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guacu ONLY

스펀지 마술 파문과 또 다른 마술사들

어제 마술 관련 업에 종사하는 분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KBS <스펀지>의 '마술 비법 공개'와 관련한 일반으로서 내 생각을 물어 봤다. 짧게 답변을 했는데 일반인들로서는 그 '마술 비법'이라는 것이 마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공감하기 힘들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즉, 공중파에서 어떤 마술의 비법을 공개하고 그걸 알게 된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뭔가 대단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흥분하거나 또는 뭔가 대단한 것을 그 동안 몰랐다고 흥분하겠냐고 반문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답변 메일을 보내고 나서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봤다. 두 가지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인 <장미의 이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란 이론서였다.


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한 수도원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추리 소설 - 역사 소설에 더 가깝지만 - 이다. 영화나 소설을 본 분들은 그 결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을 읽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책에 독약을 발라 놓은 늙은 수도사가 범인이었다. 그런 짓을 한 이유는 바로 그 책을 읽음으로써 인간이 신에 대한 경외를 저 버릴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늙은 수도사는 그 책에 담긴 어떤 내용이 수도사들과 인간을 파괴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에게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을 다른 사람이 읽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은 목숨을 걸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소설에서도 결국 그 책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소설의 후반부에 책은 늙은 수도사와 함께 불타버리고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본론

또 다른 이야기는 칼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이라는 책이다. 현대 공산 혁명의 이론적 기초가 된 책이고 자본주의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모순을 설파한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도 이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 걸리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는 소위 '금서(禁書)'였다. 도대체 이 책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길래 법률로 읽거나 소지하거나 출판해서는 안된다는 금서로 지정되기까지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한국 정부는 <자본론>이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이론적 지침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론은 19세기 후반에 작성된 후 20세기 초반 사회주의 혁명 시기를 거쳐 20세기 준반까지 사회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를 위한 이론적 지침서가 되었다.

이 책에 대한 많은 논란은 접어두고 마르크스가 이 책을 쓸 때 그는 사상가이자 행동가의 관점에서 19세기 중반의 자본주의를 분석하고자 했다. 그냥 분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갖는 근본적 모순에 대해 이론을 정립하고자 했다. 그의 이론을 읽은 사람들은 현재의 자본주의가 매우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독자들이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행동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또한 혁명가였기에 <자본론>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마치 "악마의 경전"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혁명을 원했던 사람들에게 <자본론>은 세상의 비밀을 알려 주는 "신의 경전"이었다. 그냥 비밀만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깨뜨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주는 것이기도 했다.


비밀에 대한 이야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술협회에서 영구제명된

스펀지 마술 비법 공개와 관련한 최근의 사태를 보며 두 가지 이야기를 떠 올린 것은 어떤 '비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때문이다. 현업에서 마술사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비록 그것이 저작권 소멸이 된 마술이라고 해도 생업을 위협하는 매우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 들여졌을 것이다. 마술사가 마술을 펼치고 있을 때 앞에 앉은 사람들이

"어, 저거 스펀지에서 본 건데... 저거 이렇게 저렇게 하는 거야!"

라고 소곤댄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마 등골에 식은 땀이 주루룩 흐를 것이다. 마술은 속임수의 미학이고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 환상을 만들어 주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어떤 속임수가 있는지 발견하고 싶어하지만 발견하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환상으로 믿어 버리는 어쩌면 알고도 속고 모르고 속는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 싶다. 그 과정을 즐기기 위해 돈을 내고 마술사의 마술을 보러 오는 것일테고.

그런데 앞서 두 가지 이야기에서 이야기했듯, 어떤 '비밀'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또한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스펀지 사태에서 마술사들이 지키려고 했던 비밀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아마도 최소한 마술사 자신의 생존권을 위한 비밀이긴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비밀에 별 관심이 없다. '아, 신기하다...' 정도의 감정만 있을 뿐 '망할 놈의 마술사들이 이런 속임수를 썼구나'라든가 '그래, 이젠 비밀을 알았으니 다시는 마술을 보지 않겠어'라든가 아니면 돈 내고 보러 간 마술 쇼에서 마술사 면전에 대고,

"당신 마술의 비밀은 나는 알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라고 소리칠 생각도 없다. 그렇다고 스펀지 시청 거부 운동을 하자고 하면 동참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마술사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 공개된 마술의 비법 때문에 마술은 사기라고 생각해 본 적 없고, 여전히 마술 쇼를 좋아한다. 사실 내가 정말 궁금한 마술의 비밀은 유리 창 뚫고 나오기 같은 것이 아니다. 촛불 집회가 불타오르려고 할 때 갑자기 서울 하늘에 장대비가 내리는 상황에 대해 혹시 이명박 대통령이 마술을 부린 게 아닐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아니면 장관 몇 명 경질하고 미국에게 소 수입에 대해 고려를 '요청'을 하면 국민들의 분노가 사그라들 것이라 생각하는 마술사들의 비밀에 대해 궁금하다.

평범한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문제가 풀릴 것 같지 않은 비법으로 우리 앞에서 마술 쇼를 하고 있는 그런 분들의 숨은 '비법'도 이해가 안되는데 TV의 마술 비법 공개는 관심도 없다. 짠!하고 모자 속에서 토끼를 꺼냈는데 사람들이 야유를 보내면 이 마술사들은 앞으로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할까? 또 다른 마술을 펼칠까, 아니면 토끼를 바닥에 내 팽개치고 관객들에게 물대포를 쏠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추신 - 마술사들을 비난할 의도는 조금도 없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정을 운영하는 분들이 부리려는 마술이 너무 식상해서 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