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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Insight

직관적인 기획과 방법론

몇 년 전 이 업계에 '인사이트(insight, 직관 혹은 통찰력)'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 단어가 가장 흔하게 쓰였던 경우는 인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였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의 문장이다,

"기술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인사이트가 있는 훌륭한 인재가 수 백 명의 평범한 인재가 이루지 못하는 일을 하곤 한다. 기업의 가장 소중한 자원은 인재이며 또한 인사이트가 있는 인재는 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

당시에 나도 몇몇 기업에서 '직관적인 기획'에 대해 강의를 한 적 있다. 강의 말미에 나는 직관적인 기획을 하려면 머리가 터지도록 연구해야 하고 발바닥에서 땀나도록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그리 진지하게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직관적인 기획'에서 자신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받아 들이고 나머지 이야기의 중요성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 대부분은 직관적인 기획이 "은빛탄환(silver bullet)"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직관적인 기획은 천재적 기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직관적인 기획이 아무런 노력없이 나올 가능성은 제로라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직관적인 기획을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노력이 필요한데 그 중 하나가 적절한 방법론이다. 잘 알려진 방법론을 학습하고 그것에 의해 자료를 수집하는 것도 있고 그저 자신의 경험을 끊임없이 반복 성찰하는 방법도 있다. 전형적인 혹은 학술적인 방법을 무시하고 10여년 가까이 자신과 주변의 경험만 수집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든 간에 장기간에 걸친 노력이 존재할 때 직관적인 기획이 가능하다. 그저 면벽 수련을 한다고 직관력이 툭 튀어 나오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방법론의 중요성은 일관성과 증명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 대해 연구하는 한 블로거를 알고 있는데 그는 주로 웹 서핑과 웹 사이트 연구, 그리고 주변 게이머들의 행동 방식을 연구하며 그것을 기초로 앞으로 일어날 어떤 일에 대해 예측하곤 한다. 그의 통찰력은 날카롭고 매우 흥미롭고 그럴싸하다. 그러나 믿음직하지는 못하다. 그의 주장을 그저 경청할 때는 발생하지 않는 문제가 그의 주장대로 사업을 해 보려고 할 때는 매우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바로 '근거'에 대한 문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자신 나름의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더라도 실제 사업을 집행하는 단계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믿을만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 '믿을만한 데이터'는 소위 '믿을만한 방법론'을 통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방법론이 자신이 창조했거나 검증 받지 못한 것이라면?


한 기업의 웹 서비스 전략을 재정비하는 컨설팅을 의뢰 받은 후 연구 조사 과정에 2개월의 시간이 걸리고 그 결과물로 "웹 비즈니스 장기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자 담당자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 연구 조사 시간을 줄여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조사 연구는 연료통에 연료를 채우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어디를 얼마나 어떤 속도로 달려야 할 지 알지도 못하고 일단 달려 보자는 건 결국 끝까지 가지 않겠다는 소리와 같습니다" 이야기를 신중히 듣고 있던 담당자가 말했다, "그렇게 시간을 쓸 거면 왜 당신에게 요청했겠습니까? 우리는 즉시 답을 원합니다."


현실에서 '방법론'은 합법적인 비용 추가의 변명처럼 들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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