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guacu ONLY

블로그, 머릿속의 모든 글을 써야만 하는가?

최근 몇 개월 사이 블로그에 쓰는 글의 숫자가 부쩍 줄어 들었습니다. 그와 비례하여 방문자의 숫자도 급격히 줄어듭니다만 별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블로그를 쓰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글을 써야 하는 압박을 받을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짧다면 짧은 경력이지만 온라인과 각종 매체에 글을 써 온 지 13년 째 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아래는 최근 제가 블로그에 쓴 글 중 공개를 한 것과 그렇지 않은 글의 목록입니다. 붉은 색 아이콘이 있는 글은 공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서른 개의 글 가운데 다섯 개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가 글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박 2일과 거창 딸기 이야기"같은 경우엔 1992년에 있었던 농활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구아수 블로그의 주제와 크게 맞지 않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블로그? 온라인 위기 관리?"라는 제목의 글은 블로그를 통한 기업의 온라인 위기 관리에 대한 이야기인데 다음에 상세하게 쓸 생각으로 메모만 한 것입니다. "욕만 먹고 가는 오픈 컨설팅"은 오늘 느꼈던 감상인데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공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블로그에 대한 논쟁

5년 전 쯤 블로그가 한국에 소개되고 '블로그' 자체에 대한 많은 토론과 논쟁이 있었는데 특히 블로그의 글에 대한 '공개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그런 토론과 논쟁을 지켜보며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것이 바로 위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글을 쓰되 모든 걸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개하지 않는 것이 반드시 "공개할만한 글이 아니라서..."가 아니라는 게 중요합니다. 공개하지 않는 다양한 이유를 스스로 깨닫는 게 중요하고 그 이유를 스스로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머릿속의 이야기를 모두 쏟아 낸다고 좋은 블로그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블로그를 통한 '감정의 배설'에 대한 비판이 아닙니다. 또한 블로그를 통한 '의미있는 콘텐츠의 생산'에 대한 옹호도 아닙니다. 사람은 늘 많은 생각을 하고 느끼며 삽니다. 그걸 글로 빨리 옮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머릿속의 생각으로 끝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경우엔 글로 옮기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나 모든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나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에서 '공유'가 모든 가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공유'를 아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다른 가치가 있는데 바로 '사색'입니다. 블로깅(blogging)은 자신이 블로그에 글을 쓰고, 또 다른 블로그의 글을 읽고, 댓글을 쓰거나 트랙백을 보내는 행위를 말합니다. 저는 오늘도 많은 시간 블로깅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공개한'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공개하지 않은 글'을 세 개 썼습니다. 그 글들 중 몇 개는 공개될 지 모르겠지만 공개되지 않아도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왜냐면 공개되지 않은 글이더라도 그것은 내가 한 생각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블로깅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여러가지 주제와 소재를 만듭니다. 다른 사람이 직접 쓴 글이나 스크랩한 글을 읽으며 내 사고의 지평을 넓힙니다. 자신이 쓴 글을 공개하고 공개할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사색을 위한 블로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블로그'라는 비슷한 툴(tool)을 쓰고 있지만 그것이 갖는 가치까지 동일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블로그를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쓰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브랜딩을 위한 수단으로 쓰고, 어떤 사람은 친교를 위한 수단으로 쓰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고를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기도 합니다. 그것 중 어떤 것도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쓸 뿐입니다.


블로그는 글쓰기 도구일 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래 전에 '블로그는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글쓰기 툴(tool, 도구)일 뿐이다'라는 주장을 했을 때 그러니까 블로그로 인해 뭔가 대단하고 거창한 변화, 혁신이 당장 다가올 것처럼 생각하던 사람들은 크게 반대를 했습니다. 지금도 제 생각은 변화가 없습니다. 왜냐면 블로그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변화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 블로그를 통해 더 빨리 변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년 6개월 전에 한나라당의 원희룡 의원이 블로그를 쓰는 것을 알고 그와 인터뷰를 한 일이 있습니다. 이후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공식적으로 만난 일은 전혀 없습니다. 두세번 정도 쪽지나 문자로 근황을 묻곤 했습니다. 18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나고 며칠 지난 후 블로그를 통해 짧은 쪽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과거에 그랬듯 여전히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보좌관에게 블로그 운영을 맡긴 사람이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자신의 블로그를 관리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제가 유명 블로거(???)라서 그 의원이 답신을 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느낀다면 그에게 직접 쪽지나 메일을 보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직접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웹 서비스가 사람의 근본적 속성을 바꾸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마치 책 한권으로 어떤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선동가나 한 번의 조언으로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뀌리라 믿는 직장 상사의 생각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욕심이고 그런 욕심 때문에 변화하지 않는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블로그도 비슷합니다. 블로그에 대한 과대한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기껏 5년 밖에 되지 않은 한국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 블로그계)에 대해 매우 비관할 뿐 그 미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관하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지만 비관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 사람은 블로그에 대한 기본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블로그라는 서비스 때문에 만약 사람이 바뀐다면 그것은 블로그 때문이 아니라 이미 그 사람 속에 그러니까 마음 깊은 곳에 변화할 수 있는 에너지가 원인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좀 어색하긴 하지만 저는 그런 변화의 에너지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바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색하다고 말한 것은 그런 믿음과 정 반대의 현상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이명박이 대통령 된 나라에서 무슨 얼어죽을 변화의 에너지냐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라는 것이 반드시 정치적인 결과를 의미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저는 변화의 범주를 매우 다양하게 바라봅니다. 아주 사소한 것조차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가능성을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와이프로거라는 표현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러나 주부들이 블로그에 음식 이야기나 육아 이야기와 같은 것을 씀으로써 그들의 인생이 조금 변화했다면 그것도 변화입니다. 그 가치를 폄훼할 이유는 없습니다.

블로그의 가치는 머릿 속의 모든 이야기를 쏟아 내고 그것이 반드시 그런 과정을 통해 공유되어야 하고 공감을 얻어야 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인정해야 할 것은 세상에는 우리가 원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 외에 더 많은 다양한 가치가 있다는 점입니다.


저 푸르른 생명의 소나무

이 글의 마무리는 괴테가 했던 이야기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괴테는 자신의 작품 <파우스트>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소나무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웹 서비스 컨설턴트로서 저는 많은 이론을 만들어야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고 그럴써한 이론을 좋아합니다. 그런 이론이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줄 것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런 이론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도 꽤 많고 저도 그런 부류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제 인생을 바라본다면 단지 이론이 제 인생에 도움을 준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이번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블로그에 대한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삶의 본질에 대한 저 푸르른 우리의 마음이라고.

어떻게 그렇게 자신할 수 있냐고, 확신할 수 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5년 전에도 그런 질문이 있었고 저는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대답은 같습니다.

'Iguacu ON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공이산"과 비전의 공유  (5) 2008.04.27
한강 자전거로 달리기, 무한도전  (11) 2008.04.19
내가 투표한 후보와 정당  (1) 2008.04.09
4월 무료 컨설팅 안내  (0) 2008.04.07
실패하지 않는 제안의 법칙  (8) 2008.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