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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강풀의 영화가 실패하는 이유

강풀(본명 강도영)은 지난 5년 사이 한국 만화계가 낳은 가장 훌륭하고 참신하며 명망있는 만화가 중 하나다. 30여 년 전 쯤으로 치자면 이현세에 버금가는 독자층을 가진 것이 강풀일 것이다. 그의 만화는 수천 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엔터테인먼트의 첨병인 영화계 또한 주목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로 만들어졌다. 결과는...





흥행 개 참패



그의 만화는 훌륭했지만 그것을 기초로 만들어진 영화는 준수한 수준도 아니고 엉망이었다. 영화 <아파트>는 긴장감은 커녕 귀신이 나올 타임마다 하품만 나오는 수준이었고 오랜만에 영화에 등장한 고소영은 이름 값도 하지 못하고 다시 잠수탔다. 이후에 강풀의 원작 만화를 근거로 한 <바보>가 개봉되었지만 흥행은 그야말로 '바보'였다. 그리고 세번째 영화인 <순정 만화>가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초치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흥행도 순정한 수준일 것 같다. 게다가 강풀 원작 <26년>(영화 제목 '29년')은 크랭크인을 앞두고 제작 자체가 무산되는 상황에 처했다.



고백하건데 나는 강풀 만화의 열렬한 애독자다. 과거 '똥 이야기'로 강풀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이전부터 그의 웹 카툰과 웹 사이트를 하루에 세번씩 방문하며 만화를 보고 즐거워하고 심지어 팬레터까지 보내던 애독자였다. 그런 내가 왜 '개'라는 표현까지 쓰며 강풀 영화에 대해 비난을 아끼지 않는 것일까?

강풀이라는 닉네임의 강도영씨는 자신이 쓴 원작 만화를 기초로 한 영화의 연속 실패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이익을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속속 실패를 했다. 11월 말에 개봉할 예정인 <순정 만화>는 유지태, 이연희, 채정, 강인 등 나름 유명한 배우들이 등장한다. 강도영씨는 최근 언론사 인터뷰에서 '이 영화야말로 내가 기대했던 이미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나 또한 강도영씨가 원하는 그런 화면이 나오길 바란다. 포털 사이트인 다음에서 경험했던 그런 이미지가 나오길 바란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까?



나는 강풀의 인기 만화를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가슴이 벌렁 거렸다. 내가 열렬히 좋아했고 매주 다음 번 이야기를 기다렸던 연재 만화가 영화화된다고 해서 기쁜 마음에 가슴이 벌렁거렸던 것이 아니라 '저 따위 만화를 영화로 만든다니 제작사가 미쳤나!' 싶어서 가슴이 벌렁거렸다. 내가 이야기한 이 부분만 듣는다면 나는 분명 강풀 만화의 안티(anti)다. 그러나 나는 강풀 만화를 정말 좋아한다. 다만 그것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을 뿐이다.

만화는 만화의 문법이 있고 영화는 영화의 문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강풀의 만화는 초기 단편 만화와 달리 장편형 만화로 탈바꿈하면서 나름의 문법을 만들었다. 이것은 웹 카툰의 전형이 되었고 실제로 매우 많은 웹 만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강풀의 웹 카툰은 혁신적이었고 독자들에게 큰 충격과 혁신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충격과 혁신은 웹 카툰이라서 가능한 것이었다. 강풀의 웹 카툰이 영화로 전환되었을 때 그 충격과 혁신은 아주 평범한 것이 되어 버린다. 웹 카툰에서 영화와 같은 화면 전환과 연속 화면, 반전, 페이드 오프/인, 화면 역전환 등의 영화적 기법은 혁신적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런 화면 기법과 스토리텔링은 매우 평범한 것이다. 강풀의 웹툰은 웹 사이트 자체에서 가치로운 것이었다.

만약 강풀의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이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강풀 만화의 열혈 구독자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영화로 만들어 진 것도 보지 못하고 무슨 개소리야!" 그런데 강풀의 원작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결과는 어떠한가? 강풀의 원작에 기초한 영화, 그러니까 강풀의 원작을 정말 충실히 구현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강풀의 원작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어!". 웃기는 소리다. 그 영화는 강풀의 원작은 너무 충실히 구현했다. 그래서 영화로써 너무나 '뻔한 화면 구성'이 나왔다. 만화의 환상을 영화는 너무 빠르게 깨뜨려 버린 것이다. 보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으니 보고 나서 후회하고 실망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나는 강풀 원작의 영화 두 편을 모두 봤다. <아파트>와 <바보>가 그것이다. 두 편의 영화를 보며 어디에서도 강풀의 만화에서 느꼈던 감동을 찾을 수 없었다. 비로소 나는 강풀의 웹 카툰과 영화의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멍청한 영화 제작자들의 생각도 알 수 있었다. 인터넷 포털에서 수천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한 만화고 그 스토리텔링이 멋지니 영화로 만들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강풀의 세번째 영화인 <순정 만화>도 그런 생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 또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개봉관에서 내려 올 것이고 오래지 않아 OCN이나 Super Action과 같은 케이블 채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강풀이 웹 사이트에서 만든 브랜드와 인기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강풀의 만화는 훌륭하고 멋지다. 나는 여전히 그가 그리고 이야기하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그의 만화가 영화로 성공하려면 만화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강풀이 영화를 감수해서 될 일이 아니다. 강풀의 만화를 영화답게 만들 수 있는 강풀보다 훌륭한 각색자가 필요하고 강풀이 웹 사이트에서 기술한 만화적 기법보다 더 영화다운 영상미를 구현할 감독이 필요하다. 만화는 만화고 영화는 영화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웹 카툰이 성공적이었다고 그것에 기초한 영화가 성공하라는 보장은 없지 않나?"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강풀의 원작 만화에 기초한 영화들은 한결같이 이 영화가 '강풀의 만화'였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강풀 또한 영화의 흥행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닌가? 강풀의 만화는 내일도 계속되겠지만 그렇다고 강풀의 만화에 기초한 영화가 흥행에 개 참패하는 게 용서되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