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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구루(guru)와 대화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웹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갖고 싶었다. 그런데 일방적인 컨퍼런스는 싫고 그렇다고 특정 주제에 대해 잡다하게 이야기하는 난상 토론도 싫다. Geek스러운 분위기의 코드 어쩌구 하는 모임도 싫다. 그럼 내가 원하는 것은? 나는 제목과 같은 <구루와 대화>를 원한다. 구루(Guru)는 종교적 의미에서 출발한 말이지만 현실에서 구루는 현명한 선생님을 말한다. 나는 현명한 구루가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분야 혹은 같은 분야지만 깨달은 바가 다른 구루 여럿이 동시간대에 동일한 장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100여명 정도가 편하게 앉거나 눕거나 기댈 수 있는 장소에서 구루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는 삶에 대한 것이고 자신에 대한 것이다. 누구도 그가 이야기하는 중에 방해하지 않는다. 구루는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하지도 않고 그들의 동의를 바라지도 않는다. 또한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도 구루를 존경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 반박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배움에 대한 열렬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스스로 찾아온 사람들이 구루의 이야기를 존경심으로 듣는다. 구루는 시간의 제한없이 이야기를 한다. 참석한 사람들이 동의하든 말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그 이야기는 기술적인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일반의 삶에 대한 것이다.

나는 존경이 넘쳐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그러나 내가 지난 몇 년 간 나가서 이야기했던 컨퍼런스나 발표회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존경심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었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회사가 돈을 주니까 정보를 얻으려 시류에 뒤쳐지지 않으려 그 자리에 있었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었다. 왜냐면 내가 원하는 그런 자리는 그 이후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그런 자리를 만들고 싶다.

내가 꿈꾸는 <구루와 대화>의 자리는 아마 이런 것이리라. 나는 아마도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각 분야의 서너명의 구루를 섭외할 것이다. 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당신을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마음껏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프리젠테이션 자료 따위는 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의 철학을 이야기할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당신은 그 날 하루 당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하면 됩니다. 당신이 구루가 된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그 날 당신의 제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편하게 앉아서 혹은 누워서 당신의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다른 위대한 구로가 그러했듯 당신 또한 산들바람이 부는 나무 아래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나는 아마도 관악구청이나 종로구청의 허락을 구해서 나무와 너른 공간이 있는 장소를 <구루와 대화>의 장소로 정할 것이다. 여러 명의 구루가 먼저 앉아 있을 장소에는 편안한 소파나 의자 혹은 카펫이 깔릴 것이고 구루가 있을 장소에는 하늘거리는 비단 천으로 햇빛을 막을 차양을 두를 것이다. 구루의 옆에는 그의 목마름을 해결할 각종 과일과 음료가 있을 것이다. 그가 배고프지 않도록 각종 음식과 다과도 준비될 것이다. 그의 앞에는 너른 풀밭이 열려 있을 것이다. 구루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아서 방석이나 돗자리나 음료를 갖고 와 앉거나 누울 것이다. 그들 중 누구도 메모지나 노트북을 들고 오지 말아야 한다. 왜냐면 구루의 이야기는 매우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억하고 외우거나 잊거나 둘 중 하나기 때문이다. 구루는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시간이 되면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의 목이 아프지 않도록 훌륭한 성능의 마이크가 주어질 것이며 주변에서 그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선선한 바람이 불 때 시작되어 저녁이 되어도 끝나지 않을 것이고 해가 져도 계속 될 것이다. 산 너머로 해가 저물면 구루가 있던 자리 위로 램프가 켜 질 것이고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신이 가져 온 촛불에 불을 붙일 것이다. 이야기는 밤 늦도록 계속될 것이고 어떤 구루는 술을 마시자고 이야기할 지 모른다. 사람들은 점점 더 구루의 주변으로 다가올 것이고 이제 어떤 사람은 구루의 바로 곁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구루의 이야기를 주제로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며 찻잔을 기울이거나 술을 마실 지도 모른다. 길고 긴 <구루와 대화>는 달이 사라져도 계속될 것이다. 구루가 떠나도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구루가 누구였는지 이미 잊고 구루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내가 만들고 싶은 <구루와 대화>다.


나는 언젠가 이런 <구루와 대화>를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천일야화처럼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렇게 이야기할 사람은 적다. 그래서 <구루와 대화>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약속하건데 언젠가 반드시 <구루와 대화>를 만들겠다. 내가 지금 꿈꾸는 일들을 내가 계속해나간다면 반드시 그런 날은 오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그런 순간은 반드시 올 것이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런 순간은 온다.


선현들이 그랬듯, 많은 구루들이 그랬듯 세상의 이치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될 것이다. 바로 거기서 새로운 희망이 시작될 것이다. 컨퍼런스나 토론회나 서밋 따위에서 얻을 수 없는 새로운 가치가 태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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