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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내가 웹 서비스 컨설팅을 선택한 이유

2003년 말에 tracezone.com이라는 도메인을 등록하기로 생각했고 다음 해 1월에 등록했다. 그러나 실제로 회사 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컨설팅을 준비한 것은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2005년 이맘 때 였다. 2년 가까이 컨설턴트로서 자질을 갖추기 위해 공부하고 연구하며 몇몇 파트너와 함께 일을 해 왔다. 기존에 존재하는 컨설팅 회사들이 제공할 수 없는 상품을 제공하고 싶었기 때문에 지난 2년은 고난 그 자체였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정작 내가 팔고 싶은 컨설팅 상품의 핵심은 찾을 수 없었다. 단지 그 상품이 무엇인지 좀 더 뚜렷이 알 수 있었고 여전히 그런 컨설팅 상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그 사실을 수도 없이 확인했다. 그럴 때마다 컨설팅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처럼 이구아수 블로그에 "컨설팅"이라는 태그를 붙여 짧고 긴 글을 쓰며 스스로 위로하곤 했다. (이 글은 225번째 컨설팅 태그의 글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이런 질문을 한다,

- 컨설팅이란 무엇일까?
- 컨설턴트는 어떤 인간이어야 할까?

둘 다 존재론에 대한 질문이라 쉽게 답할 수 없고 설령 답이 나오더라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컨설팅을 진행하며 몇 가지 소중한 교훈을 얻었지만 여전히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구했다고 말할 수 없다. 아마도 이 질문은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다. 10년 전 "기획자"로서 사는 게 가장 내 본성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도 그랬다. 그 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 기획이란 무엇일까?
- 기획자란 어떤 인간이어야 할까?

이제는 웹 서비스를 컨설팅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질문이 더 복잡해졌다. 기획자이자 웹 기획자이자 웹 서비스 기획자이며 그리고 그런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컨설팅을 해야 하니까. 하나의 질문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해결되지 않은 질문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는 딜레마'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매우 힘든 질문을 해결하며 세상을 살아 간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고민은 계속 나온다. 새로운 고민이 생겼을 때 대개 새로운 고민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현재 갖고 있는 고민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고민을 받아 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고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인생을 그르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은 정 반대다. 어떤 고민 중 존재론적 고민은 답을 구하기 매우 힘들다. 때문에 존재론적 고민을 계속 하는 사람은 반드시 새로운 고민과 만난다. 그러나 그 고민을 새로운 고민이 아니라 기존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고민이다. 어떤 고민은 새로운 고민을 통해 해결된다는 진실을 많은 사람들이 받아 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고민을 회귀하여 반복하며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회귀하여 반복되고 그리하여 스스로 더 깊은 고통에 빠지게 만드는 고민, 그것은 인생을 병들게 한다. 전혀 인생에 도움되지 않는 고민의 방식이다. 어떤 고민이든 그것이 반드시 해결될 것이라 믿고 계속 반복하여 고민하며 자신의 삶과 대응하다보면 새로운 고민이 반드시 생긴다. 보통의 사람들은 "왜 고민을 반복할수록 새로운 고민이 생기는가?"에 대해 궁금해 한다. 기존의 고민이 해결되기 전에 또 다른 고민이 생기는 것에 대해 당황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이다. 고민은 또 다른 고민을 통해 해결된다.

내가 15살 때 가장 큰 고민은 부모님에 대한 분노였다. 또한 내가 왜 이런 가정에 태어나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내가 20살이 되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모순된 사회 구조였다. 정치와 경제와 문화의 뒤틀린 면을 급속히 보게 되었고 변혁과 투쟁으로 이것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내가 27살이 되었을 때 내가 세상에서 어떻게 돈을 벌어 먹고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과 취업은 별 관계가 없다는 현실에 당황했고 고민했다. 그리고 31살이 되었을 때 다시 나는 가정에 대해 고민했고 33살이 되자 먹고 사는 고민을 했고 지금은 과거에 했던 그 모든 고민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15살 이후 내가 했던 고민 중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인생의 고민에 대한 매우 본질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종류의 고민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고민은 내가 고민하는 것을 멈추는 순간 고민도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첫번째 고민은 내가 15살과 20살에 했던 고민이다. 부모님과 관계와 세상의 모순은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은 관계에 대한 고민이고 관계는 나와 부모님이라는 3명의 관계가 아니라 좁게는 가족과 형제의 관계에 대한 것이고 넓게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고 좀 더 넓게는 현재를 살아 가는 모든 사람에 대한 것이다. 내가 아무리 그 고민을 해결하려고 해도 결국 그 고민은 해결될 수 없다. 두번째 고민은 포기에 대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사람들은 첫번째 고민에 대해 깨닫게 되고 다양한 포기의 이유를 말하며 어쨌든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오래 전 어떤 책에서 '영원한 젊음'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 있다. 그 책은 '영원한 젊음은 내 젊은 시절 순수한 최초의 고뇌를 기억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어릴 때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그 의미를 이해한다. 포기하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기억해야 하고 반복해서 기억해야 한다. 그건 매우 힘든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곤 하지만 정작 그 시절의 순수했던 고민을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그 당시의 상황과 느낌을 반복할 뿐이다. 중요한 건 느낌이 아니라 기억이다. 느낌은 세월에 의해 변화하기 마련이고 자기 인생의 역정이 남긴 골에 의해 이리저리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억이 중요하다. 느낌과 감상이 아닌 기억은 항상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그런 기억이 분명히 존재할 때 미래가 있다. 망각의 흔적인 추억이 아니라 명확하고 뚜렷한 기억, 그것이 고뇌를 삶으로 연결시키고 생물학적 나이에 관계없는 영원한 젊음을 보장한다.

내가 웹 서비스 컨설팅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어릴 적 순수했던 시절의 고민을 평생 동안 간직하며 살고 싶었다. 13살 때부터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즐거웠다. 20살 때 세상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즐거웠다. 25살 때 인터넷을 통해 어쩌면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지구상 어디에 있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미칠 듯 즐거웠다. 그 즐거움은 새로운 고민을 만들었지만 나는 그 고민을 모두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였다. 즐거움은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요구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지금 나는 과거에 내가 경험했던 즐거움과 고민을 모두 받아 들이고 있다. 그래서 웹 서비스 컨설팅을 한다. 지금 내가 판단할 때 바로 이 직업과 이 일이 가장 현재적인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모든 소중한 경험과 고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내 직업을 사랑한다.


* 글의 길이와 덧글의 숫자는 반비례한다만... 이번 글엔 덧글 좀 달아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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