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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만약 딸이 개발자가 되고 싶다 한다면?

학교 다녀와서 허락을 받고 게임 삼매경에 빠진 딸 아이를 보며 이 아이가 나중이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것이 개발자라고 하면 내 입장이 어떨까 생각해 봤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어떤 생각을 할 지 궁금했다. 주변의 몇몇 개발자에게 물어 봤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진짜 그렇게 물어 본 거야?"

"막아야지!"

"나쁠 건 없어. 근데 미국에서 하라고 그래."

예상한 대답이었다. 좀 더 다양한 반응이 보고 싶어 개발자들이 많이 출몰한다는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잠시 후 수 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가장 많은 대답은 

"반대!"

그 다음으로 많은 이야기는 "개인 취향은 존중하지만 영어 배워서 미국에서 취업하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대답은 연애에 대한 것이었는데 IT 업계에서 괜찮은 남자를 구하기 쉽다는 주장이다. 돈도 적당히 벌어 오고, 야근에 집에 못 들어 가고 주변에 여자도 없으니 훌륭한 작업장이라는 것. 하긴 내 주변에도 그런 경우가 많으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농담으로 시작한 생각이 점점 다큐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한국에서 개발자로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많은 것 같다. 현직 개발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생활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만약 내가 '개발자' 대신 '엔지니어'나 '기술자'나 '과학자'라고 단어를 바꿔 질문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대답은 그리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고 단언하고 싶지 않지만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매우 사적인 영역에서 질문했을 때 우리가 자신있게 이공계에 인생을 걸어도 괜찮아라고 대답할 수 있는 지 의문이다. 문득 학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이가 서울대와 카이스트 둘 다 갈 수 있다면 어디를 가야 할까요?"라는 이야기가 나온 적 있는데 참석했던 사람들 전원 "서울대"라고 대답하는 걸 보고 씁쓸했던 기억이 났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내 딸이 개발자가 되겠다면 나는 대환영이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 것이 뻔한 길을 걷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고민할 것이다. 내가, 우리가 알고 있는 피하고 싶은 그런 '개발자의 인생'을 내 자식이 반복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