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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웹 2.0 그리고 이 바닥의 평판

오늘 한 회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갔는데 대화를 하는 중에 웹 2.0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머뭇머뭇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분은 과거 내 강의를 들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묻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내가 웹 2.0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웹 2.0 신드롬이 창궐할 무렵 나는 그것에 대해 '신드롬'이라고 규정하고 그 단어를 언급하는 자체를 비판했다. 웹 2.0 어쩌구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개념도 없는 인간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라고 대꾸를 하곤 했다. 그 때문에 내게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입을 닫아 버린 사람에게는 참으로 미안하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웹 2.0 어쩌구 하면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 대부분이 두 부류로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웹 2.0으로 밥벌이하려는 인간들.
또 다른 하나는 웹 2.0이 뭔지도 모르고 입부터 벌리려는 인간들.

지금도 그런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다. 그들은 웹 2.0 이전에 블루오션에 열광했고 그 이후엔 UCC에 열광하고 있는 포퓰리스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시 지식에 대한 열망과 새로운 트랜드에 대한 관심 때문에 웹 2.0에 열광했던 사람이라면 예외로 치겠다. 사람이 살다 보면 삽질은 다반사니까.

어쨌든 웹 2.0 신드롬에 대한 강력한 독설과 실질적인 태도 때문에 이 바닥의 사람들은 내가 웹 2.0이라는 개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다. 나는 웹 2.0 신드롬에 대해 부정적이며 시니컬하고 비판적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욕설을 퍼붓고 싶다. 그러나 웹 2.0에서 이야기하는 변화의 결과에 대해서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시간 내서 개념 정리하기도 힘든 상황에 누군가 웹을 발명한 이후 변화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해 줬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나는 팀 버너스 리 경을 존경하고 팀 오라일리 씨도 존경한다. 둘이 무슨 관계가 있는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웹을 발명한 사람과 웹의 새로운 세대를 규정한 두 사람을 존경한다.

무슨 자아 비판도 아니고 내가 웹 2.0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에 대해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자. 나는 웹 2.0을 기술적 변화라고 받아 들이지 않았고, 웹 2.0을 뭔가 거창한 사업의 출발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자들을 '똘추'라고 비판했고 '병신'이라고 욕했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 - 대략 50년 쯤? - 팀 오라일리는 출판사 사장이 아니라 IT의 역사 일부를 정리한 역사학자로 규정될 수 있다. 나는 웹 2.0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이해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그것을 마치 혁신의 시점인 듯 표현했다. Ajax가 뭐 어쨌다고? RIA가 뭐 어쨌다고? Blog가 뭐 어쨌다고? 그런 것들이 증기 기관의 발명이나 핵 에너지의 발견이나 변증법적 유물론의 발견과 비견할 것이었나? 자신들이 떠들어 대는 이야기의 요지가 혁신이나 혁명, 변혁이라고 말하는 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웹 2.0 신드롬에 대해 극하게 반응했던 이유는 그것이었다. 현상적인 변화에 대한 기술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깨달을 수 있는 통찰에 대한 서술이 팀 오라일리가 한 웹 2.0에 대한 이야기였다.

50년 뒤에는 IT의 시대적 조류를 분석한 역사 분석가로 평가 받을 지 모르는 팀 오라일리의 웹 2.0이라는 이야기에 대해 대한민국의 소위 IT 업계에서 한 자리 한다는 자들이 떠들어 대는 숭배의 목소리가 지겨웠다. 차라리 그 뒷북을 치며 "UCC"를 자신의 브랜드로 만들려는 다음의 노력은 귀여울 정도였다. 나는 비판을 했고, 그 대가로 지금은 "웹 2.0에 대해 비판적인 부류"의 하나가 되었다. 심지어 나를 잘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 내 회사의 직원을 포함하여 - 내가 웹 2.0에 대해 비판적이며 그것을 언급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웹 2.0 신드롬에 빠져서 책을 사고 강연을 듣고 토론을 했던 사람들 중 몇몇은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했는 지 깨달았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들은 웹 2.0에 대한 수많은 논의에서 나왔던 본질적인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외우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곧 그들은 옳바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웹 2.0 신드롬이 아니라 웹 2.0 자체가 이야기하는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현업에서 웹 2.0에 대해 고민하고 변화한 현실을 받아 들이고 새로운 웹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들과 만날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웹 2.0의 신드롬은 깨지고 진정한 혁신이 발현할 것이라고 믿는다. "믿는다"는 게 무슨 의미겠나? 멍청이는 여전히 멍청이일 것이지만 잠시 삽질했던 현명한 자는 다시 현명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들이 모일 것이고... 여전히 그 속엔 쭉정이들이 밥벌이하려고 모여 있겠지만 신드롬이 가득하던 시대보다는 좀 적을 것이다. 그러면 웹 2.0 어쩌구 하던 시절에 꿈꾸던 어떤 웹 서비스가 나올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원래 이 바닥이 세치 혓바닥으로 먹고 사는 인간들이 득시글한 곳이라 이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 같다. 나도 나잇살이나 먹었으면 그냥 그런 인간들도 있으려니 하고 넘어가야 할텐데 매번 그냥 넘어가지 못하니 참 한심한 일이다. 사람들은 늘 겸손하고 편안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태생이 그렇지 못하니 그냥 천성대로 살아야 하나 싶다가도 이런 일에 부딪치면 늘 갈등이다. 물론 결론은 늘 이렇다, "아니면 아니라고 욕하고 살아! 그것 때문에 욕 먹으면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고 살아!"

인생은 끝나기 전에 모른다. 그 끝은 신만 안다.

이것이 내 최후의 겸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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