창조력의 한계에 대해 그들에게 설파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앞으로 10년은 더 배워요"라고 답을 낼까? 그런 망나니같은 강좌가 어디있는가? 그들은 뭔가 답을 원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그들에게 대안을 제시할 수 없었다.

해피빈 강의는 또 다른 한계를 경험하게 했다. 웹은 커녕 인터넷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블로그를 이용한 기부 문화 확대라니! 정말 기만적인 강좌였다. 하지만 나는 한 사람이라도 그 강좌를 통해 뭔가 이해했으면 싶었다. 결과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헛소리를 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정확히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들의 현재를 비난했다. 당신들이 웹을 제대로 모르면서 블로그도 모르면서 그걸로 뭘 할 수 있냐고 독설을 퍼 부었다. 가슴이 아팠지만 내가 틀린 이야기를 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능력이 부족해도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면 그걸 통해 가장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다만 조건은 스스로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웹 서비스 기획자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문제일 수 있다. 그래, 정말 그럴지 모른다. 너무 일반적인 것이라서 웹 서비스 기획자를 꿈꾸는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되지 않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진실이다. 스스로 정직할 것.


만약 당신이 웹 서비스 기획자를 꿈꾸고 있다면, 그 꿈으로 인해 현재 자신의 존재를 확정하고 있다면, 그 꿈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날려 버릴 수 있다면 나는 분명히 한 가지 조언을 해 준다. 이 조언은 나 또한 웹 서비스 기획자라는 이름을 이 공간, 웹에 남기기 위해 내가 생을 바치는 이유다. 당신이 이 조언에 동감한다면 나와 함께 웹 서비스 기획자로서 동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정직할 것"



이 문장에 동감하고 그렇게 산다면 당신과 내가 단 한 번 만난 적 없더라도, 앞으로 만날 일이 없더라도 우리는 감히 동지라 부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