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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 혁신의 과제

며칠 전 네이버는 메인 페이지에 "최근의 오해에 대해 네이버가 드리는 글"라는 이미지 배너를 노출했다. 이 배너는 하루 만에 다시 "여러분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겠습니다"라는 이미지 배너로 바뀌었고, 공지 링크는 게시판으로 바뀌었다.





NHN이 왜 이런 배너를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노출했는가에 대한 블로거들의 다양한 분석이 있다. 훌륭한 분석도 있고 단지 NHN을 비난하는 글도 있다. 음모론도 있고 억측도 있다. 맞는 이야기도 있고 바보같은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NHN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 오해가 많다고 생각했고 그 오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공지를 낸 것인데 오히려 그 공지 때문에 더 많은 피드백이 들어 오자 하루만에 공지 대신 게시판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데 네이버가 메인 페이지에 이런 식의 적극적 의사 표현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네이버 서비스가 서버 오류로 인해 중단된 시점에서 비슷한 행동을 취한 적이 있다. 대통령 선거 시기에 네이버 뉴스의 댓글을 막고 한 곳으로 댓글을 모으는 정책을 펼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자신의 입장을 토로한 바 있다. NHN은 고객 응대에 있어서 과거 사례를 참조할 때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 문제가 극한에 이르기 전에는 자신의 입장을 표하지 않는다
- 온라인의 목소리보다는 오프라인의 목소리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 사용자와 대화를 콘텐츠 비즈니스로 인식한다

이 세 가지 현상은 대기업이 고객을 대하는 태도와 완벽히 일치한다. 맞다, NHN은 벤처 기업이 아니라 대기업으로 분류된 지 제법 되었다. 첫번째 태도는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세번째 태도는 이번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입장을 공지했다가 그 공지 때문에 더 많은 항의와 피드백을 받게 되자 '이럴 바에야 게시판으로 사용자의 이야기를 듣자'고 결정한 것 같다. 사용자의 피드백을 네이버 게시판 안에 가두어 두려는 의지가 매우 뚜렷하게 보인다. 문제는 두번째 태도다.

NHN의 사업 부문 대부분은 온라인인데 이들은 2003년을 기점으로 점차 온라인에서 사용자들이 자신에 대해 하는 이야기에 둔감해지고 있는 것 같다. 2003년은 NHN의 매출이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수립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 시점부터 NHN 특히 네이버를 중심으로 한 포털 사업 부문에서 고객의 소리를 수렴하는 방식이 '이상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온라인의 목소리보다는 오프라인의 목소리를 중요시하고 특히 저명한 인사의 의견과 면대면을 통한 피드백을 중요시하게 된다. NHN이라는 조직에서도 PR 부분의 역할이 강화되고 사용자 간담회를 통한 의견 수렴을 중요시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점에서 언론사 출신인 최휘영 대표가 취임하고 엑센추어 등을 통해 BPR이나 조직, 인사 관련 컨설팅을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NHN이 포털 사업 부문에서 온라인의 피드백보다 오프라인의 피드백을 더 중요시하게 된 것은 이런 환경 요인이 주요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의견을 NHN의 대외 사업 부문 담당자와 나눈 적 있는데 손사레를 치며 그렇지 않다고 부정했다. 자신들은 여전히 온라인의 목소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오프라인을 통한 피드백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을 옹호하는 당연한 현상을 인정하더라도 그 사람의 태도는 NHN이 고객의 목소리를 임의의 '균형론'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또 다른 증명이다. NHN은 자신들이 이미 대기업임을 잘 이해하고 있고 때문에 온라인의 목소리'만' 들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위에서 이야기한 첫번째 현상인 문제가 극한에 이르기 전에는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온라인의 목소리를 100% 신뢰하지 않고 소위 '균형'을 위해 오프라인이나 저명한 인사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아, 이거 큰 문제구나!"라고 판단한다는 말이다. 온라인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인 온라인을 통한 실시간 피드백의 장점을 스스로 버리고 있는 셈이다.

NHN이 이런 현상을 보이는 배경에는 대표이사의 판단과 조직 컨설팅을 통해 보다 보수적인 조직 운영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연간 1조원 가까운 매출과 2천 5백여 명(정직원만)의 조직원을 관리해야 하는 NHN 입장에서 전문 경영진의 도입과 과학적인 조직 관리론이 오히려 온라인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판단한다. NHN은 중간 관리 조직과 최상층 관리인에 대한 혁신과 몇 년동안 많은 비용을 투자하여 재편한 조직 관리론이 이런 현상 - 온라인 피드백에 너무 느리게 반응하고 잘못된 반응을 하다는 것 -의 주요한 이유라는 주장을 받아 들이기 힘들 것이다. 왜냐면 그런 변화를 추진하는 동안 NHN, 특히 네이버를 중심으로 한 포털 사업 부문의 매출은 급신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NHN은 2003년을 기점으로 take off 현상을 경험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당시 NHN의 경영을 담당하던 사람들은 눈치챘던 것 같고 바로 그 지점에서 혁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경영적 관점에서 고성장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경영 혁신을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위기가 닥쳐왔을 때 위기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영적 성과가 좋을 때 혁신을 해야 하는 것은 현대 경영 관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규칙 중 하나다. 나는 여러 경로를 통해 NHN이 조직과 경영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았다. NHN은 자신들이 온라인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임을 매우 잘 알고 있었고 그런 특징을 살리며 대기업으로서 면모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문제는 현재 시점에서 그런 노력이 잘못되었음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잘못의 결과 중 하나가 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고객의 불만 혹은 피드백에 대한 느린 응대, 잘못된 대응 전략이다.

아마 이 시점에서도 NHN은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여러분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겠습니다"라는 식의 게시판 링크를 공개한 것이 얼마나 보수적이며 재미없는 응대 방식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청와대 홈페이지의 공지를 보는 느낌이다. 이런 대응 방식은 NHN이 자신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NHN은 자신들 특히 네이버에 대한 각종 소문이 '잘못된 것'이라고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고 참고 참다 결국 공지를 한다고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관료적 태도와 완벽히 일치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자신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여러분의 생각이 틀렸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공지를 내고 나서 더 많은 항의가 들어오자 기껏 대응한다는 전략이 게시판을 공개하여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이다. NHN이 그토록 자랑하는 통합 검색만 해 봐도 NHN과 네이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수십만 개를 검색할 수 있을텐데 무슨 게시판을 통한 의견 수렴인가?

안타깝게도 현재 NHN은 너무나 관료적이어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인 것 같다. 능력이 있지만 겸손하게 여러 사람 -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균형일 것이다 - 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여 이런 식의 고객 응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 같다. 현재 NHN은 이런 주장을 접하고도 '이미 알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이 원하는 대답과 먼 거리에 있는 엉뚱한 대답만 계속한다면 NHN의 온라인 비즈니스는 긴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다.

NHN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지난 5년 간 NHN의 사업 운영 형태는 구글 따라하기와 다를 바 없다. 기술 중심의 회사로 키우겠다며 성과없는 검색에 몰입하고 있거나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며 1세대 창업자가 기술 전담으로 물러나는 것과 같은 전략은 구글과 다를 바 전혀 없다. 구글과 비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실리콘 벨리식'이라고 표현해 줄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혁신이 전혀 혁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적 상황에 맞는 혁신이 아니라는 점이 지금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 아니다, 독점적 지위 유지를 위한 보수적 경영 혁신은 어쩌면 정말 한국적인지 모른다. 그러나 IT와는 거리가 멀고 특히 웹 서비스와는 더 거리가 먼 혁신이다. 반면 과거 좀 멍청하게 보였던 (주)다음의 혁신 전략이 현 시점에서 더 맞았을 수 있다.

현재 포털 부문 2위 업체인 (주)다음 커뮤니케이션즈는 한 때 포털 부문에서 3위로 밀릴 정도로 경영 상황이 매우 악화된 시점이 있었다. 악화 시점의 절정인 2006년 8월 즈음 다음을 방문하여 임직원 대상 강의를 한 적 있다. 당시 다음 또한 조직 구조 개편과 혁신을 위한 컨설팅을 받고 있었는데 성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나는 다음을 방문하여 2시간 동안 한 가지 이야기만 했다,

"NHN을 주적(主敵)으로 설정하고 미친 듯 싸우며 단결하라"

나는 이 주장이 다음이 혁신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것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음의 기업 문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반골(反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스로 조직을 욕하는데 민망해하지 않고 그런 비판과 공개된 토론을 통해 조직은 성장한다고 믿는 문화가 있다. 그 문화는 창업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다음으로 유입된 조직원들이 만든 문화다. 그래서 그 문화는 결코 꺾이지 않으며 외부의 경영 컨설팅으로도 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이 최근 촛불 시위와 관련하여 미디어다음의 '아고라'로 포털 부문 1위 입성의 가능성을 찾게 된 것도 그런 기업 문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다음이나 '아고라'와 같은 문제적 서비스의 기조를 고집스럽게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경영 혁신이 아니라 다음의 반골 기업 문화가 만든 결과물이다. 반골 기업 문화는 사이트 방문자 혹은 고객에 대한 신뢰에 기초한 것이었고 결국 촛불 시위라는 우연한 정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나게 된 것이다. 촛불 시위와 같은 이슈가 아고라를 통해 불타 오른 것은 우연이지만 아고라를 만들고 실시간으로 고객의 목소리에 응대했던 기업 전략은 필연이다. 필연 속의 우연, 그것이 미디어다음 아고라가 갖는 의미다. 미디어다음의 블로거뉴스도 언젠가는 필연 속의 우연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현재 구조에서 NHN이 네이버에 '아고라'와 같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까? 물론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지만 NHN의 현재 조직은 이런 서비스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아고라'나 '아고라 청원'과 같이 하루에도 수십개가 넘는 법률적 이슈가 터져 나오는 서비스를 NHN이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소위 '내부적 검토'와 '외부적 조언'을 통해 대통령 선거 시기 뉴스의 댓글을 제한해 버린 정책을 편 NHN이 아고라와 같은 불타는 감자를 운영할 가능성은 없다.

만약 NHN이 현재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문제 해결을 통해 100년 기업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NHN은 결코 받아 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혁신을 해야 한다. 그들이 결코 받아 들일 수 없는 혁신은 이런 것이다,

1. 최휘영 대표의 퇴진
2. NHN 1세대 경영진의 완벽한 퇴진
3. 사업 부문에 따른 기업 분리

이 세 가지 혁신을 하지 못한다면 안타깝게도 NHN의 미래는 그리 밝지 못하다고 단정할 수 밖에 없다. 값 비싼 NHN 주식을 산 사람들에게 계속 실망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