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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e Story

잦은 개선과 작은 변화

1분후에 계속 됩니다...
오래전 케이블 TV에서 영화를 보는데 화면 오른쪽 하단에 "1분 후에 계속됩니다..."라는 자막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그래 저거야!"라고 탄성을 질렀다. 당시 대부분의 자막은 "잠시 후에 계속 됩니다"였는데 이 자막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채널을 돌리다 1~2분 정도가 지나면 '이제 광고가 끝났겠지'라고 생각하여 다시 보던 영화 채널로 돌아 오곤 했다. 그런데 "1분 후에 계속됩니다"라는 자막이 나오자 생각이 좀 바뀌는 것이다. '어 그래? 화장실이나 다녀와야겠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자막이 갖는 파괴력은 그리 크지 않다. 왜냐면 곧 나는 다시 광고가 나올 즈음이면 채널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카피 라이팅은 별 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 사용자의 경험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된다. 시청자는 광고가 오래지 않아 끝날 것이고 그것이 길어봐야 1분 정도라는 걸 알게 된다. 광고가 곧 시작될 것이라는 정보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야 광고가 언제 끝날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과거 문장이 "곧 광고가 시작된다"는 것만 알려 줬다면 새로운 카피는 "곧 광고가 시작되며 1분 정도면 끝날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문장의 길이가 길어지지도 않았고 전달할 정보가 줄어 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변화는 시청자가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릴 가능성을 줄여 준다. 이것은 곧 일부 시청자는 과거보다 채널의 중간 광고를 시청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이고 광고 시청율을 개선은 해당 채널의 수익 증가와 직결된다. 작지만 의미있는 개선이 것이다.


중사의 업무 개선 보고
나는 육군의 한 사령부 경리부서에서 2년 가까이 근무한 적 있다. 십여명의 장교 중 내가 하는 업무의 직속 상관인 중사는 옆에서 보기에 열심히 일을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늘 사람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았고 뭔가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걸 즐기는 편이었다. 그러다 업무가 몰려드는 시기가 되면 아무 말 없이 며칠 일에 집중했다 다시 원래의 여유로운 태도로 돌아가곤 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또 뭔가를 생각하던 그가 가장 많이 했던 것은 업무 개선 보고를 하는 것이었다. 어떤 날을 하루에 다섯 건이 넘는 업무 개선 보고를 하곤 했다. 언젠가 그가 쓴 업무 개선 보고를 본 적 있는데 '개인 휴지통 지급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의 개선 보고서도 있었다. 개선 보고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부서에 큰 휴지통 하나만 있으니 업무 중 휴지를 버리기 위해 이동이 잦아 업무 집중이 어렵우니 개인 휴지통을 지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나는 뭐 이런 것도 업무 개선으로 보고를 하나 싶었는데 연말에 그가 한 업무 개선 보고가 2백여 건이 넘는 걸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한 업무 개선 보고 중 5건은 국방부까지 올라갔고 전 육군에 반영된 것도 있었다. 잦은 개선 보고와 작은 변화의 힘을 무시했던 내게 그는 많은 것을 가르쳐 줬다.


일본 미라이 공업사
일본 기후현의 남부에 있는 전기설비 제작사인 이 중소기업은 동종업계 시장 점유율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며 15%가 넘는 경상이익을 기록하며 경쟁사인 대기업을 가볍게 누르고 있는 우량기업이다. 이러한 미라이 공업사의 성과 배경에는 특별한 인사관리 제도와 함께 '더 많이 쉴수록 더 일을 잘하게 된다'는 특별한 이념이 배경에 있다. 이 회사는 전 임직원에게 140일 가량의 휴일을 보장하며 잔업과 휴일 근무를 금지시키고 있다. 이 회사는 일하는 시간과 성과가 일치한다는 통념을 깨뜨리고 충분한 휴식이 더 일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고 믿고 있으며 그 성과는 이미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이러한 성과와 특별한 경영 이념으로 인해 전세계 기업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고 특히 한국 기업이나 언론사들이 오죽 많이 찾아갔으면 이 회사 사무실에는 한글로 '반갑습니다'라는 출력물이 크게 붙어 있을 정도다. 특히 미라이 공업사는 내부 직원의 개선 방안을 통해 수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데 매년 1만 건이 넘는 업무 개선안과 기술 관련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미라이 공업사의 대표인 야마다 사장은 이런 현상에 대해 태연히 말한다, "더 많이 쉴수록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큰 변화 신드롬
우리는 작은 개선이 큰 변화의 실마리라는 주장에 대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한편 일상 생활에서 작은 변화가 큰 의미 없다고 자주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이런 현상을 '큰 변화 신드롬'이라고 말하곤 한다. 특히 나처럼 다른 회사의 컨설팅을 하는 컨설턴트들은 이런 '큰 변화 신드롬'에 빠지기 쉽다. 어떤 회사가 자신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컨설팅을 의뢰할 때 컨설턴트는 자신도 모르게 뭔가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을 제안하고 싶어 한다. 뭔가 충격적이며 획기적인 그런 변화를 초래할 제안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정작 내가 연구하여 보고하는 컨설팅 보고서의 70%는 작은 변화에 대한 것이다. 보고서의 나머지 20%는 그런 작은 변화가 어떻게 큰 변화로 이행될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며 마지막 10%는 그러한 작은 변화가 우리의 삶 - 특히 그 회사와 근무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구성된다.

물론 기업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턴트나 신사업 검토, 회계경영 개선과 같은 컨설팅의 보고서는 조금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잦은 개선과 작은 변화를 통해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며 그 변화의 주체는 사람 그 자체라고 말한다. 조직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고, 새로운 회사 경영 시스템을 도입하고, 새로운 교육 과정과 복지 시스템을 적용시키고, 차세대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예산을 배정하는 일련의 변화를 위한 방법들은 결국 사람이 실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 소프트웨어의 핵심 코드를 바꾸거나 새로운 하드웨어를 장착하는 것처럼 사람은 순간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사람의 변화는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느린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떤 경우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보다 새로운 사람을 구입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기존 인력을 대량 해고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다시 뽑는 경우가 그런 것이다. 그러나 내 경험과 또 다른 수 많은 경험을 참고했을 때 이런 시도는 거의 의미가 없거나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의 변화에 대한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새로운 사람 또한 똑같은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사람이 느리게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나도 여러분도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다음 날 업무 문제가 있다고 말하며 해고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지 않았나.


어떤 회사가 잦은 개선과 작은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그 회사는 좋은 회사이거나 좋은 회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작은 개선과 잦은 개선을 말하고 있지만 실제 더욱 강조되는 것은 단기적 성과와 큰 혁신이라는 그 회사는 생각보다 나쁜 회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이 작은 개선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여유를 줄 수 있는 회사라면 좋은 회사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여러분이 제안하는 작고 잦은 개선을 소중하게 받아 들이고 회의에서 자주 언급한다면 정말 좋은 회사일 가능성이 있다. 회의를 마치고 나왔을 때 뭔가 내가 해야 할 것이 느껴지고 당장 그것을 실천할 수 있다면 행복한 상황이라고 단정해도 괜찮다. 작은 개선이 자주 이뤄지는 회사라면 우리의 인생 또한 그 속에서 함께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하며 자신의 인생이 함께 변할 수 있다면 그것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함께 변해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회사 생활인가. 최소한 내가 왜 회사를 가야 하는지 아침마다 고민할 필요는 없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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