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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무한도전의 올림픽 중계, 숨은 의미

어제 올림픽 남자 체조 방송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유재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문득 지난 번 어떤 뉴스에서 MBC <무한도전, 북경올림픽 편>에서 6명이 북경 올림픽에서 각종 도전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올림픽 중계에 직접 참가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 올랐다. 아마도 유재석씨는 체조 방송에 참가한 것 같다. 이 경기에서 유원철이 은메달을 따고 양태영이 7위를 했는데 누군가는 '무한도전의 저주'라고 우스갯 소리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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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도는 사극 <이산>에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단역으로 출연했던 경우를 생각나게 한다. 다만 지난 번은 인기 사극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정도였다. <무한도전>의 버라이어티 성격을 굳이 숨기지 않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이번 경우엔 올림픽 정식 종목에 대한 해설자로 등장했기에 그 의미가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유재석씨도 매우 진지하게 해설에 임했고 미리 체조 특히 평행봉의 기술에 대해 미리 학습을 하고 와서 적절히 끼어들며 짧은 해설을 잘 소화한 것 같다.

<무한도전>의 올림픽 중계 도전은 세 가지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1.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위상 확대에 따른 서로 다른 본부 간 업무 협조
2. 방송사 내부의 형식 파괴를 통한 공중파의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터티
3. 방송 소비자에서 방송 협력자가 된 시청자의 위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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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이라면 <무한도전>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감히 방송국의 다른 부서에 명함을 내미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개그맨이 주축이 된 프로그램이라면 제 아무리 인기가 있더라도 합종 연횡하여 타 부서의 프로그램에 개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무한도전>과 같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성장은 또 다른 의미에서 이런 프로그램 간 제작 협조를 가능하게 했다. <무한도전>의 출연자가<이산>과 같은 인기 절정의 사극에 비록 단역이지만 출연할 수 있게 되거나 올림픽 중계 방송에 해설자로 출연하게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0%를 넘었던 시청률 때문일까? 아니면 요즘 대세라고 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호응 때문일까? 혹은 소위 시너지 효과를 노려서 이슈를 만들거나 시청률 상승을 노리고 싶기 때문일까.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 의미가 그것이다. 세 가지 의미 중 <무한도전>이 국가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올림픽 중계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세 번째 의미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공중파가 비로소 방송 협력자가 된 시청자의 위상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웹 2.0에서 이야기하는 '참여와 개방'에 대한 이야기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참여와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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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공중파 근무자에게 시청자는 프로그램이라는 상품의 소비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난 10년 사이 시청자는 인터넷과 웹이라는 도구를 통해 단순한 시청자에서 고급 콘텐츠 생산자로 점점 변화해왔다. MBC, KBS, SBS와 같은 공중파가 처음 자사의 웹 사이트를 만들었을 때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 중 하나는 "방송에 대한 무분별한 시청자들의 오해"를 어떻게 막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때문에 한 때는 공중파 웹 사이트에 사용자 게시판을 폐지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도 상당한 힘을 얻었다. 이런 시절에 시청자는 텔레비전을 보다 마음에 들거나 그렇지 않은 것이 있으면 간혹 방송사 웹 사이트의 게시판에 글을 적는 정도의 활동을 했다.

2003년을 기점으로 시청자의 행동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 기점에는 몇 가지 중요한 한국 웹 서비스의 변화가 존재했는데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 포털 뉴스의 활성화와 사용자 의견의 활발한 제시
- 블로그를 위시한 개인 미디어의 급격한 발달
- 사용자 참여형 공중파 프로그램의 발달과 성공 사례

2008년 현재 우리는 이런 변화가 실제로 공중파 방송사 자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눈으로 보고 있고 그 사례 중 하나가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이 방영되는 토요일 저녁 시간에는 방영 이후 수 많은 관련 뉴스와 사용자들의 시청 후기 및 평가 글이 포털을 비롯한 각종 웹 사이트에 올라 온다. 특히 시청자들이 남긴 시청 후기나 평가 글은 언론사에 포착되어 새로운 뉴스를 위한 글감이 된다. 작은 애피소드로 끝날 수 있었던 일이 일파만파 확대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 한 프로그램의 생사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공중파 방송사 입장에서 특정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인터넷 의견은 이제 프로그램을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가 되었다.

여전히 시청률이 최고의 가치를 갖고 있지만 시청자의 의견 또한 그만한 가치를 갖게 되었다. 방송사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제 시청자의 적극적 참여는 시청률 이상의 새로운 사업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공중파 방송사들은 인터넷의 중요성을 인지하며 다양한 사업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그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했을텐데 최근에 와서 방송사 또한 시청자의 적극적 참여가 없는 이상 방송사의 새로운 사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낮음을 인지하게 된 것 같다.


친근한 존재가 주는 이익

그럼 왜 <무한도전>은 올림픽 방송 중계와 같은 중요한 프로그램에도 등장하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단순한 시청률이나 인기 프로그램에 대한 배려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참여와 개방만으로 방송사가 새로운 사업의 성공을 위해 시청자의 협력을 이끌기 매우 힘들다. 공중파 방송사는 특정 주제를 갖고 있는 케이블 방송사와 달리 다양한 관심을 갖는 시청자를 확보해야 한다. MBC의 입장에서 <무한도전>은 이런 다양한 관심을 이끌기 위해 새롭게 주목 받고 있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은 MBC의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보다 다양한 관심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고 출연자들 또한 적절한 호불호의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게다가 <무한도전>은 시청자에게 정직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습게 보이지만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MBC 입장에서 <무한도전>은 시청자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MBC의 사업 기조에 잘 부합하는 새로운 양식의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의 '도전'을 단지 이 프로그램 내부의 변화로 바라보지 말고 공중파 방송국의 사업적 방향 변화와 시청자에 대한 태도 변화, 방송 콘텐츠의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바라 보면 보다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인터넷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의 성장

본 글을 읽는데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인터넷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의 성장은 괄목할만하다. 이런 프로그램의 성장은 특히 2003년 이후에 두드러진다. 이런 프로그램들 중 성공적이었던 것은 <스펀지>와 <스타킹>이 있다. 전혀 공교롭지 않게도 <스펀지>는 NHN(네이버)의 지원으로 제작되었고 <스타킹>은 다음의 지원으로 제작되었다. 물론 <스펀지>가 훨씬 성공적이었고 NHN은 그린 검색창 프로모션("네이버에서 검색하세요")을 매우 잘 활용하며 공중파에 콘텐츠를 제공한 사례가 되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MBC의 PD수첩 또한 포털의 사용자 의견을 매우 자주 참조하고 있고 100분 토론을 다음의 아고라와 직접 연계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KBS나 SBS, EBS등도 인터넷 특히 포털을 통한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을 다수 진행하고 있다. 각 공중파 방송사의 사업 정책에 차이가 있어서 인터넷에 대한 대응 태도도 차이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중파 방송사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사용자를 만나고 있고 이것을 프로그램에 직접 도입하고 있다.

미디어 종사자들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이런 변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2002년 경 이런 변화에 대한 논문을 쓰려는 학자와 만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참조할만한 공중파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례가 매우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