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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파산의 비판

주변을 둘러 보면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투덜거리고 불만을 표하고 부정하는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뉴스 사이트의 정치 뉴스에 붙은 댓글만 봐도 좋다. 이들은 악플러가 아니다. 다만 싫은 감정을 표할 뿐이다. 그런데 그런 감정과 논리를 읽는 자체가 또 싫다. 대개의 사람들은 미움의 감정을 공유하길 원치 않는다. 그런 감정은 비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움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

비판을 한다는 것과 무언가를 싫어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그건 개념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어떤 비판적인 글을 읽을 때 우리는 글쓴이가 비판하는 대상을 "싫어한다"고 판단한다. 대개 그런 판단은 옳다. 무언가에 대한 싫은 감정이나 논리를 듣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럼 비판을 하지 말까? 이것은 완벽한 오류다. 비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회색 분자'라는 표현이 있다. 정치적 의미에서 '회색 분자'는 노선이 뚜렷하지 못한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회색 분자들은 비판에 있어서 문제성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회색 분자라고 규정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안없이 비판한다. 무엇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설득력있는 근거로 전파하는 행위를 비판이라고 한다. 그런데 회색 분자들은 근거없이 비판하고 대안없이 비판한다. 더구나 자신이 비판한 그 대상과 현상에 대해 어떤 변화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자기 스스로 하는 일도 없다. 다만 비판할 뿐이다. '회색 분자'는 비판을 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욕을 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무언가를 비판할 작정이라면 왼쪽을 돌아 보라. 바로 거기에 회색 분자가 이미 와 있을 것이다. 생산적인 비판을 한다는 것은 회색 분자가 되지 않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회색 분자들은 비판 자체에 몰입한다. 비판 이후의 중요함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판의 생산성을 파괴하고 비판의 합리성을 부정한다.

비판을 한다는 것은 모든 미워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맞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미워하는 것을 이야기한 후 무엇을 할 것인 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비판, 비판 이후의 행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는 비판을 할 수 있다. 비판의 왼쪽 면에 미워해야하는 이유와 근거를 적는다면 오른쪽 면에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대안을 써야 한다. 이 비판의 대차대조표에서 항상 오른쪽 면에 더 많은 것을 적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비판의 수지타산이 맞게 된다. 만약 비판의 왼쪽 면에는 잔뜩 내용을 적어 넣을 수 있지만 오른쪽 면에는 어떤 것도 적을 수 없다면 파산의 비판을 하고 있는 셈이다. 파산의 결과는 회색 분자가 된 자신이다.


나는 많은 비판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럼 파산의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비판하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내가 비판하는 것, 내가 미워하는 것을 모두 합쳐도 사랑하는 것의 1%도 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사랑하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나는 사랑하는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시간에 미워하는 것, 싫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비판한다. 비판을 통해 내가 인지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1%의 미워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개선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비판을 하려면 반드시 대안을 갖고 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있다. 우리는 비판하는 어떤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이미 사랑하고 있다. 사랑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너무 인색하지 않다면 비판은 더 큰 사랑을 위한 투자다. 자신이 사랑하고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할 시간에 미워하는 것, 싫어하는 것, 문제가 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세상을 위한 투자다. 투자의 결과가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비판의 수익율을 높이면 세상의 아름다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