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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김정일 사망 속보와 우리의 태도

2011년 12월 19일에 추가함.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북한은 공식 언론 보도를 통해 2011년 12월 17일 오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3년 전 사망설 루머가 현실이 된 것이다. 앞으로 한반도 정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3년 전 썼던 이 포스트의 내용과 다를 바 없다. 한 가지 추가할 것은 '공식 조문단'에 대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남북간 정세는 매우 나쁜 상황이고 특히 최근 한나라당의 FTA 강행 통과로 인해 여당에 대한 국민 정서가 나쁜 상황임을 고려할 때, 김정일의 사망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와 관계하여 한나라당은 "긴장 대치 국면"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국회에서 공식 조문단 파견과 관련한 논란이 있을 것이고 그 사이에 중국.러시아.일본.미국등이 공식 조문단을 파견하여 다소 혼란한 상태인 북한과 핫라인을 재개설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이든 야당이든 이런 국제적 관계에 강력히 개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김일성 사망 당시 김정일 지배가 확고했던 것과 달리 김정은에 대한 후계자 지목을 명확히 하지 못한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주변국에 휘둘릴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북한의 혼란은 남한의 기회가 아니다. 주변국과 강대국의 기회다.

 

어제 오늘 일본의 한 일간지에 단신 보도된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에 대한 추측성 보도와 관련하여 국내 언론은 서로 눈치 보기에 한창이다. 한 언론사는 중국발 소식통을 근거로 '사망했다고 한다'까지 기사를 썼다 급히 삭제하는 헤프닝을 만들기도 했다.




만약 김정일 위원장이 정말 사망했다면, 즉 지난 수술 이후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면 북측은 그 소식을 숨길만한 이유가 있을까? 지난 1994년 7월 김일성 전 주석이 사망했을 때와 비교하여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1994년 김일성 전 주석이 사망했을 때 조선 중앙 방송은 실제 사망일 (7월 4일이라는 설이 있다) 며칠 후 공식적으로 김일성이 사망했음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북한 전문 분석가들은 김일성 사망 이후 북측에서 정치적 혼란이 야기되지 않은 주요한 이유로 당시 김정일 현 위원장이 실질적으로 노동당과 군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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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최근 와병설에 시달리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루머에 대해 북한 분석 전문가들 또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 이유를 정리하자면 대략 3가지인데 첫째, 1994년 시점과 달리 김정일 위원장 이후 후계 구도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둘째, 김일성 전 주석의 사망 시점도 그랬지만 김정일 위원장 지배 구도에서 북측의 경제적 상황은 사상 유래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는 점이다. 북측의 지배 구도가 붕괴될 지경은 아니지만 과거보다 훨씬 약화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셋째, 대외적으로 핵 개발 포기를 조건으로 미국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며 정권 내부적인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설이 있다. 이런 세 가지 이유로 만약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이 진실이라면 북측은 그 사실을 일단 숨기고 향후 대책을 마련할 시간을 벌 필요성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국내 언론은 현재 이 루머에 대해 '루머는 루머일 뿐'이라고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계속 관련 기사를 쏟아 내고 있는 것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만약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 구도를 명확히 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망한다면 남측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몇 가지 예상 시나리오가 있을텐데 이 중 가장 발생 가능성이 낮은 것은 "북측의 내란" 혹은 "국지전 가능성"이다.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은 "대량 탈북 사태"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북측에서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발생할 시나리오를 예측하는 것보다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남측에서 어떤 대비를 해야하는 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데, 북측에서 내전에 준하는 폭동이 발생했다면 남한은 어떤 외교적 입장을 취해야 할까? 특수부대라고 몰래 파견해서 북측 정권의 몰락을 도와야 하나? 아니면 그냥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전군 동원령을 내리고 있어야 하나? 또한 남한 사람인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반 세기 전이지만 전쟁 시 적국이었고 여전히 휴전 상태인 북측의 내란에 대해 남한 사람들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우리의 태도가 곧 정부의 외교적 태도가 될텐데 그렇다면 우리의 태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남한으로 넘어 오라"고 휴전선의 일부를 개방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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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세대이자 반공 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세대인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뭐라고 딱히 대안이 없다. 통일이 반드시 필요하냐는 질문에 30년 전에는 아무런 꺼리낌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전쟁이 일어나야 하냐는 질문에 대해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평화 통일의 방법은 남한의 압도적 경제적, 정치적 우위를 통해 북한 정권이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 답이라고 배워왔다. 북한 정권은 자기 모순으로 인해 무너질 수 밖에 없으며 붕괴를 막기 위해 언제든 남한을 다시 침략할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기 위해 남한에 숨어 든 간첩을 찾아내어 신고해야 하며 불온 서적은 읽으면 안되고 좌경 사상을 가진 자들이 언제든 남한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으니 색출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것이 남한의 평화를 지키며 북한을 민주화하고 통일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배웠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1970년대의 어린 시절 이후 남한은 몇 번의 국가적 위기 상황이 있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되었던 시기가 그러했고, 그 다음 해인 1980년 광주 민중 항쟁이 발생했던 시기도 그러했고, 1987년 6월 민주 항쟁이 발생했던 시기도 그러했다. 그러나 북측의 이 국가적 환란의 시기에 전면적인 군사 공격을 감행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남한의 이런 사태가 모두 북측의 사주를 받은 간첩이나 친북 세력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남한 정부의 안보 태세와 경찰력, 군사력으로 인해 위기의 상황에서 북측이 침략에 실패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맞다, 어쩌면 북측은 또 한 번 남한을 침략할 절호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일 지 모른다.


이런 우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반공주의자'라고 매도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분들도 아마 내가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 북측이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같은 급작스러운 지도자 공백기를 맡게 되고 그로 인해 북한에 내란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또한 그로 인하여 남한에 대한 대내외 위기가 고조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루머와 같은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그 이후의 사태"에 대해 우리가 대비하고 있는 가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이후 북측과 남한 정부 간 대화 채널이 단절되어 있는 현재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북측의 정세에 급격한 변화가 생겼을 때 남측 정부가 어떻게 대처할 지 그것을 가장 우려한다. 김정일 잘 죽었다고 뉴스에 댓글을 다는 게 속편할 지 모르겠지만 만약 김정일 위원장이 급작스럽게 사망했다면 그건 '댓글' 따위의 감정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공주의자든 친북주의자든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심없다고 주장하는 회의론자든 간에 어쨌든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은 매우 현실적인 위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