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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e Story

월급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가?

빈곤은 빈곤을 먹고 산다.

어떤 부는 또한 빈곤을 먹고 산다.

때문에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더 많은 부가 아닌 빈곤의 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왜냐면 빈곤은 처음에 빈곤으로 배를 불리지만 부가 밀려오면 이제 부를 통해 더욱 커다란 빈곤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마치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동산에 투자했다 더 큰 빈곤을 안게 되는 하우스푸어(house poor)와 같이 말이다.


십여년 전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에서 저자인 로버트 기요사키는 월급만 받고 살아서는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반면 우리 주변엔 월급만으로 충분히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하는 수 많은 책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아직 부자도 아니고 로버트 기요사키가 주장하는 그 '부자'라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순전히 월급으로 부자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려는 시도와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부자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이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통념에 따른 부자가 되기에 단지 월급만으로 부족하다는데 이의를 갖는 사람은 별로 을 것이다.


급여소득자에 대한 환상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대부분은 급여소득자일 것이다. 급여소득자란 소득의 대부분이 어떤 회사에 일하며 받는 급여로 이뤄진 경우를 말한다. 급여소득자들을 가리켜 <유리 지갑>이라고 하는데 소득에 대해 부여하는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반하는 개념을 <털 지갑> 혹은 <가죽 지갑>이라고 하는데 사업소득이나 금융소득을 가지는 경우를 말한다. 이들은 급여소득자와 달리 다양한 방법으로 세금 감면이나 회피를 할 수 있다. 급여소득자들은 소득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하고 이것을 회피할 방법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아주 단순한 의미에서 급여소득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이해된다. 그러나 어떤 급여소득자들은 비슷한 급여를 받는 사람들에 비해 더 풍족하게 살기도 한다. 출발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이유가 금융부채 즉 빚이다.

나는 30대 초반에 연봉 5천만원 정도로 한 회사의 부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매월 내게 들어오는 실제 급여소득은 3백만원 정도였다. 각종 세금과 보험료, 공제 그리고 금융 부채를 제외하고 실제 금액이 그 정도였는데 여기서 집세와 관리비, 각종 공과금, 부모님의 생활비를 또 빼고 나면 매월 저축할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몇 년을 이런 식으로 생활하고 나니 회사를 다니며 돈을 모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했고 결국 나를 위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 나보다 낮은 급여를 받고 있던 몇몇 친구들은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꾸준히 급여를 저축하는 경우가 있었고 적은 금액이지만 목돈을 마련해 금융 상품이나 파생 상품 폭은 부동산에 투자하여 현재에 이르러 자신이 목표한 부를 달성한 사람도 있다. 그 친구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이 소유한 집이 있었고 금융 부채가 적거나 없었고, 부모님들이 소득이 있었기 때문에 부양의 부담이 없었다.

나는 출발조건에 따라 급여소득자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소 민망하긴 하지만 <캥거루족>으로 한동안 생활하거나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집이 있는 경우 급여소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집세'를 줄이거나 없앨 수 있어서 초기 급여소득의 대부분을 저축할 수 있다. 이것을 종잣돈으로 해서 한국에서 특이하게 존재하는 전셋집을 마련하여 독립할 수도 있다. 또한 부모가 젊거나 소득이 있는 경우 부양의 부담이 없기 때문에 더 빠르게 자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만약 대학생활을 하며 학비 조달을 위해 금융 부채를 가지지 않았다면 더 빠르게 투자를 위한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남들보다 더 나은 조건과 안정적 근무 환경에서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갔다면 더 빠르게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나 가족에게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고 모두 건강하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배우자 또한 그런 사람이라면 혼인과 함께 더 큰 부를 빠르게 축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쩌면 부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나는 구제금융 시절이 시작될 즈음에 서울에서 근무하기 위해 2백만원을 들고 서울에 올라왔다. 낮은 급여를 받으며 벤처 기업에서 생활을 하며 대부분의 급여는 집세와 관리비를 내는데 모두 사용되었다. 더 많은 급여를 받기 위해 몇몇 회사를 옮겼고 그 사이에 다른 동료들에 비해 급여소득은 높아졌다. 그러나 급여소득 구간이 달라짐에 따라 더 많은 세금을 내야했고 회사내 직급이 높아짐에 따라 회사 생활을 위해 써야하는 개인 비용도 함께 높아졌다. 소득이 없는 부양해야할 부모님도 있었다. 게다가 회사에서 직원들을 위해 주식을 유상배분한다는 정책에 따라 회사 주식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수천만원의 금융 부채를 안게 되었고 결국 그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되어 모두 부채가 되고 말았다. 그 사이 나는 혼인을 하게 되었고 또 다른 이유로 금융 부채는 두 배, 세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끝없는 야근과 과로로 인해 몸이 나빠지게 되었고 어느 날 병원에 가 보니 지병이 생겼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소득은 줄어 들었고 금융 이자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급여소득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저 급여소득으로 생존할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희망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나와 같은 사람을 제외한다면 급여소득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나는 아직도 과거 상황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주 낮은 급여를 받으며 작은 벤처 기업에 계속 있었어야 할까? 전 임직원이 모두 회사의 주식을 사는데 나만 사지 않고 버티고 있었어야 할까? 몇몇 사람들은 주식을 받자 말자 팔아 버렸는데 엄청난 비난을 받았는데 나도 그랬어야 할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 결혼을 하지 말고 버텼어야 할까? 지병이 생길 수도 있으니 야근과 철야를 하지 말았어야 할까?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매 순간 현명한 선택을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 목적 중 '부자가 되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회사를 다니며 돈과 관련된 어떤 문제가 생길 때 크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지 회사가 내게 지불하는 급여소득은 그저 생활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는 정도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회사에서 받는 급여를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다면 아마 매우 다른 판단을 했을 것 같다.


한번에 하나씩

이상한 일인데 40대 초반의 또래를 만날 때면 감당할 수 없는 빚에 대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제법 있다. 대부분 "우리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 망해서..." 혹은 "보증을 잘못 서서...", "사기를 당해서..."와 같은 이야기다. 또한 이상한 일은 어쨌든 지금은 그럭저럭 극복을 했다는 것이고 그 이야기를 하는 자식들 즉 우리들은 대개 대학까지 제대로 나왔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막대한 빚이 생겼고 그로 인해 끼니를 거를 정도로 험악한 상황을 겪었지만 대학까지 잘 다녔다는 건 뭔가 이상하다. 아마도 그런 일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거나 새로운 선택 - 사회에 그리 도움이 안되는 선택을 포함하여 - 을 한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어린 시절 큰 빚으로 인해 고통받았고 그것을 극복했던 주변 사람들을 보면 또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어머니들의 힘이다.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다른 집안 또한 어머니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내 어머니도 그랬던 것 같다.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큰 빚을 안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별 다른 기술과 경험이 없었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여러가지 일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몇 년 동안 늘 새벽이 되어야 집에 들어오는 일도 있었고 또 몇 년은 집에 물건을 잔뜩 쌓아 두고 일을 하시기도 했다. 중요한 건 계속 무언가 일을 하셨다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 삼형제는 큰 무리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십여년을 일 하시고 내가 대학을 들어갈 즈음 대부분의 빚을 정리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아내의 어머니 또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내 친구의 어머니도 그랬고, 그 친구의 아내의 어머니도 그랬다고 한다. 내 아내 또한 결혼을 할 무렵 상당한 규모의 금융 부채가 있었는데 10년이 지날 즈음 그것들을 대부분 청산할 수 있었다. 이 여성들의 공통점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무엇을 해 왔다는 점이다. 급여소득을 단지 생활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다면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한 이 여성들은 꾸준한 급여소득을 통해 하나의 문제인 부채를 해결하려고 했고 그런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반성하건데 나는 급여소득을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대가로 생각했던 것 같다. 급여소득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이고 그것을 쓰고 모으는 것은 인생에 대한 기록이다. 만약 급여소득을 통해 부자가 되기로 작정했다면 그리고 한달에 10원이든 100만원이든 모으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부채를 갚고 있다면 그것 또한 과거의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문제는 오직 소비만 하는 기록이 아닐까. 급여기록을 돌아보니 오직 소비만 하고 남는 것이 없다면 그것이야 말로 문제가 아닐까. 인생에서 한번의 큰 도약으로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 같다. 그러나 한번에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태도는 비록 더디고 답답하기는 하지만 또한 목적한 바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듯 하다. 급여소득으로 한번에 부자가 되는 건 매우 힘든 일이지만 많은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의 태도지 급여소득 자체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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