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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술자리 면접

미디어한글로님의 <초고속 승진에서 퇴사까지 - 나의 하룻밤 취업 이야기
>를 읽고 든 생각 몇 가지.








일단 중반부까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리고 그 사건 때문에 눈에서 눈물이 코에서 코피가 흘렀다는 부분부터 웃음을 멈추고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재미 있었다. 미디어한글로님도 그 글을 쓰며 읽는 이들이 모두 심각하라고 쓴 글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만약 그랬다면 아래 그림같은 것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 또한 회사 직원을 구할 때 술자리에서 면접인지 상견례인지 애매한 상태에서 면접을 본 적 있다. 대표이사까지는 아니지만 직원에서 부장까지 직급을 올려서 인터뷰한 적도 있었다. 물론 술 자리 막판엔 항상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오늘 이야기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인터뷰가 아니었습니다. 조만간 정식으로 인터뷰 볼 날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즐거운 자리였고 저는 귀하가 함께 일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과 사장님의 생각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제 입장은 아주 명쾌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미디어한글로님은 아마도 사장님을 만난 것 같은데, 그 분이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 지 모르겠지만 첫 만남에서 대표이사까지 운운하다 결국 어떤 주제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고 그 자리에서 '없던 이야기로 하자'는 것은 참으로 옳지 못한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에이쒸!'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 한글로미디어님도 조금은 반성할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장이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 - 계열사 대표이사도 좋겠죠? -를 했더라도 웃으면서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제가 일을 잘하면 하시죠."라고 대답하는 게 낫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나도 술자리에서 면접을 본 적 있는데 그런 식으로 분위기가 솟아 오를 때 웃으며 술자리에서 직급과 연봉 논하지 말자고 한 적 있다.


술자리 면접은 신입보다 경력자에게 흔한 일이다. 대기업의 경우 이런 케이스가 거의 없지만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최근에 직원수 500명이 넘는 한 IT 중견 기업의 경영 총괄 이사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그 술자리는 그 회사의 부장이 신규 비즈니스 관련 도움을 받은 보답으로 자신과 친한 이사와 함께 한 자리였다. 술 자리 중반에 이사가 자리를 함께 했는데 미디어한글로님과 비슷한 상황이 되었다. 술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로 친해지고 갑자기 그 회사 이사님이 자기 회사에 들어와서 일하면 좋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농담이라 생각하며 "연봉 많이 주시면 갈수도 있죠"라고 했더니 대뜸 얼마나 원하냐고 한다. 진지한 표정으로 현재 직급의 연봉을 이야기하며 회사의 전망과 비전을 이야기했다. 예전 같았으면 또 한 번 농담을 받아서 "얼마면 갈 겁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 같은 사람이 갑자기 이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연봉이 문제가 아니라 이 업종에 인사이트가 있는 다른 훌륭한 분을 찾는 게 좋을 겁니다. 저는 인터넷이나 웹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지 이 업종은 문외한입니다. 하지만 좋게 봐 주시니 정말 저와 함께 일하고 싶으시면 다음에 컨설팅 조건을 잘 조정하겠습니다."

그러자 담당 이사도 크게 웃었고 함께 했던 부장도 나도 크게 웃었다. 세상 일은 항상 말하는 그것대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비즈니스는 농담 속에 진실이 있고, 진실 속에 감추는 것이 있으며, 모든 이야기는 거짓이지만 또한 일부는 진실이기도 하다. 말하는 그대로 믿고 대답하면 서로가 곤란해지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술자리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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