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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라디오스타, 문희준 '나에게 록이란?'

어제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문희준에게 MC들이 "나에게 록이란?"이란 질문을 하자 문희준이 머뭇거립니다. 과거 인터넷에서 가루가 되게 까였던 기억이 있으니까요. 장난삼아 하는 이야기지만 역시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저는 아직도 오이먹고 록했다는 문희준의 어록을 기억하니까요.

 

보다 못한 이효리가 문희준을 거들지만 별 도움이 안되죠.

 



그렇게 멈칫 멈칫하다 결국 자폭.



아... 문희준이 '록(rock)'에 치를 떠는 것은 그의 과거 때문입니다. 간단히 줄여 길고 긴 스토리를 요약하면, HOT로 활동하던 문희준은 그룹을 그만두고 솔로로 데뷰하며 뜬금없이 '록'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립싱크 그룹 출신이 무슨 '록' 이냐고 누리꾼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이런 상황을 잘 몰랐던 문희준은 한 인터뷰에서 '나도 배고픔 참으며 오이 먹으며 록을 연습했다'는 발언을 합니다. 

 

이때부터 문희준은 '오이먹고 록하는 무뇌충' - 요즘으로 치면 일베충과 비슷한 표현입니다 - 으로 불리며 남녀노소, 정치적 견해차를 뛰어 넘어 일단 까고 보는 캐릭터를 구축하게 됩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흥미로운 것이 당시 문희준을 까며 패러디물을 만드는데 제일 앞장 섰던 커뮤니티가 디씨인사이드였습니다. 다른 커뮤니티도 많은 비난글과 패러디물을 만들어 냈지만 디씨인사이드의 잉여력을 당해내긴 힘들었습니다. 우연히도 요즘 일베충을 만들어 낸 커뮤니티도 근본을 따지고 들면 디씨인사이드죠. 

 

문희준에 대한 당시 패러디와 조롱은 넘치고 넘치지만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무뇌충'과 '뷁'입니다. '뷁'은 문희준 노래 중 '왜 날 Break!'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걸 줄여서 표현했다는 게 가장 대표적인 해설입니다. 문희준의 노래 실력을 비웃는 용도로 매우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어쨌든 오랜만에 문희준 오이먹고 록했다는 짤방 검색해 봤습니다. 예전에 정말 심한 것도 많았는데 이제 찾기 힘드네요. 

  










당시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문희준 - 무뇌충으로 더 자주 불린 - 에 대한 패러디가 나왔습니다. 지금이라면 법적 대응을 했겠지만 당시에는 연예인 특히 아이돌 가수가 일반 대중의 조소와 비난에 법적 대응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패러디 그리고 패러디를 넘어 당사자에게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모욕이 가해졌던 것은 일종의 광란 상태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희준이 속해있던 HOT는 어떤 의미에서 립싱크, 실력미필, 퍼포먼스, 기업형 아이돌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대표했습니다. 또한 HOT는 해체 과정에서 비밀스러웠던 소속사와 아이돌 그룹 사이의 노예 계약이 밝혀지면서 더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HOT 해체에 관련한 글을 읽어 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어쨌든 그런 과정 속에서 문희준은 평소 관심 있었던 '록'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그게 불에 기름을 끼얹는 행동이 된 것입니다. HOT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록'은 립싱크 아이돌 그룹인 HOT 출신인 문희준의 패악질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희준은 디씨인사이드를 중심으로 한 그를 미워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의 패러디 대상이 되었고 그 정도가 지나치든 말든 관계없이 그냥 비난하며 희화당하는 게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그 놀림과 비아냥은 문희준이 군대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가 군대에 들어가 성실하게 복무하고 나왔을 때 이제 HOT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고 과거 '무뇌충'이라고 비아냥대던 사람들도 그걸 많이 잊은 상태였죠. 하지만 문희준은 연예 활동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자신에게 그렇게 욕을 퍼부었던 사람 중 최고 중 최고라고 해도 무방할 사람 그러나 당시 연예계에서 핫한 위치에 오르고 있던 사람과 만나게 됩니다. 바로 독설로 인기를 끌고 있던 김구라와 만나게 됩니다. 

 

(김구라, 노숙자, 황봉알)

 

김구라는 문희준을 '무뇌충'으로 비웃던 그 시절 딴지일보의 부가 서비스인 '딴지라디오'에서 그 누구보다 더 진하게 문희준을 까고 비웃고 비난하고 욕을 해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스리슬쩍 공중파에 데뷰하고 '욕설'을 '독설'로 유화하여 시청자의 인기를 얻고 있었죠. 김구라는 자신이 하던 프로그램인 <절친노트>에 문희준을 초대하고 텔레비전을 통해 문희준과 '화해'하는 제스처를 취합니다. 

 

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07/h2008070118012391970.htm

 

김구라는 2003년 인터넷방송 <김구라와 황봉알의 시사토크>에서 '문희준은 연예계의 후세인, 오사마 빈라덴' '대마나 약 검사는 무조건 문희준부터 해야 한다' '작사·작곡을 해야 아티스트 취급을 하지' 등의 비하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김구라는 오는 21일 첫 방송을 앞둔 SBS <절친노트>를 녹화하며 문희준에게 공개사과했다. <절친노트>는 김구라·이광기·현영이 공동 MC를 맡아 사이가 어색하거나 멀어진 두 사람을 초대해 화해를 주선하는 프로그램으로 지난달 29일 첫 녹화를 가졌다.

 

 직접 첫회 출연자로 나선 김구라는 "마음의 빚을 진 분을 이제야 만나게 됐다. 이 자리를 통해 죄송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며 문희준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에 문희준은 "먼저 사과를 하겠다니 받아들이겠다. (김구라를) 실제 만나니 예의가 바른 분 같다"고 말하며 흔쾌히 김구라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저는 그 프로그램을 보며 김구라는 비겁하고 문희준을 불쌍하다 생각했습니다. 김구라는 세치 혀로 저지른 죄를 이제 인지도가 낮아진 문희준을 텔레비전에 노출시킨다는 명분으로 퉁치려고 했고, 문희준은 그걸 잘 알지만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려면 이걸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당시 상황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 국회의원 총선거가 진행될 때 김구라가 과거에 했던 발언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그로 인해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었을 때 '제 입으로 저지른 죄과를 치르는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볼 때 당시 김구라가 <절친노트>에 문희준을 초대한 것은 매우 비겁한 사과의 방식이었습니다. 잘나갈 때 자기 프로그램 시청률까지 고려해서 사과하는 게 무슨 사과입니까? 그래서 뒤늦게나마 비록 타의에 의한 것이지만 방송에서 물러난 몇 개월간 제대로 사과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요즘 다시 복귀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 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어쨌든 어제 문희준의 대답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모르는 분은 그냥 '저게 뭐 우습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십 몇 년 전 문희준을 '무뇌충'이라고 비난했거나 그런 걸 보고 낄낄대고 웃었던 사람이라면 문희준이 왜 '록'에 대해 저렇게 어색해 하는 지 이해할 겁니다. 

 

 지난 주 압구정에 일보러 갔다가 길에서 문희준을 우연히 봤는데 여전히 피부는 탱글탱글하더군요. 근데 살은 좀 빼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아는 척 하려다 과거에 저도 문희준 욕을 좀 한 편이라 그냥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쳤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도 벌써 서른 다섯이군요. 이 글을 쓰기 위해 검색하다 오래전 HOT 시절의 문희준 직찍이 있어 올려 봅니다. 옆에 아주머니가 문희준 모친이라고 합니다.



문득 한 10년 지나면 티아라 멤버들도 어떤 토크쇼에 나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 때는 티아라 미워할 사람 별로 없겠죠. 그냥 "어? 그랬었나?" 하겠죠. 그러니 정말 처 죽일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면, 또한 그 대상이 이런 저런 얘기해도 그냥 들을 수 밖에 없는 연예인이면 대충 욕하고 맙시다. 인기가 있다고 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돌 던지는 건 재미는 있지만 비겁한 행동임을 잊지 맙시다. 욕은 그냥 한 번만 하고 맙시다. 


하지만 계속 욕해도 되는 놈들은 잊지 말고 매일 욕합시다. 그러니까 쿠데타 일으키고 시민 학살하고 대통령 해 먹고 여전히 떵떵 거리며 사는 전두환 같은 놈들은 계속 욕해도 됩니다. 돈 많고 권력도 있는데 자기 할 바 안하고 비자금이나 챙기는 재벌 총수들 계속 욕해도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한테는 욕 계속 못하죠? 계속 하다간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강한 사람에게 욕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겁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집요하게 욕하는 걸 괴롭힘이라고 하는 것이구요. 욕의 가장 기본적인 룰은 욕먹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겐 더 이상 욕하지 않는다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