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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성인 게임장을 검색하다

몇 주 전 아는 분이 동네에 놀러와 늦은 저녁을 먹으러 몇 번 가 본 적 있는 동네 음식점을 찾아 갔다. 그런데 음식점이 있어야 할 자리에 난데없이 성인 게임장이 있는 게 아닌가. 난감한 마음에 다른 곳으로 안내를 했는데 가는 길에 또 다른 하나의 성인 게임장과 성인 PC방이 생긴 걸 알 수 있었다. 결국 근처 호프집에서 간단히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작년 말부터 서울 시내를 돌아 다니다 보면 성인 게임장이나 성인 PC방이 유난히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황금성이니 바다이야기니 하는 '릴게임'을 주로 다루는 성인 게임장도 매우 크게 늘어났고, 카드 게임류를 주로 다루는 성인 PC방도 크게 늘어났다. 이번 주 포털 메인 페이지에는 이런 업체들의 난립에 대한 경계와 문제점을 다루는 기사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림1. daum.net 메인 뉴스 섹션)

(그림2. naver.com 메인 뉴스 섹션)

기사의 내용을 읽다 보니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인 게임장(성인 PC방과 다름)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는 아케이드 게임으로 '황금성'과 '바다이야기'라는 게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성인 게임장엔 가 본 적이 없어서 도대체 이게 무슨 게임일까 궁금했다. 다행히 여러 뉴스에서 이 게임이 무엇을 하는 것인 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고 있다.

2005년 성인도박게임의 새로운 강자 바다이야기(릴게임)가 등장했다. 빠찡꼬 등 기존 릴게임에서 금지한 예시기능을 첨가한 것이 인기의 비결이었다. 이 게임은 고래 인어가 화면에 나타나 수시로 색이 바뀌며 잭팟을 터뜨릴 신호를 알려준다. 따라서 이용자들은 눈앞에 아른거리는 대박의 꿈에 사로잡혀 쉽게 헤어나지 못했다.

(from : [대한민국은 도박중] 강해진 중독성 진화 거듭, 2006-07-11, 한국일보)
(그림 3. 릴게임 '바다이야기')

이 게임에 대한 기사를 보고 있던 중 기사 댓글에서 "이 게임 카이스트 출신이 만들었다던데..."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네티즌은 어디서 들은 이야기라고만 했다. 근데 나도 어디서 그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는 했다. 그래서 검색을 해 보기로 했다. 한국에선 인터넷 검색해 보면 다 나온다.


1. 바다이야기 제작사

일단 이 게임을 어디서 만들었나 알아 봤다. 간단하게 다음 뉴스에서 '바다이야기 개발사'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 본다. 곧장 (주)지코프라임이라는 회사가 개발사라고 결과가 나온다. 회사 홈페이지에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읽어 보니 이 회사가 직접 바다이야기를 개발한 것은 아니다. 회사 홈페이지의 연혁(company history)를 읽어 보고 관련 기사를 조사해 보니 이 (주)지코프라임은 '바다이야기'의 총판 역할을 했고 실제 개발은 에이원비즈(주)라는 회사라고 한다. 이 회사는 최근 (주)지코프라임에 인수합병되었고 한다.

(그림4. (주)지코프라임 기업 연혁)

2. 갑자기 황라열씨

지코프라임과 관련한 검색을 하다 엉뚱하게도 최근 한총련 탈퇴 및 이력 위장으로 논란이 되었던 서울대학교 전 총학생회장인 황라열씨에 대한 이야기가 검색된다. 이게 뭔가 싶어 자세히 읽어 보니 지난 5월 황라열씨가 한 대학 언론사와 한 인터뷰가 나온다. 그 중에 (주)지코프라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총학 게시판의 '학우 여러분들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에서 자신이 지코프라임이라는 회사에 속하게 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개인 회사인 서프라이즈 레코드에서는 게임 음악 작업을 위주로 (주)엑스페이스에게 아웃 소싱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주)엑스페이스의 게임 개발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아까운 인재들이 온라인 게임 개발을 하지 못하는 회사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중 엑스페이스 측의 부탁으로 대표를 맡게 되었고, (주)엑스페이스와 (주)지코프라임이 합병하면서 그는 자동적으로 대표직을 내놓고 (주)지코프라임의 직원이 되었다는 것...(중략)

...사람들이 회사와 관련해 조폭 등 암흑가의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일하는 서울대생만 해도 10명이 넘는 회사고, 회사에 대해 자신 있다... (중략)"라는 말도 덧붙였다.

(from : 황라열 서울대 총학생회장 입 열다, 2006-05-29, 유뉴스)

짧게 줄여서 이야기하자면 황씨가 있던 회사가 (주)지코프라임에 인수합병되었다는 거다. 황씨의 주장에 의하면 어쩌면 '바다이야기'의 제작자는 카이스트가 아니라 서울대 출신인가? 이 글의 목적을 분명히 하자. 나는 '바다이야기'라는 릴게임의 진짜 제작사가 누군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뉴스의 하단에 붙었던 댓글이 맞는 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3. 에이원비즈(주)

에이원비즈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일단 회사 연혁부터 살펴 봤다. 2003년도에 아케이드 경마 게임을 개발했다고 하고, 2004년도에 바다이야기 게임장을 열었다고 나온다. 그런데 검색을 해 봐도 이 회사가 어떻게 바다이야기를 개발했는 지 그 노하우는 무엇인 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이 회사에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공급하여 큰 돈을 번 ㈜벤텍디지탈이라는 회사에 대한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성인 게임장에서 얼마나 돈을 벌었는 지 모르겠지만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두 회사에게 감사장을 줬다는 기사도 찾을 수 있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유)에서는 작년한해 바다이야기의 성공적인 판매량에 더불어 정품윈도우 임베디드확산에 공헌한 에이원비즈 주식회사에 정품 임베디드 구매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벤텍디지탈과 함께 감사패를 증정하였다.

(from : 한국마이크로소프트(유)와 함께 감사패증정)

성인 게임장이나 성인 PC방이 컴퓨팅 관련 업계에 돈을 벌어 준다는 이야기야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라니 단속이나 관리가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기업 입장에선 돈을 많이 벌어주는 업체가 제일 좋으니까.


4. 우연히 제작사를 발견하다

결국 에이원비즈(주)에서 바다이야기를 개발했다고 생각하고 검색을 끝내려다 그냥 바다이야기라는 게임에 대한 소개서가 없을까 싶어 "바다이야기 PPT"로 검색을 했다. 검색 결과에서 드디어 바다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업체를 찾을 수 있었다. 포항공대 모학과의 병역특례 채용공고 게시판에 올라온 파워포인트 파일에서 한 회사의 소개서에 바다이야기를 개발했다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바다이야기를 개발한 회사는 (주)엔버스터라는 곳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내가 오래 전에 업무상 만나봤던 회사였다. 당시 다다닥이라는 온라인 타이핑 게임을 들고 제휴와 업무 협력 요청을 위해 당시 내가 근무하던 모 포털의 관계사로 찾아온 적이 있다. 회사 연혁을 확인해 보니 그 회사가 맞았다. 그리고 분명히 바다이야기를 개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림5. (주)넷버스터 연혁)

2000년 당시 서울대학교 재학 중이던 이 회사의 지원준사장은 게임 개발에 큰 의지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업무 제휴를 하지 못했지만 이후에 가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소식을 듣곤 했는데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가 있었던 걸로 안다. 어쨌든 이 회사는 2003년과 2004년 각각 아케이드 경마 게임인 Queen's Cup, 릴게임인 바다이야기를 출시한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다. 이 회사는 올해 1월 서초동 사옥으로 이전을 했고 최근 자본금도 늘였다.


5. 성인 아케이드 게임과 개발자들

이 이야기의 시작은 한 네티즌이 주장한 바다이야기를 카이스트 출신이 만들었다라는 뜬금없는 주장에서부터다. 그리고 결론은 (주)엔버스터에서 개발을 했고 그걸을 납품했거나 혹은 권리를 다른 업체로 넘긴 것으로 보인다. 상세한 사정이야 업계간 거래와 내부 사정이니 알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무슨 불법 도박 게임을 개발해서 넘긴 것도 아닌데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냥 바다이야기라는 성인 게임장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는 게임의 실제 개발자를 알기 위해 시작된 검색과 조사는 결국 이런 게임을 개발하는 업체, 혹은 게임 개발사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매우 흥미롭게도 대박을 쳤다는 게임의 개발사나 유통사, 게임 기계 개발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공급사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까지 돈을 제법 번 것 같다. 좋게 말하면 관련 산업을 부흥 시킨 것이고 아주 나쁜 의도로 말하자면 도박과 유흥에 갖다 바친 돈으로 이익을 창출한 것이다. 하긴 나쁜 의도로 이런 개발사를 비난하자면 한게임이나 피망, 리니지같은 업체도 함께 욕을 들어야 할 지 모른다.

반면 실제 게임 업계에서 이런 류의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개발자들의 입장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아래 글은 성인 아케이드 게임(릴게임)이라고 부르는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현업 개발자의 사행성 게임에 대한 의견이다. 이 의견에 반대하고 찬동하는 개발자들의 의견이 연이어 있다.

릴게임은 사행이 아니랍니다. (출처 : http://www.gpgstudy.com/)


6. 근본 문제의 대안

단편적으로 볼 때 최근 주택가까지 침입하고 있는 성인 게임장이나 성인 PC방은 나라 꼴이 엉망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당장에 이들을 단속하고 몰아 내야 직성이 풀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하루 18시간 노동을 해도 밥벌이하기 힘들어 허덕이는 영세 상인들의 몰락이 있다. 30년 노동해도 번듯한 자기 집 하나 구하기 힘든 서민 경제의 몰락이 있다. 제대로 게임다운 게임을 만들 수 없는 척박한 게임 업계의 현재가 있다.

사행성 오락과 도박을 할 수 있는 장소의 증가를 마치 '도박병에 걸린 한국'으로 막연히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수요가 공급을 부른다'는 매우 초보적인 경제학 이론을 거들먹 거리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오히려 "일상적 고통이 한탕주의을 부추긴다"는 게 더 적절한 해석 아닐까. 사행성 게임의 범주를 규정하거나 법률로 강제해야 하는 것에 대한 토론과 고민 그리고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현상이 나타나도록 만든 근본 원인에 대한 고민과 대안 제시다.

이런 고민을 잘 해결하라고 대통령을 뽑을 때 나라 전체가 미친듯 싸움을 하는 것이고, 좀 더 전문적으로 대안을 내 놓으라고 국회의원을 뽑는 것 아닌가. 근본 대안까지 국민인 내가 제시해야 한다면 그대들은 옷을 벗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