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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패러다임

패러다임(paradigm) 이 단어를 일상적으로 듣게 된 것은 1998년 사회 생활을 막 시작할 사이었다. 패러다임이라는 단어를 대중적으로 설파한 사람은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을 쓴 토마스 쿤이었다. 대학 시절 이 책 하나로 철학과에서 한 학기 수강을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패러다임이라는 단어를 어디에 쓰는 게 정확한 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패러다임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것을 경험하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대학 시절 사회과학과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수십 년을 교단에 선 교수들도 쉽게 설명하지 못해 쩔쩔 매던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쉽게 쓸 수 있다니!

그 시절을 거치면서 나는 이런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개념 정의없이 사용하는 단어야 말로 현대의 바벨탑이다"

배우는 학생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현학적인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소위 좀 배웠다는 지식인들이나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사람들이 쉽게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들의 지식이 표면적으로 반짝이며 아름답게 보일 지 모르겠지만 현실의 거친 면과 만나게 될 때 손쉽게 껍질이 벗겨지며 실체가 드러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왜 웹 2.0 시대에 온라인에서 쌀을 사고 파는 서비스가 없을까요?"라는 멍청한 질문을 대중에게 던지곤 한다. 지식은 있지만 깊이가 없고 하나의 단어에 대한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 단어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단지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실체화하기 위한 도구로써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배우는 학생들에게 진지하게 충고하고 싶다.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할 수 없는 단어는 쓰지 말라. 자신이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를 써야하는 압박을 받지도 않는다. 레포트를 쓸 때, 시험 답안지를 쓸 때, 토론을 할 때 비록 거친 일상의 단어라도 자신이 분명히 설명할 수 있는 단어만 사용하라. 그렇게 단어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될 때 느리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철학을 구축할 수 있다. 지금 인정 받거나 만족을 얻기 위해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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