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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디스트릭트9 기대했다 조금 실망한 엘리시움 관람후기

- 의료보험이 사라진 시대 <식코> SF 버전

- 액션은 있지만 통괘하지는 못하다

- 디스트릭트9에서 세트만 빌려 온 영화


엘리시움(Elysium)은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 사후 세계를 말한다. 신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과 영웅들만 갈 수 있다는 곳으로 북유럽의 '아스가르드'처럼 신만 접근할 수 있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영화 '엘리시움'은 지구를 버리고 떠난 부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구 주변의 공간을 의미한다. 부를 축적하지 못한 자들은 오염된 지구에서 살아가야 하고 부를 축적한 자들은 위험과 질병과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우주 공간 '엘리시움'에서 살아간다. 영화는 그런 미래의 어느 날인 2154년 시작한다. 



암울한 지구와 거대한 엘리시움


이 영화는 두 개의 주요한 배경에서 진행된다. 하나는 거대한 우주 정류장처럼 생긴 '엘리시움'이고 다른 하나는 거대한 슬럼으로 변해 버린 지구다. 그런데 영화 속에 나오는 지구의 슬럼은 매우 낯익다. 멕시코, 브라질, 인도 등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슬럼과 영화 속 오염된 지구의 모습은 매우 닮아 있다. 어떤 장면은 CG를 사용하지 않고 현재 존재하는 어떤 슬럼에서 찍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감독의 전작 <디스트릭트 9>에서 외계인들 거주 지역도 이런 슬럼으로 묘사되었다. 아무래도 모두가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묘사를 즐기는 것 같다. 그나마 서로가 먹고 먹히는 아비규환의 상황으로 묘사하지 않는 건 다른 감독에 비해 인간의 이성에 대해 믿음이 있기 때문일까.

 


지구의 모습이 험하면 험할수록 하늘에 떠 있는 천상의 공간인 '엘리시움'의 비현실성은 강화된다. '엘리시움'은 질병이 없고 오염되지 않았고 고통이 없는 선택된 자들의 공간이다. 지구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엘리시움은 지구의 중력권에 있지만 철저하게 통제된 그 자체로 독립된 국가다. 메인 프레임이 이 거대한 시스템을 통제하고 있고 시스템은 '엘리시움 시민'을 보호한다. 그리고 '시민'이 아닌 자의 침입을 막기 위해 물리적 응대를 서슴지 않는 엘리시움의 수호자인 총리가 있다. 영화 속에서 총리는 폭력을 선호하는 걸로 나오고 이것 때문에 대통령과 대립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궁극적으로 엘리시움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점에서 별 차이는 없다. 다만 총리가 좀 더 물리적인 방법을 선호할 뿐이다. 





엘리시움은 정지 위성처럼 지구 중력권 근방의 우주 공간에 있는데 언뜻 볼 때 지구로부터 물자를 공급받는 우주 정류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엘리시움은 내부에 자연 생태계가 갖추어진 하나의 독립 행성처럼 보인다. 스페이스 셔틀을 통해 지구와 교통하고 있지만 영화 속의 상황은 중력이 작용하여 엘리시움 내부의 물과 공기를 잡아 두고 있다. 영화 속에서 엘리시움은 대략 아래 그림과 같은 정도의 크기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저 정도 크기의 엘리시움이면 대지와 물과 대기를 유지할 정도의 중력을 만들 수 있을까? 영화적 상상이라 생각하고 넘어갈 법 하지만 이 궁금함을 풀기 위해 도전한 사람도 있다. 


http://www.wired.com/wiredscience/2013/05/gravity-in-the-elysium-space-station/



올해 5월 '엘리시움'의 예고편을 보고 작성된 이 글은 매우 재미있긴 하지만 물리학적 상식이 부족한 내가 읽기엔 꽤 버거운 내용이다. 어쨌든 이 분석에 따르면 '엘리시움'은 지구와 비교하여 저 하얀 점 정도 크기일 것 같다고 한다. 달보다 크지는 않지만 결코 작은 크기는 아니다. 




우주로 떠난 <식코>


'엘리시움'의 주제는 무엇일까? SF 영화는 그냥 재미삼아 보면 될 일이지 주제까지 생각할 게 뭐냐고 묻는다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 번 생각해보자. 왜냐면 그래야 이 영화에서 '엘리시움'에 가기 위해 목숨을 걸고 머리통에 구멍까지 뚫는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이 영화는 지구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부를 가진 자들이 '엘리시움'으로 옮겨 가면서 그들의 '부'와 함께 여러가지 최신 기술도 함께 가져간 것 같다. 쓰레기만 남은 지구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치료 능력이다. 지금으로부터 140년 후의 미래지만 사람들은 지구에서 병을 치료할 수 없어서 '엘리시움'을 향한 목숨을 건 밀항을 감행한다. 영화 초반부 엘리시움에 도착한 한 모녀는 치료기기를 통해 병을 치료한다. 치료기기는 순식간에 아이의 병을 치료하는데 그 병이란게 '복합골절' 어쩌구하는 것이다. 아이는 예수가 내린 기적을 경험한 듯 멀쩡하게 두 발로 걷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 상황이 된다. 그가 살아 남으려면 '엘리시움'에 가야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설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엘리시움의 웬만한 가정마다 한 대씩 있다는 그 '기계'는 모든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 같다. 설정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 같다. 말도 안되는 이런 설정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엘리시움의 시민들은 그 기계에 대한 접근을 막고 있는 걸까? 무슨 해를 입히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치료를 하려는 지구인들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치료 기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도 될텐데 말이다.


여기서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볼 필요가 있다. '엘리시움'과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제어해야만 가능하다. 아이를 함부로 가질 수 없고, 병원균을 가져서도 안된다. 폐쇄적 생태계에서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노동력의 상실일 뿐 아니라 다른 구성원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최선을 다해 어떤 기기를 만들게 되었고 그것은 현존하는 거의 모든 병 - 백혈병도 한 방에 고친다 - 을 고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구와 엘리시움 사이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고, 엘리시움은 정말 그 원어가 의미하듯 "신들의 땅"이 되었다. 그 치료기기는 어느 사이엔가 지구인들은 사용해서는 안되는 '신물(神物)'이 된 것이다. 그러니 지구인이 신인 '엘리시움'에 오는 것은 결코 허락되지 않고 죽을 병에 걸리면 그냥 죽어야지 신의 땅에 와서 고쳐서는 안된다는 규칙이 생긴 것이다. 결국 영화는 미래의 신과 인류의 갈등을 다루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영화를 이해하기엔 뭔가 좀 부족한 게 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비로소 하나의 끈을 찾을 수 있었는데 바로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이클무어의 2007년 작 '식코(SiCKO)'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 의료 서비스의 현실과 의료보험이 없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미국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친 손가락을 치료할 돈이 없어서 손가락을 절단하는 사례를 보여주며 마이클무어 감독은 "이게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미국인가?"라고 묻고 있다. '엘리시움'에 사는 시민들은 질병으로부터 자유롭다. 설령 병에 걸리더라도 무엇이든 고쳐주는 치료기기에 잠깐 누웠다 나오면 금방 건강한 몸이 된다. 그러나 지구에 사는 시민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근근히 살고 있고 병이 나서 병원에 가도 치료할 방법이 없다. 인간의 지식과 기술력은 병을 치료할 수 있지만 그 능력은 모두 저 하늘에 떠 있는 '엘리시움' 속에 있다. 고칠 수 있는 병이지만 돈이 없어서 치료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식코'와 '엘리시움'은 많이 닮아 있다. 




볼만한 아이템들


이 영화는 군사,무기 매니아나 키즈덜트가 좋아할만한 매우 현실적인 아이템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아이템은 영화 포스터에도 나왔고 실제 의료 목적이나 군사용으로 개발되고 있는 근력 강화 로봇이다. 영화 속 근력 강화 로봇은 인간의 척수와 결합하여 동작한다는 점에서 현재 실용화된 것과 차이가 있지만 근본 원리는 크게 다를 바 없다.




이 근력 강화 로봇은 실제 의료 부문에서 사용 중인데, 재활의학 쪽이나 노인이나 장애인의 보조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군사용으로 사용되는 근력 강화 로봇을 프로토타입 단계를 넘어서 실전용으로 개발되고 있다. 



또 다른 볼 거리는 무기 종류인데, 주인공이 후반부에 주로 사용하는 무기인 레일 건은 엄청난 화력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그런데 레일건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 초반에 나오는 무기인데 마치 AK47을 개량한 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총에 사용되는 총탄은 주변의 공기를 터뜨리는 동작을 해서 공격받는 상대와 그 주변을 풍비박산을 낸다고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코 앞에서 주인공이 적에게 공격을 퍼붓지만 적은 순간적으로 개인용 베리어를 작동시켜 모두 막아낸다. 손목 부위에서 자신의 앞쪽으로 강력한 에너지 장벽(플라즈마 장벽처럼 보였다)을 만들어 짧은 순간 전면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방어구였는데, 한번 사용하면 에너지가 모두 닳아서 못 쓰게 되지만 결정적인 순간 주인공으로부터 적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 준다. 이 방어구는 적이 아니라 주인공에게 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최고의 생존률을 보장해주는 방어구였다. 






주인공이 도시 속에서 쫓길 때 적들이 비행선에서 작은 드론을 쏟아 내는데 이건 실제로 지금도 사용 중인 드론(무인비행선)과 동일하게 생겼다. 문제는 디자인이 꼭 로봇 청소기처럼 생겼다는 것? 딱 이렇게 생긴 디자인에 중간에 4개의 로터가 있는 드론이 등장하는데 실제 요즘도 이런 드론은 사용되고 있다. 

'뇌 저장'은 SF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설정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특별할 수 있을 것 같다. 뇌를 저장 공간으로 활용하고 그것을 해킹하거나 복사하는 것은 여러 영화에서 다뤄진 적 있다. 대표적으로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가 있다. 이 영화는 신체와 뇌의 일부마저 기계로 대체된 존재들이 나오는데 스스로 '나는 어디까지 인간인가?'라고 묻는 실존적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젊은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영화 <코트명 J>에서도 뇌를 이용하여 중요한 데이터를 배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1995년 영화였던 당시 주인공이 뇌를 통해 옮겨야 하는 용량은 320GB였다. 



영화에 나오는 무기 중 재미있다기 보다는 좀 당황스러운 건 바로 이 로켓포. 지상에서 발사한 휴대용 로켓이 성층권을 뚫고 우주로 날아가는 신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미사일이 있으면 대륙간 탄도탄을 그냥 들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기분일 듯.




감독과 배우들


감독 : 닐 블롬캠프



아마 '디스트릭트9'을 보고 그 기대감으로 '엘리시움'을 본 나 같은 사람들은 감독 때문에 좀 화가 났을 것이다. 대체 2009년 이후 감독에게 무슨 변화가 생긴 걸까? 왜 영화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걸까? 곰곰히 생각하다 결국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디스트릭트 9'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여전히 '흥행 감독'과 거리가 있는 자신에 대해 반성. 뚜렷할 족적을 남길 수 있는 흥행성 있는 SF 작품 하나 만들어보자고 작정. 스토리의 애매함은 과감하게 버리고 그래 이번엔 정말 돈이 되는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마치 영화 <베를린>을 보는 느낌이었다. 류승완의 독특한 터지고 째지고 부숴지는 액션을 기대하고 갔던 사람들이 느꼈던 실망감을 이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오며 감독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느낌. 


맷 데이먼



본시리즈로 국내에서 많은 팬이 있는 배우. 그냥 대사 많이 없는 영화에서 액션 열심히 하는 배우로 알았는데 이번 영화를 보며 나름 괜찮은 배우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성격 묘사가 훌륭했다. 심지어 손발이 오그라드는 마지막 씬도 나름 잘 처리했다고 본다. 액션 영화에 좀 과하다 싶은 성격 묘사가 아쉬울 지경이었다.




조디 포스터



야심찬 총리 역할을 잘 수행했다. 쨍쨍한 발음과 차가운 인상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지만 감동적일 수 없는 캐릭터의 한계 속에서 허덕이는 게 안타까웠다. 하도 어릴 때부터 봐서 한 60은 된 줄 알았더니 이제 52살이다. 저 냉정한 외모 때문에 제대로 된 로맨틱 영화는 찍은 적 없는 것 같다. 있던가? 어쨌든 내 기억에는 없다. 



샬토 코플리



디스트릭트9의 순진하고 멍청한 주인공에서 광적인 킬러가 되어 돌아왔다.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독특한 매력을 만들지도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레옹>의 게리올드만 같은 캐릭터 창조를 기대한 것은 무리였나? 2013년 미국판 올드보이의 주인공 상대역 아드리안 프라이스(한국판 이우진)으로 나오기도 했다. 




평점과 추천 포인트


영화 '엘리시움'에 대한 내 평점은 8점. 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는데 나는 SF 영화는 무조건 7점부터 시작하는 걸 감안하길. 만약 '디스트릭트9'에 대한 내 평가를 10점으로 보고 이 영화를 비교하면 7점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히 '디스트릭트9'에 비해 훨씬 유명한 배우들이 나오고 카메라 워크도 좋고 스케일은 말할 수 없이 커졌다. 그러나 '디스트릭트9'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는 은유가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스토리는 진부하다. 뭔가 반전이 있을 것 같지만 반전은 없다. 그냥 기대한 그대로 진행될 뿐이다. 은유가 사라진 대신 영상이 화려해져서 비슷한 점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스토리가 진부해져서 점수를 낮게 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SF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봐도 돈 아깝지는 않은 영화. 적절한 서스펜스와 눈요깃거리 아이템들이 많이 나오고 파괴, 격투신도 그럭저럭 볼만하다. 잔인한 장면이 몇 군데 나오긴 하지만 참고 견딜만한 수준이다. 18세 이상 관람가이므로 가족 영화는 절대 아니고, 사귄지 얼마되지 않아 상대방의 영화 취향을 모른다면 같이 가지 않는 게 좋을 듯 하다. 친구와 함께 가는 건 괜찮다. 


그런데 왜 이 영화에서 총리는 '불어'를 쓰는 걸까? 그리고 킬러로 나오는 인물도 '불어'를 쓰는 걸까? 



** 미항공우주국(NASA)는 1970년대 '엘리시움'과 같은 우주식민지를 묘사한 적 있다. 실제로 생태계를 만들려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공간이 필요하겠지만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이것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것 같다.




보너스 샷 하나 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아는 캐릭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