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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집단지성과 아크로폴리스

웹 2.0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집단 지성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려 노력하곤 한다. 집단 지성에 대한 설명을 계속 읽다보면 마치 아크로폴리스를 꿈꾸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인간 개별 개체 지성의 총합이 개별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것이라는 전제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 논의에 참가한 사람들이 그 정도로 멍청하지 않기 때문에 개별 지성의 총합이 집단 지성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할 것이며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웹 2.0에 대한 논의는 정말 스스로 '철학'이라고 불러도 별 상관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왜냐면 이건 철학적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적 주제를 이야기한다고 그것이 철학일 수는 없다. 다만 철학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예전에 대학원을 다니는 어린 학생이 집단지성에 대해 긴 글을 쓴 것을 읽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웹을 통한 집단지성 혹은 웹 2.0에서 설명하는 집단지성을 마치 거대한 오버로드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1991년 가을에 북한 철학인 '주체사상' (키미즘이라고도 한다)을 담은 총서를 읽은 적이 있다. 주체사상은 주체의 3대 핵심으로 '당, 수령, 인민'을 이야기한다. 당과 수령과 인민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수령은 뇌수라고 표현한다. 즉 수령이 주체사상을 총화하여 구현한 핵심이라는 것이다. 주체사상은 '인민'이라는 집단지성을 인정하지만 인민 자체로는 어떠한 혁명적 일도 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때문에 수령의 영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주체사상을 공부한 후 이 부분이 의미하는 바를 말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군대를 다녀오고 부산을 떠나고 취업을 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생활 속에서 비로소 막연한 집단 지성에 대한 오해를 접었고 또한 수령에 대한 오해도 접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주체사상을 신봉하게 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사회학적 관점에서 수령이라는 것과 인민(집단적 자아)의 관계에 대해 철학적 입장을 정립할 수 있었다.

물론 주체사상을 말도 안되는 빨갱이 사이비 교리라고 믿는 사람이면 결코 내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웹 2.0의 집단지성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아크로폴리스와 수령론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집단지성에 대해 알고 싶다면.

덧붙여, 집단지성에 대해 논의하려는 사람들은 유럽의 시민혁명과 그것의 연장선에 있으며 또한 다른 역사를 갖고 있는 미국 시민 사회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그 공부는 한국 시민 사회에 대한 공부로 이어져야 한다.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네트(network)에서만 특별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사회학에서 개념을 차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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