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guacu ONLY

설국열차(Snowpiercer) 관람후기, 열차가 멈추면 무엇이 달라지나?



영화에 대한 기대




설국열차 (2013)

Snowpiercer 
7.2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정보
SF, 액션, 드라마 | 한국, 미국, 프랑스 | 126 분 | 2013-08-01

 

 

오래 전 이 영화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판 만화를 서점에서 본 적 있습니다. 현재 절판된 이 만화를 읽다가 도저히 적응하기 힘든 정적인 그림체에 질려서 덮어 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덮으며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봉준호 감독이 제작한다고 했을 때 내심 어떤 작품이 나올까 기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조조로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를 12살 딸과 함께 봤는데 15세 관람가를 얻었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잔인한 장면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 중초반부의 도끼 전투 장면에서는 고어 무비를 보는 느낌까지 들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한국의 영화 심사 기준이 상당히 완화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제가 이 영화의 흥행에 대해 기대했던 것은 "500만 명은 기본이고 7백만 명이 넘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폭력적이고 잔인한 전투 장면이 과다하다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고 나올 때는 "300만 명에 5백 만명이..."라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물론 처음 생각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저처럼 이 영화에 대해 뭔가 SF적인 모습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많은 전투 장면에서 다소 충격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이 영화가 뭔가 고도의 철학적 이슈를 가진 SF 영화라고 짐작하여 관람을 포기했던 사람들 중 폭력성 짙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람을 추동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빠지는 숫자와 들어오는 숫자가 교묘히 엮여 들어가고 어쨌든 그 폭력적 전투 장면마저 미화되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면 이 영화의 흥행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봉준호 스타일



저는 봉준호 감독의 팬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본 게 그의 필모그래피 중 절반 정도 됩니다. 이번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라피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6년 <괴물>과 2009년 <마더>를 통해 대중성과 작품성에 대해 증명했다면 2013년 <설국열차>는 감독의 디렉팅 능력을 세계 시장에 증명하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인 만화와 이 영화를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작품 프레임을 원작 만화에서 갖고 온 것은 분명하지만 전체 스토리의 흐름과 등장인물에 대한 해석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저 봉준호의 <설국열차>로 보는 게 속편할 겁니다. 

 

우려했던 한국적 정서에 치중하는 농담이나 캐릭터 설정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극중 한국인 엔지니어로 나오는 남궁민수(송강호 분)는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여 통역기를 통해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는 한국어에서 여러 비속어가 사용되지만 굳이 한국 관객을 웃길 의도를 발견하기 힘들었습니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아버지인 남궁민수에 비해 딸인 요나(고아성 분)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합니다. 물론 긴 대화는 나오지 않지만 요나는 극중에서 뜬금없이 부딪치고 투쟁하는 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의 완충제 역할을 합니다. '등장 인물'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송강호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고 한국어만 쓰는 설정은 다소 이해하기 힘듭니다. 

 

며칠 전 출연 외국 배우들이 한국에 왔을 때 기자회견장에서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 "국적이 다른 감독과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이런 글로벌한 작품이 흔해진 마당에 더 이상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그만했으면 합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감독과 출연자 이름에 한국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면 이 영화의 국적을 한 번에 판단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사실 저는 이 영화가 과거 봉준호 감독 스타일의 영화라고 생각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봉준호의 향기가 나기는 합니다만 그보다는 암울한 초근접 미래에 대한 영화였습니다. 좁고 험악한 열차의 꼬리 공간에서 더럽고 불쾌한 복장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피지배층의 모습은 몇몇 영화에서 흔하게 보았던 경제적 하층민의 모습을 연상케 했습니다. 

 

하층민들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봉준호 감독은 전형성과 함께 투사의 모습을 중첩시키는 것 같습니다. 험악한 환경에서 머무는 하층민들의 모습은 2차 대전 당시 수용소에 갖혀 있던 유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설국열차>에서 하층민들은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지배층과 싸움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열차의 군대와 싸웁니다. 보통의 영화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하층민들은 군대에게 학살 당하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에서 그런 장면은 일부에서 나올 뿐 무기가 대등한 상태에서는 대등하게 싸웁니다. 다른 영화에서 느끼는 개인적으로 약하고 집단적으로 싸울 때조차 무기력하게 당하는 대중과 또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 굳이 봉준호 스타일을 찾는 건 오히려 무리수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그런 걸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 영화를 한국 감독이 만든 세계 영화로 인지하기 때문일 겁니다. <설국열차>가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한다면 봉준호 스타일은 바로 이런 것이 되겠죠. 전작인 <괴물>과 <마더>의 공통점을 굳이 찾으려는 노력이 허망한 것처럼 <설국열차>를 전작들과 비교하여 봉준호 스타일을 찾는 것도 큰 성과는 없을 듯 합니다. 사회적 문제, 공공의 가치, 가족의 의미, 결론 비틀기와 같은 걸 굳이 최근 세 작품의 공통점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건 굉장히 많은 영화들의 공통점일 뿐입니다. 

 

 

 

등장인물

 

이 영화의 주인공은 크리스 에반스(커티스 역)입니다. <설국 열차> 개봉 며칠 전 크리스 에반스와 틸다 스윈튼(메이슨 역)이 내한했을 때 주인공보다 훨씬 주목 받았던 것은 조연인 틸다 스윈튼이었습니다. 저도 틸다 스윈튼에게 훨씬 관심이 깊었고, 크리스 에반스는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보다 크리스 에반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우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대표적인 3인을 이야기합니다.

 

크리스 에반스

 

열차 꼬리 폭동의 주동자인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는 새로운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지만 스스로 그것을 거부합니다. 영화 후반부에 이유가 밝혀지듯 그에게는 잊고 싶은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과거가 있고 그로 인해 피할 수 없는 지도자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앞장 서서 싸워야 하고, 타협해야 하고, 결단해야 하며, 그리고 매순간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합니다. 이 영화는 마치 커티스의 앞 칸을 향한 진격과 투쟁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비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희생을 각오하고 계속 진격해야 하는가, 진격의 끝에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이 정말 옳은 결정인가?와 같은 질문을 끝없이 합니다.

 

영화배우인 크리스 에반스는 커티스의 역할을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잘 소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영화 중초반의 전투 장면에서 커티스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 짧은 순간 흔들리는 눈빛을 소화하는 걸 보고 감탄했습니다. 크리스 에반스가 터전으로 삼고 있는 헐리우드에서 그의 연기를 어떻게 평가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 동안 크리스 에반스가 연기했던 깔끔하고 덴디한 전형적인 미국 젊은이 이미지에서 훌륭하게 탈출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평가에 대해 "크리스 에반스는 저평가 가치주였다."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게 맞을 겁니다. 발 연기를 하던 배우가 갑자기 연기 신내림이 있어서 연기를 잘하는 게 아니듯, 어떤 배우들은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변신에 실패하거나 적절한 변신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 에반스는 그런 의미에서 <설국열차>를 통해 매우 중요한 캐릭터 변신의 기회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내년도 작품으로 또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가 나와 있던데, 뭐 변신의 기회를 그냥 리프레시의 기회로 삼는 것도 자신의 판단이라고 봅니다. 세상 모든 배우가 작품성을 지향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송강호

 

남궁민수(송강호 분)는 명실상부한 이 영화의 조연입니다. 앞 칸으로 진격하려면 칸마다 잠긴 문을 열어야 하는데, 이 열차의 보안 시스템을 만든 사람이라 영화 내도록 죽을수도, 죽어서도 안되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그가 죽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앞 칸으로 진행하는 설정이 아니라서 그는 비록 상처입더라도 어쨌든 영화 끝까지 나올 수 밖에 없는 인물이 됩니다. 그게 남궁민수의 매력을 약화시킵니다. 물론 남궁민수의 딸은 앞 칸으로 진격하는 것과 별 관계없는 캐릭터라서 남궁민수는 딸의 보호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게 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설정으로 인해 안전한 캐릭터인 건 분명합니다. 

 

남궁민수는 여러가지 미스테리를 안고 있는 인물입니다. 스토리에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두 모녀가 최초 감옥에 갖혀 있었고, 남궁민수가 열차에서 탈출했다 얼어 죽은 시신들을 보며 "맨앞에 있는 사람은 여자다."라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반란 주동자인 커티스가 "한번도 꼬리쪽에 가 본 적 없지 않느냐?"라고 묻는 걸 볼 때 남궁민수는 중간 혹은 앞쪽 칸에서 살았던 엔지니어로 보입니다. 그가 열차를 설계, 제작하는데 관여했던 보안 부문 엔지니어라는 점을 볼 때 세상에 한파가 몰아쳐서 모두 설국 열차로 대피했을 당시 남궁민수는 앞칸 사람 즉 지배자들의 위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어떤 이유로 감옥에 갖혔는지 영화에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크로놀이라는 환각제를 얻기 위해 문을 따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그가 4년 전 일어났던 폭동과 관련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화가 나오기는 하지만 여전히 애매합니다. 게다가 그는 열차의 주인이자 열차의 가장 앞칸 엔진실에 있는 윌포드(애드 해리스 분)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커티스와 남궁민수의 첫 만남, 감옥에서 꺼낸 그에게 다음 칸으로 가는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자 그는 떨떠름한 태도를 보입니다. 앞으로 진행되며 커티스와 남궁민수의 관계는 다소 개선되지만 여전히 남궁민수는 이방인처럼 굽니다.

 

남궁민수가 상징하는 것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인 것 같습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아나키스트와 같은 태도는 점점 더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영화 중반부의 도끼 전투 장면에서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가 전투를 벌이는 장면은 몇 번 나오지 않는데 그 장면들의 공통점은 자신 혹은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선택은 아나키스트다운 어떤 것이 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남궁민수의 태도와 역할에 굉장한 의구심이 들었는데, 그의 캐릭터를 아나키스트로 설정하니 대부분의 행동들이 이해되었습니다.

 

 

 

틸다 스윈튼

 

틸다 스윈튼(메이슨 역)은 국내에서도 연기파 배우로 많은 팬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예고편에서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주었는지 정작 영화를 보는 중 그녀의 존재감이 다소 약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녀의 모든 연기는 예고편에서 다 보았다'고 말할 지경으로 말입니다. 메이슨은 영화 속에서 '총리'로 나옵니다. 물론 뒷칸의 총리가 아닌 앞칸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총리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매우 많은 '총리'들은 대변인, 2인자, 민감한 성격과 같은 특징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런 걸 거부하는 총리라면 윈스턴 처칠이나 대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정도고 나머지 영화 특히 사회 비판적 성격이 강한 영화에 등장하는 '총리'들은 대부분 저런 식의 정형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메이슨 또한 그런 정형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약자를 탄압하는 것을 통해 지배자이자 지도자이자 '신'과 같은 윌포드에게 충성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고 있습니다. 더욱 잔인하게 탄압할수록 자신의 충성도도 높아지는 것이라고 철저하게 믿고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인물의 특성은 비현실적이며 허구적이라고 교과서에서 가르치곤 합니다. 저도 어릴 때 학교 국어 수업 시간에 '전형적 인물'에 대해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전형적 인물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전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국정원 원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메이슨과 같은 역할을 전형적이며 현실적인 캐릭터라고 보는 게 더 옳을 것 같습니다. 메이슨은 배신을 밥 먹듯 하는데 이것 또한 매우 현실적입니다. 

 

영화 속 메이슨은 폭도들에게 잡혀 목숨을 구걸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행동을 하나 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행동인지 영화를 보고도 한참 고민을 했습니다. 좀 뜬금없는 행동을 하거든요. 이 글을 쓰면서 방금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습니다. 그건 아마도 '늙음', '상실', '복종'에 대한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분장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충격적이었고, 영화를 본 분들은 메이슨의 손짓 장면과 함께 기억에 깊이 남을 장면이 될 것입니다. 

 

 

알리슨 필

어디서 많이 본 인물이다 싶었는데 미국 드라마 <뉴스룸>에 출연했던 배우였습니다. 짧은 장면 출연이었지만 미친 선생님 연기로 인상깊어서 장면 검색을 했는데 누드 유출 사진이 걸리네요. 그래서 생략.

 

 

 

미장센과 영화의 주제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 속 열차는 실제 제작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매우 제한된 공간이 열차에서 입체적 느낌을 주는 게 쉽지 않았을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너무 갑갑한 느낌이 들었을 것인데 그런 문제점들을 흔히 보기 힘든 화면 각도로 극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영화에서 많이 쓰지 않는 페이드인,아웃 기법이 적절하게 사용된 것도 직선으로 긴 열차라는 구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영화 초반의 화면은 매우 어둡습니다. 디지털 보정을 한 스크린에서 보는데도 눈이 침침할 정도로 어두웠는데 이건 마치 영화 <늑대소년>을 보면서 그 뿌연 화면 - blur를 표현한 '뽀사시 효과'라고 하더군요 - 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이후엔 점점 더 괜찮아졌습니다. 장치 디자인에서 다소 아쉬웠던 것은 세 가지입니다.

 

유대인 수용소를 연상하는 열차 끄트머리에 대한 묘사는 이해할만한 수준의 참담함이었는데 그것의 참담함을 더욱 강화시키는 게 음식 제조 칸의 비밀이었습니다. 물론 충분히 구역질날만한 묘사였지만 워낙 그동안 단련이 되어 그런지 다소 약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음식의 재료가 된 '그것'은 살아남은 인간에 대한 중의적인 표현일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좀 더 충격적인 비주얼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중간 칸을 지나며 상위 계층이 거주하는 칸으로 갈수록 다소 비현실적인 모습이 보입니다. SF적 사실성 보다는 판타지적 비현실성이 접목된 모습입니다. 그래서 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SF 영화라고 하기엔 설정이 어설프고, 판타지적 비현실성이라고 하기엔 화면이 너무 선명합니다. 이런 실망은 가장 앞 부분으로 갈수록 점점 더 증가하다 최종 보스가 존재하는 공간에 들어가서도 비주얼이 기대했던 것보다 약했습니다.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적절한 수준에서 SF와 판타지를 섞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사실 빙하기로 인해 인류가 전멸한 지구를 18년 동안이나 달리는 기차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설정이긴 합니다. 


 

문득 이 영화가 원작 만화로부터 주요 스토리와 상황, 설정 등을 갖고 오긴 했지만 그로 인한 부담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영화를 SF 영화라고 생각하며 보는 사람은 어설프게 묘사된 미래 모습에 실망하게 될 것이고, 이 영화를 계급간 갈등을 SF라는 틀에 끼워 넣었다고 생각하며 보는 사람은 사회성을 빙자한 폭력 고어 무비라고 실밍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만약 영화의 미장센이 개판이고, 연기자들의 발연기에, 편집도 엉망이었다면 두 비판이 콤비네이션으로 들어왔을 겁니다. 여기서 봉준호의 스타일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영화 스토리와 배경의 애매모호함은 원작의 상상력에 맡겨 버리고, 사회적 메시지는 영화적 현실에서 해설해 버리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SF를 기대한 사람들은 피가 튀고 살이 찢기며 뼈가 부러지는 하드한 전투 장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기대한 사람들은 '열차가 멈춰봐야 뭐 있나?'라고 생각했는데 멈춰보니 뭔가 있다는 걸 보게 될 겁니다. 특히 이 영화의 결론은 매우 이상한 봉준호식 꼬으기인 것 같습니다. 본질적으로 이 영화는 불량 사회인 열차를 멈추면 모두 얼어죽는다는 진실이 정말 진실이냐고 묻는데서 시작합니다. 열차의 끄트머리에 있는 하층민들은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라며 폭동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폭동에 성공을 하니 이건 성공을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닙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극 백곰은 사람 먹기를 토끼 먹듯 한다는데, 이 영화의 결론은 도대체 뭐지? 

 

영화의 첫 장면에서 "낮아지는 기후를 막기 위해 인류는 지구에 특수 약품을 뿌리고 결국 다 얼어 죽었다."는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또한 그런 바보짓의 반복인 것 같으니 영화의 주제는 "바보짓하다 다 망하는 인류"에 대한 걸까요? 아니면 그냥 흔히 알고 있듯 압제와 독재의 열차를 탈취하여 앞칸 것들을 싹쓸이 해 버리면 평화가 올까요? 혹은 이러나 저러나 열차가 멈추면 다 얼어 죽는 건데,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대충 앞칸과 협력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요?

 

이 영화가 그런 질문에 대해 답을 주진 못하지만 열차가 멈추면 무엇이 달라질까에 대해 생각하며 이 영화를 본다면 마지막 장면이 훨씬 재미있을 것입니다.

 

 

- 영화 한 줄 평 : SF 영화인 줄 알고 보러 갔다가 실망한 관객이 절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