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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SK컴즈, PEP Talk 후기

어제 밤에 PEP Talk에 대한 후기를 쓰려다 갑자기 떠오른 "1,400명이 다 뭐한데요?"라고 짧게 내 뱉은 말이 떠올랐다. Talk가 끝나고 자리를 주선한 몇 분들과 이야기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나온 것인데 정말 '아차!' 싶었다. PEP Talk를 마련한 분들은 SK컴의 Happy innovation TF라는 팀의 분들인데 이 분들이야말로 그런 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했지만 그것이 SK컴즈에 대한 혹은 그 조직원 개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 내가 글로 옮긴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비난에 대해 반성하라느니 내 인성이 어떻다느니 말하는 댓글이 붙었지만 비난할 의도는 아니었음을 밝힌다.

한 달 전 쯤 PEP Talk 초청을 받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가끔 이구아수 블로그에 SK컴즈 인트라넷 링크가 잡힐 때부터 무슨 글을 가져 갔을까? 궁금했는데 와서 아무 이야기나 하라니 막상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며칠 고민을 한 끝에 "회사를 떠나는 법"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다. PEP Talk 당일, 나는 다음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 이 강연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 내게 회사는 어떤 의미인가?
- 회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 지리멸렬한 일상과 비전이 없는 회사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대박 웹 서비스는 탈출의 열쇠 중 하나다
- 왜냐면 여러분이 웹 서비스, 포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 다니기 때문이다
-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회사에 졸라대라
-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방법과 주의해야 할 점에는 이런 것이 있다
- 이런 생각이 회사에 문제를 만드는 것일까?
- 아니다. 오히려 이런 생각으로 인해 회사는 여러분을 더욱 좋게 볼 것이다
- 포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 근무하는 여러분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라

PEP Talk를 시작하기 전에 강연에 대해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이 강연의 주제는 아주 간단하다.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다. 단지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있는 환경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그 환경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퇴사해서 창업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영원히 이 회사에 뼈를 묻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주제는 여러분이 살아가는데 작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90분 동안 진행된 강연에서 참석자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도 많이 했고,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고민해봤을 이야기도 많이 했다. SK컴즈에 대한 내 생각도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 중에는 참석자 스스로 대상이 되는 이야기도 있었다. 분명히 내가 틀린 이야기도 했을 것이다. 혹은 짜증나는 이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켜 주신 SK컴즈 여러분께 감사한 마음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분들이 내가 이야기한 것에 어떤 감동이나 감흥을 느끼지 못했더라도 심지어 불쾌감이라는 감정을 느꼈더라도 어떤 변화를 느꼈다면 그것으로 PEP Talk에 내가 가서 이야기한 의미는 있다고 본다. 그런 변화를 느끼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강연이 끝난 후 엘레베이터에서 어떤 분이 "좋은 강연이었다. 마치 한 권의 자기 계발 책을 들은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런 의도로 한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 근처로 자리를 옮겨 강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1,400명이 뭐하냐?"는 문제의 이야기(?)도 했지만 나는 이 강연에서 회사를 떠나라는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 해에 100명 정도의 신규 인원이 회사에 들어오면 기존 인원 중 1% 정도는 회사를 떠나야 할 것 같다. 그 인원 중 대부분은 팀장급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면 그들이 SK컴즈에서 가장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고 새롭게 섰을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회사는 그런 현상을 원치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회사를 떠나 창업을 하거나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1,400명 중 1%면 대략 10여명이 되지 않겠나. 그렇게 창업이나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든 사람 중 2~3 명 정도가 살아 남는다면 그들이 SK컴즈의 강력한 파트너가 될 것이다. 그런 네트워크를 통해 SK컴즈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이번 강연의 목적이다. SK컴즈 안에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겠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말고 멋진 웹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떠나라. 그것이 SK컴즈도 살고 나도 사는 진정한 길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팀장인 분이 있었다. 또 '아차!' 싶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 그런 의도로 SK컴즈의 PEP Talk에서 "회사를 떠나라"는 이야기를 했다. 강연을 시작할 때 이번 강연은 회사에 천년 만년 자리 잡으려는 분들이나 별 고민없이, 혹은 고민을 포기하고 사는 분들을 위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했다. 세상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강연을 할 생각은 결코 없었다.


PEP Talk에서 한 이야기 때문에 '적'이 더 생겼을 수 있다. 실상도 모르면서 SK컴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에 반감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해를 잘못하고 있는 게 있으면 SK컴즈 근무자가 사실을 이야기해주면 된다. 그럼 나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다음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강연 중 이런 이야기를 반복했다,

"저보다 이 문제에 대해 여기 계신 분들이 훨씬 더 잘 아실 겁니다."

그렇다, PEP Talk에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든 회사의 문제는 SK컴즈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한 이야기 중 잘못된 것을 내게 이야기하면 된다. 진실을 잘 모르는 외부 사람에게 진실을 알려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외부 사람은 잘못된 진실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PEP Talk를 그냥 잘 알려진 혹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외부 사람이 SK컴즈를 방문해서 좋은 이야기나 떠들고 가는 자리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외부 사람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무엇이 잘못인지 대꾸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SK컴즈 IP로 추측되는 어떤 사람의 방어는 적절하다고 본다. 다만 그 분이 PEP Talk에 참석한 것인지 알 수 없고 왜 '1,400명이 뭐하고 있냐?'라는 짧은 문장을 확대 해석한 것인지 이해할 수는 없다.


PEP Talk 이전에 몇몇 회사에서 이와 유사한 강연을 한 적 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작년 이맘 때 다음에서 했던 강연이다. 이 강연에서 나는 한 가지 이야기를 거의 3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NHN을 주적으로 삼아라"가 그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왜 다음은 이 모양 이꼴인가?" "왜 다음은 1위하다 3위까지 밀려났나?" "왜 다음은 맨날 삽질하는 웹 서비스나 만들어 대는가?" 따위의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안다, 어떤 사람의 표정이 구겨지고 어떤 사람들이 졸고 있고 어떤 사람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듣고 있는지. 그래도 끝까지 이야기했다. 다음이 다시 1위가 되려면 "NHN을 주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당시 다음은 - 지금도 비슷하지만 - 1위인 NHN과 격차가 너무 컸고 주적(주된 적)으로 NHN을 삼기엔 무리수가 있었다. 그래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지가 무르면 목표 또한 그저 그런 것이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싸울 의지가 없으면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은 제로다. 그래서 충분히 문제가 될만한 주제라고 생각했지만 "NHN을 주적으로 삼으라"는 주제를 이야기했다. NHN을 박살낼 각오가 아니라면 무슨 생각으로 지금 일하고 있냐고 말했다. 1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주제를 이야기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또한 다음은 여전히 그런 전투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회사의 초청 강연에서 듣기 좋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 강연으로 밥벌이하기엔 좋다. 생업을 유지하기에도 좋다. 그러니까 "나"에겐 참 좋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좋은 것일까? 가당치 않게 내게 컨설팅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한 조언까지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 컨설팅에 대한 기본 관점은 듣기 싫은 이야기 속에 진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듣기 싫은 이야기를 가쉽으로 생각하지 않고 왜 그런 듣기 싫은 이야기가 존재하는지 연구하고 분석하고 조사하여 상세히 이야기한다. 그런 과정에서 그냥 내뱉는 이야기가 아니라 '듣기 싫은 이야기를 없애 버리는 방법'을 도출한다. 그게 내 컨설팅이 쓰리고 듣기 싫은 이유이자 단지 듣기 싫은 수준에서 끝내지 않고 대안을 도출하는 방법이다. 때문에 앞으로도 내 강연은 현업 컨설팅의 관점을 유지할 것이고 그건 변하지 않을 것이다. 밥벌이 좀 못해도 상관없다.


※ 이번 강연은 최근 구조조정 중인 상황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떠들썩한 사연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PEP Talk의 성격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된 분들이나 구고조정으로 인해 충격을 받고 있는 분들께 여러가지 오해를 살 수 있겠지만 - 잘리는 마당에 회사에 도움 주려는 강연인가? 혹은 사정도 모르면서 아이디어 제안하라는 식의 조언 하지 말라! 또는 너 같은 생각을 가진 경영자 때문에 이 따위 구조조정이 되는 것이다 - 어쨌든 이번 PEP Talk은 SK컴즈의 현 상황 중 구조조정에 대한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