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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사소한 것에 대한 예의

점심 약속 후에 옷을 갈아 입기 위해 잠깐 집에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 가려는데 옆 집 문 앞에 그릇이 하나 놓여 있었다. 뭐 하나 담겨 있지 않은 깨끗한 그릇이라 왜 저기에 버렸나 싶었다. 요즘 쓸만한 걸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더니 집에서 화분으로 쓸까 하여 주워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가정용 그릇이 아니라 중국집 배달 그릇이다.





어찌나 깨끗하게 닦았는지 그릇에서 윤이 날 지경이었다. 배달 그릇을 씻어서 내 놓다니,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흔하게 보기 힘든 일이다. 나도 음식 배달 시켜 먹고 돌려 줄 그릇을 가끔 씻어서 내 놓은 적 있지만 대개의 경우 비닐 랩이나 나무 젓가락까지 모두 쓸어서 그릇에 담아 내 놓은 게 훨씬 많았다. 먹다 남은 음식을 함께 내 놓았던 적도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저렇게 배달 그릇을 깨끗이 씻어 내 놓는다. 옆 집 사람을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아마도 사소한 것에 대해 예의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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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어머니와 식당에 갔었는데 당신은 식사를 다 하고 나서 밥 그릇에 물을 부어 두곤 하셨다. 밥 남기지 않으시려고 저러시나 싶었는데 결국 밥 그릇의 물을 드시지 않았다. 나중에 왜 그러셨냐고 물었더니 "물 부어 두면 아줌마들이 나중에 그릇 씻기 편하잖아"라고 하신다. 또 한 번은 시골 길을 걷다 남의 집 앞 마당의 꽃밭에 난 잡초를 뽑고 계시길래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내가 보기에 좋지 않아 그런다"고 하신다. 주인 나오면 뭐라고 한다며 그만 하시라니 결국 잡초를 다 뽑아 버리셨다. 어머니는 늘 남들에게 피해를 주며 살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사회에 큰 기여를 하며 사신 분은 아니지만 늘 사소한 것에 대해 예의를 지키셨던 것 같다.


살아가며 늘 거창한 주제에 매몰되다 보니 주변의 사소한 부분에서 몰염치해지는 것 같다. 음식점에 가서 내가 돈 내고 먹는다고 상전처럼 물이나 음식물 쏟아 놓고 태연하게 점원 불러서 치우라는 사람도 있다. 건물 복도에 시켜 먹은 음식 그릇에 온갖 쓰레기와 남은 음식을 그대로 내놓아 냄새를 풍기는 사람도 있다. 반면 저렇게 시켜 먹은 음식 그릇도 깨끗하게 씻어서 내 놓는 사람도 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아니라 사소한 것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릇 하나에서 나는 사소한 것에 대해 예의를 지키고 살고 있는 지 자문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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