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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웹 서비스의 업데이트와 생명주기

2003년 6월 네이버 블로그의 전신인 '페이퍼' 서비스가 시작된 지 4년 4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당시의 소박했던 화면을 찾아 봤다. 겨우 하나의 페이지만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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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로 당시의 페이퍼나 2003년 10월 경 '네이버 블로그'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던 네이버 블로그는 매우 기초적인 블로그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현재 네이버 블로그는 꽤 복잡한 시스템과 글쓰기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스마트 에디터라는 것만 봐도 얼마나 복잡해졌는지 알 수 있다. 에디터 뿐만 아니라 네이버의 각 부문에서 개발하는 다양한 웹 서비스가 블로그에 집약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와 시스템 업그레이드에도 불구하고 네이버 블로그가 결코 건드리지 않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예컨데, 이웃 맺기 시스템이나 댓글, 스크랩과 같은 것이다. 이런 것은 4년 전에 비해 기능상 크게 바뀐 부분이 없고 기본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도 없다. 스마트 에디터나 스킨 편집을 위한 혁신적 기능에 비하면 이런 기능들은 매우 섬세한 부분에서 바뀌었을 뿐이다. 이유가 뭘까?

두 가지 정도로 이유를 축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유의 하나는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는 기초적인 항목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건드리게 될 경우 혁신적인 방안을 내 놓아야 하는데 그 혁신 때문에 블로그 시스템의 기초가 되는 로직이 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블로거들끼리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주요한 방법을 바꾼다면 득보다는 실이 훨씬 많을 수 있다. '다녀간 블로거'를 예로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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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능은 기본적인 몇 가지를 제외하곤 3년 동안 바뀐 것이 없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로그인 상태의 방문자는 자동으로 해당 블로그의 '다녀간 블로거'로 자동 기록된다. 자신의 방문 기록을 삭제할 수 있지만 최근 업데이트 된 스킨 기능을 이용하여 '다녀간 블로거' 자체를 노출하지 않으면 방문자도 자신의 기록을 삭제할 수 없는 게 가장 많이 바뀐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 사용자라면 자신의 블로그를 누가 방문했는지 알기 위해 이 부분을 눈 여겨 볼 것이다. 그런데 네이버는 최대 10 명의 방문자 기록을 보여 줄 뿐 누적 기록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루에 10명이 방문했든, 1천명이 방문했든 최근 10 명의 기록만 보여 준다. 어떤 사용자들은 하루 방문자 기록을 모두 보여 달라고 요구하겠지만 네이버 측에서 이렇게 내 버려 두는 게 기술적인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럼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기획자가 아닌 사람이 가볍게 생각해 본다면 자신의 블로그를 방문한 사람의 기록을 알게 되면 - 하루치 방문 기록이 저장되는 곳이 있다면 - 그 블로그를 재방문하여 훨씬 더 블로그 사이의 교류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네이버 블로그 기획자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문제도 아닌데 그런 기능을 구현하지 않는 걸까? 오히려 방문자 스스로 자신의 방문 흔적을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을 줘 버린 것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네이버 블로그 팀도 잘 모를 것이다. 4년 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사람이 네이버 블로그를 기획, 개발해 왔고 초기 기획에 관여 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다른 부서로 옮겨 갔거나 이미 과거의 이유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내가 추측하는 이유는 앞서 말한 두 가지다.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는 기초적인 기능이자 한 번 건드리기로 마음 먹으면 훨씬 나은 대안을 내 놓아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 시스템의 기본 로직이 망가질 가능성 말이다. 이런 사례는 블로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웹 서비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왜 윈도의 '시작' 버튼은 99%의 확률로 화면 좌측 하단에 있는가? 작업 표시줄을 화면 이리 저리로 움직일 수 있음에도 왜 대부분의 윈도 사용자들은 작업 표시줄을 화면 하단에 두는가? 왜 웹 메일의 메일 쓰기 창은 대부분 "받는 사람 > 참조 > 제목 > 본문 > 파일 첨부"와 같은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가? 왜 대부분의 블로그(네이버, 야후, 다음, 엠파스, 이글루스 혹은 다양한 국내외 설치형 블로그 툴)에는 "최근 글"이나 "최근 댓글"과 같은 부분이 존재하는가?


이런 현상을 웹 디자이너나 기획자들 중 다수는 "사용자의 경험과 요구에 대한 존중"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그 경험과 요구가 사용자에 의해 선택되었기 때문에, 또한 더 이상 특별히 새로운 혁신적 방법이 없기 때문에 수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여러 블로그 서비스에서 반복되는 어떤 공통된 항목은 네이버 블로그 뿐만 아니라 다른 블로그 서비스도 혁신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대중의 선택을 받은 어떤 웹 서비스는 일정한 기간 동안 급격히 혁신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비슷하게 닮아 간다. 혁신하는 동안 사용자들은 가장 마음에 드는 기능을 선택하고 더 이상 혁신을 바라지 않는 기간 - 흔히 캐즘이라고 불리는 기간 동안 대부분의 선택은 끝난다 - 에 도달한다. 이 시점이 되면 웹 서비스는 새로운 기술적 혁신보다 운영과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의해 서비스 간 우열이 결정된다.

한국의 블로그 서비스는 일단 초기 블로그 도입 이후 이런 과정을 거쳤고 네이버가 최근 내 놓은 스마트 에디터는 그 단계의 거의 마지막에 해당한다. 스마트 에디터 때문에 다른 블로그를 쓰다 네이버 블로그로 옮긴 사람의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벌써 신문에 나도 열두번은 났을 것이다. 웹 서비스가 늘 기술적 혁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웹 서비스 또한 생명 주기가 있으며 그 주기의 각 부분에 따라 기술적 혁신이 거듭되기도 하고 잠깐 정체하기도 한다. 사용자는 자신의 서비스가 항상 기술적으로 혁신하기를 바라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더 이상 혁신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웹 서비스는 그런 사용자의 속성에 딱 맞게 변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