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guacu ONLY

웹기획자, 존재를 위한 조건

어떤 글에서 웹 기획자와 PM은 다르다는 이야기를 봤다. 맞는 말이다. PM은 PM이고, 웹 기획자는 웹 기획자다. 또 다른 글에서 웹 기획자는 전략적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봤다. 전략적 아이디어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 문제는 없다. 최근에 읽은 어떤 글은 웹 디자이너인데 웹 기획자의 자질도 있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봤다. 맞는 말이다. 웹 디자이너가 웹 기획자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조금은 자질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웹 기획자의 존재를 위한 조건은 뭘까? 이것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 사실 다 이야기하려면 손가락 아프다, 지금 써야 할 글도 밀려 있는데 - 무엇이 웹 기획자를 멀티 플레이어로 만드는 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웹 기획자가 전략 기획도 해야 하고, UX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고, 웹 코드도 좀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심지어 웹 기획자와 PM이 헷갈리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걸까? 이유는 3가지로 요약된다.

1. 업무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2. 유효 자원이 부족하다.
3. 싸구려 가짜 공부가 너무 많다.

업무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해당 업무 즉 웹기획이라는 것이 기획의 일부인지 웹 개발의 일부인지 정확히 규정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웹기획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업무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연구가 병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몇몇 대학의 커리큐럼에 웹기획을 언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실무 조직에서 웹기획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만든 커리큐럼이라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유효 자원의 부족은 말 그대로 "웹기획만 할 사람"을 뽑을 수 없는 업계의 현실과 관련 있다. 웹기획자가 개발 전략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인터페이스에 대해 안을 내 놓아야 하고, 마케팅이나 프로모션, 카피라이트에 대한 안까지 고민해야 한다. 사람이 없으니 할 수 없다고 현업에서는 말한다. 사람이 없으면 웹 서비스를 만들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이런 주장을 회사 사장에게 해 보자. 심각한 고민에 빠진 사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장의 고민은 바로 그 요구 - "웹기획자가 무슨 수퍼맨인가? 자원 없으면 웹 서비스 만들지 말든가!" -에 대한 것이 아니라 도대체 왜 내가 당신을 데리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세번째는 나 또한 문제의 일부 요인이 된 바 있다. 웹기획자를 위한 컨퍼런스나 단기 강좌가 몇 개 존재한다. 그나마 요즘은 자주 하지도 않지만 과거 몇 년간 이런 강좌가 있어 왔다. 웹기획을 위한 책도 몇 권 있다. 그나마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있어도 크게 도움 안되는 강좌와 서적이다. 웹기획자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이런 강좌나 서적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한 일년 일하고 나면 그 이후를 뒷받침할 교육 과정이나 서적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위 웹기획자로서 전문가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한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운이 좋아 훌륭한 웹 서비스를 만들었고 그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회사에 근무를 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웹기획자들은 그야말로 '자력갱생'의 길을 가는 수 밖에 없다.

이런 주요한 이유 때문에 오늘도 웹기획자들은 '존재를 위한 조건'에 고민한다. 도대체 뭘 더 배워야 하는지, 지금은 뭘 해야 하는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정확히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이런 저런 신종 용어나 웹 사이트, 트랜드에 휩쓸려 다니며 정작 해야 할 실무적 역량 강화에는 실패하곤 한다. 아마 웹기획자를 위한 실무적 역량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1. 현업의 본질적 측면을 공부할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만약 여러분이 G마켓의 웹기획자라면 오픈마켓과 경쟁사의 상황, 업계의 최신 솔루션 경향, 구매자의 구매 패턴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네이버의 웹메일 기획자라면 웹메일 자체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웹메일의 사용자와 최근 경향, 경쟁사의 동향, 사용자들의 요구와 개발 환경의 변화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 웹기획자는 웹기획 자체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지만 전문가가 되는 길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웹 서비스의 현업 지식과 노하우를 축적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말만 잘 하고 신기술만 잘 알고 프로세스만 잘 외우는 혁신 못하는 웹기획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웹기획자가 웹 서비스를 혁신하기 위해서 기초 지식을 확보했다면 그 다음은 현업의 무궁무진한 지식과 노하우의 영역을 학습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전문적 지식 - 웹 서비스 기획에 대한 지식 -을 기초로 현업을 혁신할 수 있다. 간단한 일 아닌가? 웹기획 몇 년 한 사람이라면 그 업에 대한 본질적인 이슈를 꿰고 있어야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회사에서 웹기획자를 뽑을 때 웹기획만 잘하는 사람을 뽑는가, 아니면 웹기획을 잘하고 현업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 통찰력이 있는 사람을 뽑는가?

사실 이건 웹기획자만을 위한 조언이 아니라 어떤 전문적 업무 기술을 갖고 있든 장기적으로 그 일을 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Iguacu ON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웹 서비스 활성화 기간  (3) 2007.05.15
기획의 공간과 시간  (3) 2007.05.09
NHN 북미 게임 포털, 이지닷컴(ijji.com) 리뷰  (2) 2007.05.06
댓글의 내재된 게임성  (2) 2007.05.05
스토리보드와 기획  (3) 2007.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