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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e Story

좋은 회사 vs 나쁜 회사

요즘은 회사 이야기를 잘 하지 않지만 사회 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 어디서든 누구와 만나든 항상 회사 이야기만 했다. 하루 16시간 이상 회사에 있다 보니 달리 할 이야기가 없었던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내가 지금 제대로 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건지 내가 다니는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는 건지 굉장히 궁금했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회사와 자기 회사를 비교하게 되고 결국 누구네 회사는 뭐가 좋네, 누구네 회사는 뭐가 나쁘네 하는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곤 했다. 뻔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에 대한 인식이 정립되었던 것 같다.

좋은 회사에 대한 정의는 비교적 쉬운 편이다. 자신이 회사에 다니는 목적을 만족시키는 회사가 좋은 회사다. 대개의 사람들은 돈과 사회적 지위라는 두 가지 목적을 만족할 경우 좋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나 사회적 지위 보다 그 일을 하는 사회적 의미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저임금이나 무임금으로 공익 단체나 NGO 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급여를 받지 않고 일하는 것은 자원 봉사로 봐야 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좋은 회사'라는 정의는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회사에 다닌다는 것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그 의미들 중 회사를 통해 가장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을 돈과 사회적 지위로 볼 수도 있다. 인맥이라든가 사회적 관계를 확장하는 것은 회사가 아니더라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에 소속될 경우 공식, 비공식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으며 사회적 관계를 확장할 수 있다. 그러면서 노동의 대가로 돈까지 받게 된다.

나쁜 회사에 대한 정의는 다소 어렵다. '좋다'에 대한 개인 편차보다 '나쁘다'에 대한 개인 편차가 훨씬 심하기 때문이다. '좋다'는 것은 어떤 변화를 통해 이미 좋아졌기 때문에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다. 반면 '나쁘다'는 이제 바뀌어야 하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늘 변화할 수 밖에 없어서 정의하기 힘들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한 회사를 통해 개개인이 추구하는 주요 목적을 돈과 사회적 지위라 정의하면 나쁜 회사에 대해 이해하기 쉬워진다. 내가 원하는만큼 돈을 받지 못하거나 내가 만족할만한 수준의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는 회사가 나쁜 회사다. 그럼 둘 중 하나만 만족하는 회사는 나쁜 회사일까 좋은 회사일까? 그걸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이다.

세계적인 투자 자문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 컨설턴트는 또래의 평균 연봉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급여를 받고 회사에서 지급되는 자동차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투자자들을 만족시켜야 했기 때문에 제 3세계 시장에 대한 투기성 투자나 기업 인수 합병 과정에서 대량의 실업 사태를 발생시키는 일을 자주 했다. 그는 지위가 높아지고 더 많은 투자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런 회사의 정책을 충실히 이행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모럴 헤저드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심각한 심리적 공황을 경험하게 된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그의 마음은 그의 행동을 받아 들이지 못한 것 같고 결국 그는 정신과 상담을 받은 후 회사를 떠나 몇 년 간 요양 생활을 했다. 다시 사회 생활로 복귀한 그는 투기성 자금의 유입을 감시하는 사회 단체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가 받는 급여는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신있게 설명하며 심리적으로 매우 안정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소설과 같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회사도 아니고 합법적으로 그러나 다소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투자 자문 회사에서 충분히 만족할만한 급여와 복지 혜택을 받는 것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런 것에 큰 도덕적 자괴감을 느낀 사람이 문제일 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직장' 혹은 '좋은 회사'라고 여기는 곳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이 흔한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컨설턴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2천 5백 명의 임직원 중 몇 명이나 될까. 그래서 좋은 회사를 정의하는 것보다 나쁜 회사를 정의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한 것이다. 2499명에게 좋은 회사가 오직 내게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험이 적거나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는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에 대해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여러 회사를 경험하고, 다양한 상황과 만나고, 또한 그런 것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이거나 거부하면서 우리는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를 구분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된다. 어떤 경우 좋았던 것이 나빠지고, 나빴던 것은 좋아진다. 내 친구는 15년째 한 공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15년 전 우리는 "너처럼 똑똑한 녀석이 왜 공기업에 들어가 능력을 썩이려고 하느냐?"고 탓했고 그는 "놀 수는 없잖아. 다니면서 다른 곳을 알아 보려고"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가장 어린 나이에 부장으로 진급했고 느리지만 꾸준히 오르는 연봉과 회사의 각종 복지 혜택을 충분히 누리며 아직 충분히 여유 있는 정년에 만족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직접 한 이야기다. 15년 전에 공기업에 입사하는 것은 그에게 무덤을 향한 다이빙이었지만 지금은 그 무덤이 행복의 동산으로 변한 셈이다.

그렇다면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의 기준은 순전히 개인적 가치관에 좌우되는가? 그렇지 않다. 극점처럼 좋고 나쁜 것의 가장 앞에 서 있는 것은 구분하기 쉽다. 특히 사라져 버린 회사들은 구분하기 아주 쉽다. 엔론을 보라. 미국 경제사에서 아마 이 회사처럼 아주 나빴던 회사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이 회사가 살아 있을 때 매우 많은 사람들이 아주 좋은 회사로 평가했고 그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스스로 자랑스러워 했다. 반면, 삼성을 보라. 매우 많은 사람들이 이 회사의 사업 행태와 특히 노조와 관련한 일련의 정책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삼성은 한국의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하는 기업 중 하나이며 일상 생활에서 자신이 삼성이나 관계사에 다닌다는 사실을 숨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살아 있는 회사에 대해 좋고 나쁘다고 판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에 대한 구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질문 자체가 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질문이 너무 유치하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고민을 한 후 나는 질문을 이렇게 변경시키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좋아하는 회사와 좋은 회사"

나쁜 회사에 대한 개념은 아예 빼 버렸다. 특히 요즘과 같은 장기적 불황기에는 나쁜 회사라도 좋으니 급여를 받으며 회사에 다니는 자체가 중요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열악한 노동 환경을 제공하는 회사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과거에 나빴던 것은 지금도 나쁘기 마련이다. 좋은 회사는 말 그대로 좋은 회사를 말한다. 앞서 이야기한 돈과 사회적 지위를 만족시켜주는 회사를 말한다. 반면 좋아하는 회사란 이 둘을 만족시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회사다. 좋아하는 회사란 내 가치관과 세계관에서 만족하는 회사를 의미한다. 회사를 좋아할 수 있냐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좋은 회사는 있을 지 모르지만 좋아하는 회사는 없다. 좋아하는 회사가 있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그 회사에 자신의 가치관을 투영한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한 공기업에 근무하는 친구는 심지어 "회사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 친구의 놀라운 변화를 보며 - 15년 전 그는 출근 자체가 짜증난다고 했고, 입사 5년 차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 - 장기간 스트레스로 인해 스트레스 자체에 적응을 해 버린 것이 아닌가 잠시 의심했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사랑의 이유'를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20대에 그가 원했던 것은 좋은 회사였다고 했다. 실제로 그가 들어가지 못한 좋은 회사에 들어간 사람들을 볼 때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더 싫어졌다고 했다. 무능력한 자신이 다니는 회사니 회사 사람들도 무능력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회사가 싫고 사람들도 싫으니 당연히 자기가 해야 할 일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어영부영 10년이 지났을 때 아주 우연한 기회에 회사 내의 미래 사업과 관련한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고 했다.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라 동기 중 한 명이 해외 사업을 가는 바람에 공석이 발생해 투입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일이 회사의 미래 사업 발굴이라는 거창하지만 그야말로 빈 공간에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이라 첫날부터 해야 할 일을 토론으로 정하고 직접 외부 인사들을 만나고 사업 기획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막힌 폐에 공기가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신바람나게 일을 했다고 했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생전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이야기해 줬다고 했다. 고개를 들어 회사를 다시 바라보니 자신이 할 일이,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일들이 계속 보이더라는 말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서로 첫눈에 반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오랜 만남 끝에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회사도 그렇다. 첫눈에 마음에 드는 회사가 있는 반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비로소 사랑에 눈 뜨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객관적 설명이 의미 없는 것처럼 - 사랑의 감정과 초콜렛을 한 가득 먹었을 때 뇌파 반응이 같다는 건 사랑을 설명하는데 큰 의미가 없다, 적어도 초콜렛은 부드럽게 머릿결을 쓰다듬어 주지 않는다 - 회사를 사랑하는데도 객관적 비교 수치보다 자신의 결정과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분명하게 나쁜 회사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회사는 좋은 회사거나 좋아지려는 회사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회사를 좋아하느냐다. 회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회사는 정말 좋은 회사가 될 수 있다. 뉴욕 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슬로건이 "I Love NY"이라고 한다. 이 슬로건을 뉴욕 사람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바로 그것이 뉴욕을 정말 뉴욕답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스스로 사랑한다고 외치는 순간 정말 사랑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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