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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보드와 기획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과정에 기획이 개입되면 안된다. 스토리보드는 웹 서비스를 위한 설계도이며 설계도는 사람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To be의 현실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현재 설계도를 통해 머릿속에 있던 것을 구체화하여 개별적 상상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 스토리보드의 의미다.

(웹 서비스 기획 개론 - Chapter X : Make Storyboard)


매우 많은 회사에서, 혹은 프로젝트에서 스토리보드(Story Board)를 만드는 과정에 여전히 기획을 한다. 때문에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과정이 마치 웹 서비스 기획의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처럼 다뤄지곤 한다. 또한 스토리보드가 나오고 나면 마치 이제 남은 일은 단지 만드는 것 뿐이라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흔히 본다. 이런 일은 지금도 흔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매우 안타깝게도 완벽히 잘못된 생각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스토리보드는 단지 설계도에 불과하다. 설계도는 약속과 규칙의 나열이다. 설계도를 읽으려면 우선 그 약속과 규칙을 외워야 한다. 기획의 초반 단계에서 나름대로 상상하며 어떤 웹 서비스를 기획하던 사람들은 설계도를 보며 그것을 구체화해야 한다. 서로 다르게 상상하는 것은 설계도가 나오면서 인정되지 않는다. 때문에 설계도는 구체적이어야 하며 피상적인 표현이나 합의되지 않은 약속이 들어가면 안된다. 때문에 설계도를 그리는 과정 즉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과정에는 기획이 포함되면 안된다. 이미 작성된 개발 설계서와 상위 기획안, 상세 기획안, 화면 구성안을 기초로 스토리보드를 작성하기만 하면 된다.

스토리보드가 나왔다면 이제 그 설계도에 맞게 제작을 하면 된다. 이 단계에서 제작을 곧장 진행하지 않고 잠깐의 숙성 기간(period of incubation)을 거칠 수 있다. 숙성 기간 동안 프로토타입(proto-type)을 제작해 볼 수 있다. 물론 스토리보드를 쓰기 전에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이미 해당 서비스를 몇 번 제작해 본 경험이 있을 경우 적합하다. 숙성 기간 동안 설계도를 수정할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넣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동안 기획을 해서는 안된다. 스토리보드 제작은 기계적이며 논리적 프로세스에 해당한다. 전략 기획이나 사업 기획과 같은 상위 기획의 단계는 경험적이며 감성적 프로세스가 자주 등장한다. 이것을 구체화하고 체계화하는 것이 이 단계의 목적이 된다. 그러나 상세 기획(아이템 기획)을 거치면서 점점 기획이 구체화되고 어떤 시점이 지나면 더 이상 기획은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이며 기계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구체화된다. 그 구체화의 산물 중 하나가 바로 스토리보드다.

이렇게 되기 위해 전제 조건이 있다. 상위 기획이라 불릴 수 있는 것들이 이미 완성되어 있어야 하며, 각종 리서치가 충분히 진행되어야 하며, 상세 기획이 진행되어 있어야 한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십 페이지의 기획서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스토리보드는 이런 문서와 기획안에 따라 작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스토리보드 제작은 대부분 이전에 존재해야할 다양한 문서와 기획이 부족한 상태에서 제작하기 때문에 스토리보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기획이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스토리보드 일정은 점점 길어지고 스토리보드를 쓰는 중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 기존에 작성한 스토리보드가 쓸모없어 지는 경우가 많다. 스토리보드가 나올 때까지 다른 파트(개발, 디자인, 마케팅 등)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기다려야 하고 비용은 점점 증가한다.

스토리보드를 웹 서비스 기획의 끝으로 보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 스토리보드는 설계도를 만드는 과정이며 제대로 설계도를 만들기 위해 세부적이고 논리적이며 타당한 기획이 있어야 한다. 스토리보드는 기계적 과정이며 단기간에 작성되어야 한다. 스토리보드를 작성하는 과정에 새로운 기획이 포함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원칙을 지킬 때 기획과 설계 그리고 제작의 프로세스가 구분될 수 있다. 조화를 이루고 상승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구분되어야' 한다. 구분되지 못한다면 조화를 이룰 수도 없다.


* 지금 쓰고 있는 웹 서비스 개론에 대한 글 중 일부를 옮겨 왔다. 웹 서비스나 트랜드가 변화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인데 그 동안 많은 웹 서비스 기획자들이 너무 변칙적으로 웹 서비스를 기획해 왔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몰라서 그런 것이다. 책 한 권 쓰려는 생각이 아니라 그 동안 드문드문 이야기해 왔던 웹 서비스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다. 정리를 통해 또 다른 세계로 진출할 수 있기를 원한다. 멈춰 서서 과거의 경험으로 먹고 살기엔 나는 아직 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