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emo

미디어와 블로그 저널리즘

국내에서 블로그를 '1인 미디어'로 현업 종사자들이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개념적으로 인정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현업의 기자들이나 편집진이 받아 들인 것은 얼마 전이라는 말이다. 오늘 그 '받아들임'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중앙일보, 자사 비판기자 퇴출 ‘파문’


이 기사에 포함된 중앙일보 기자의 글은 나도 당시에 읽은 바 있다. 당시 이 기자의 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댓글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사건을 거치며 또 어떻게 변화한 댓글 - 소위 여론 - 이 붙을 지 궁금하다. 아마도 "힘내라" 류의 댓글 아닐까.

이번 사건은 좀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 중앙일보가 그 기자가 블로그에 쓴 글 때문에 정직원 전환을 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 정황 증거는 분명하지만 이 또한 이런 저런 상황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사건에 대해 중앙일보가 "해당 블로그 글을 비롯한 중앙일보 논조에 반하는 기자 개인의 태도가 문제"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주장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블로그를 중심으로 한 1인 미디어 저널리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

2003년부터 많은 기자들과 블로그의 정체성에 대해 논의해 왔는데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내 주장은 한결 같았다. 기자들은 블로그의 정체성이 과연 기자라는 전문직의 정체성과 충돌할 것이냐는 질문을 자주했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은 늘 이런 것이었다,

"두려워할만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이런 예를 들어 죄송하지만 IT 관련 기사에서 제가 기자님보다 잘 쓸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제게 기자님과 같은 정보 리소스에 대한 접근 권한이 있다면 훨씬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기사를 잘 써도 저는 블로거이고 기자님은 기자입니다. 기사를 잘 쓰는 블로거와 기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 중심에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를 전문직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기사를 전문적으로 쓰는 능력과 그에 대한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블로거 중 일부도 그런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지며 기사를 쓸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블로거는 이미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을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어떤 조직에 속하지 않았을 뿐 그런 블로거는 이미 독립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런 독립 저널리스트가 기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작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 십만 명의 독자들과 함께 행동합니다.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와 편집진 그리고 구독자라는 조직이 있다면 블로거이며 독립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언론사이며 스스로 편집자이며 또한 수십만 명의 독자들이 편집자이자 감시자가 됩니다.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고 이것이야말로 현직 기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새로운 변화, 1인 미디어의 도전입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기자들 대부분은 공감을 했지만 실제로 그것이 어떤 식으로 자신들을 압박할 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사건은 그 예의 전형을 보여 준다. 중앙지 기자 명찰을 달고 있더라도 자신의 저널리스트로서 관점을 블로그에 쓰게 되면 퇴출 될 수도 있다. 블로그에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면 비록 중앙지 기자라도 밥벌이하고 기자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있는 자리를 박탈 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블로그 저널리즘은 생존의 문제지 대충 이렇고 저렇다고 생각할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문제의 기자는 조인스닷컴의 블로그에 "다음 블로그로 이동 중"이라는 제목을 붙여 뒀다. 아마도 그녀는 곧 자신이 근무했던 회사의 블로그 대신 포털의 블로그로 이전할 것 같다. 그녀가 새로운 미디어사에 취업을 할 지 블로거 저널리스트로 활동할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조직에 속한 기자가 조직의 의견에 반하는 개인적 의견을 블로그에 개시함으로써 퇴출 당할 수 있다는 예제가 되었다. 블로그에서 이런 사례는 매우 빈번했는데 국내 중앙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처음이어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일은 매우 흔히 일어날 수 있다. 왜냐면 기자 또한 인간이고 사회인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기사를 찍어내는 기계가 아니라 그 자체가 '저널리스트'로서 완결성을 갖고 있다. 아니다 그런 완결성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때문에 기자들은 항상 자신의 환경과 투쟁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시사저널 사건과 일맥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시사저널의 기자들은 삼성 관련 기사를 임의로 삭제한 경영진과 대립하며 결국 해고 당했고 시사in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창립했다. 창립의 과정에서 블로그를 개설하고 수 많은 네티즌들이 시사in의 창립을 위한 자본금을 지원했다.

기자들은 블로그가 자신들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언제든 '블로거 독립 저널리스트'로 설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골 때리는 주장을 하는 사측이나 편집장이 있다면 이런 협박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이런 식으로 하시면 저도 블로거로 활동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5년 전, 현직 기자들이 두려워했던 "블로그 저널리즘"이 정말 현실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미디어사의 경영진과 편집진이 두려워해야 할 자유 저널리즘의 시대가 한국에서도 열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현직 기사이며 블로그를 쓰는 기자들이여, 그대들은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문제는 그 무기의 가치를 알고 있냐 그렇지 않느냐는 것일 뿐.

'Mem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관 동의를 위한 체크 버튼  (4) 2008.09.15
구글, 태터앤컴퍼니(TNC) 인수 발표  (4) 2008.09.12
KTX 노트북 대여  (1) 2008.09.07
구글의 웹 브라우저  (8) 2008.09.02
네이버, 통합검색 결과에 광고 표시  (4) 2008.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