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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내가 투표한 후보와 정당

서울 구로구에 산 지 벌써 4년이 되어 간다. 느지막히 일어나 사무실로 나오는 길에 투표를 했다. 비바람이 거세서 투표율이 낮을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후 5시 현재 사상 최저 투표율이라고 한다. 한나라당이 전체 299개의 의석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 확실하다는 보도도 있었다.



 

나는 오늘 박영선 후보와 통합민주당에 투표했다. 이쪽 지역은 과거 열린 우리당의 김한길 의원이 지역구 의원을 했던 곳인데 이번에 출마를 포기하며 박영선 후보가 나왔다. 한나라당 또한 이에 맞대응하기 위해 고경화 후보를 전략 공천했다. 각 정당과 후보가 보내 온 선거 유인물을 읽던 중 민주노동당의 유선희 후보 유인물의 한 문구가 가슴에 와 닿았다, "이번에도 낙하산 후보입니다. 구로가 봉입니까? 일하는 저를 뽑아 주십시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심정적으로 그녀의 주장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양 정당의 전략적 공천 후보보다 그녀가 일꾼으로 더 나을 지 모른다. 그러나 유선희 후보 또한 지난 4년 간 구로구에 살면서 뭘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그녀가 다음 번에 나올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한 일과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데 좀 더 신경 쓴다면 '구로'라는 브랜드 이미지와 '민주노동당'은 상당히 잘 어울릴 것이고 선거에서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현재 구로구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지만.

저조한 투표율에 대해 나는 술자리에서 농담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살 사는 나라일수록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 많다잖아. 이제 우리나라도 어엿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있는 것 같군." 물론 기분 나쁜 농담이다. 농담하는 사람조차 기분 나쁜 그런 종류의 농담이다. 그런데 이런 농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요즘의 이런 상황을 가볍게 받아 들이기 힘들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것과 그 과정에서 열린 우리당의 해체로 대표되는 민주정부 수립파의 몰락을 쉽게 받아 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민주정부 수립파라고 언급한 것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만들고 이끈 사람들은 '선진 세력'이라든가 '민주주의 세력'이라든가 '좌파 세력'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이것이 훨씬 이해하기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집권 여당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 중 가장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던 세력은 "민주정부를 수립하자"고 외쳤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구성은 좌파가 아니었다. 민주주의와 반독재, 민중의 세력화라는 서로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 아주 다른 사람들이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기치 아래 모여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정부"란 정확히 표현하자면 과거 군부 독재(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의 역사를 단절하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어쨌든 김대중 정부는 의미가 꽤 있었다. 그 뒤를 이은 노무현 정부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문제는 그 10년 간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적 이야기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지지할만한 건실한 정치인을 그리 자주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불만은 커졌고 결국 이명박 정부와 그 정부의 정책 실현을 강력하게 뒷받침할 18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낳았다. 누구를 탓하겠나. 낮은 투표율? 아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선거 혁명에 대한 관심을 접고 있다. 평소에 뭐하다가 선거 시기만 되면 혁신을 부르짓는지 의아해할 뿐이다.


또 다른 농담 하나. 젊은 층의 투표율이 낮지만 노장년층의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야기를 하며 어떤 사람은 수구보수세력 지지자인 30% 가량의 한나라당 지지율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내가 서른 일곱이니까 20년만 기다리면 되나? 그럼 앞으로 20년 뒤에는 계속 민주 정부가 들어서겠군. 20년만 참자고."

아마 20년 뒤에 우리 또래들이나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정당과 후보를 지지할지 모른다. 그 정당과 후보는 지금 젊은 세대가 비난하는 한나라당과 같은 곳일지 모른다. 달리 이야기하자면 현재 노장년층이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이 반드시 한나라당이나 수구보수세력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비록 그들 중 다수가 그런 사람과 정당을 지지하더라도 또한 소수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선거를 통해 스스로 변해가는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아마 어떤 사람은 내가 통합민주당에 투표한 것을 보고 "쓰레기같은 선택"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민주노동당이나 창조한국당이나 진보신당에 투표하지 않은 것을 비난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미 기성 세대에 속할지 모른다. 17년 전 내가 첫 투표를 했을 때 우리 집안과 동네 사람 중 소위 '전라도당'인 민주당에 투표한 사람은 나 뿐이었다. 그 이후 많은 투표를 했고 매번 망설였지만 한 번을 제외하고 민주당에 투표를 한 셈이다. 그 한 번은 지난 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대통령 탄핵 정국이라는 이슈에서 열린 우리당을 지지한 경우였다.

20년 쯤 후에 오늘 내가 지지한 후보와 정당을 돌이켜 볼 때 내 자손은 "아버지는 아직도 그런 수구보수세력을 지지하느냐?"고 반문할 지 모른다. 그런 질문 앞에 내가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지지하는 정당을 선거 때마다 바꾸지 않았던 이유를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대 때는 한나라당이 싫어서 이 정당을 지지했고 30대 때는 지지했던 정당마저 바보같은 짓을 계속하길래 이 정당을 지지했고 40대 때는 또 다른 이유로 이 정당을 지지했다고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유행이 아닌 바에야 어떤 정당을 지지하든 한 20년은 해 봐야지 않겠나. 17년 째 같은 정당을 지지했다. 똥인지 된장인지 20년 째 먹어봐야 판단이 서냐고 물을 수 있다. 아마 통합민주당은 처음부터 똥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정치라는 것의 속성이 매우 느리고 또한 변덕스럽기 이를데 없음을 볼 때 나는 한 20년은 지지하고 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아마 다음 번 선거 때는 생각이 바뀔지 모른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지지했고 또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4년 간 내가 지지한 정당이 어떻게 행동하는 지 지켜 볼 생각이다. 그리고 앞으로 20년에 대해 심사숙고할 생각이다. 부디 내가 지지했던 후보와 정당도 그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