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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여성 개발자에 대한 오래된 추억

오늘 "여자가 아니라 개발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길래 읽다
오래 전에 경험한 여자 개발자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1998년 후반 즈음일 겁니다. 제가 다니던 조그만 회사에서 덩치와 업력에 전혀
안 어울리는 큰 프로젝트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고객사가 대기업이다보니
DBMS를 오라클로 써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죠. 사장이 주요 개발자였던 상황이고
사장은 PHP, Mysql을 주업으로 해서 오라클 DBMS는 백지였죠. 
 
주변 사람들에게 오라클 DBMS 개발자 구인 요청을 구걸하다시피 했나 봅니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른 후 그 여성 개발자가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환영회하고
난리가 났죠. 일단 개발자도 없는 상황에 여성이라니 오직 남성만 가득했던
회사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금요일 회식이 끝나고 월요일에
출근하여 본격적으로 업무를 하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서 갑자기 사라지셨더라구요.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오라클의 새로운 기능을 교육하는 단기 교육 과정이 있는데
거기 교육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번에 프로젝트에 필요한 교육이라고 하네요. 일주일 정도...
돈도 이백만원 가까이 하는 그런 교육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 분이 다시 오셨죠. 한참 일을 하시더라구요. 맨날 회의도 하고... 저야 그쪽 프로젝트와
별 관계없는 일이라 관심없었죠. 복귀한 그 주 일요일 아침.
 
당시 저는 일요일에 혼자 나와 회사에서 노는 게 취미라서 그 날도 별 생각없이
일요일 아침에 회사 입구 엘레베이터에 있었죠. 어랏... 근데 그 개발자분이 출근을 하시네요?
 
"안녕하세요~ 일요일에 무슨 일이세요?"
"아, 두고 간 게 있어서 왔어요."
 
뭔가 이상했지만 같이 사무실에 들어가서 저는 채팅하고 놀기 시작했고 그 분은
뭔가 주섬주섬 챙기더니 인사도 없이 휘리릭 나가더라구요.
 
다음 날 아침... 출근했더니 회사 분위기가 장난 아닙니다.
평소 말이 거의 없던 사장은 어디에 갔는 지 보이지도 않고 
부사장은 상기된 얼굴로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있고...
 
오후에 이야기를 들으니, 그 개발자 분 메일로 퇴사 통보를 했답니다.
이유는... 일신 상의 사유.
전화는 받지 않고 잠수.
부사장이 열 받아서 그 달치 급여 분(10일 정도를 출근했죠)을 주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 달 25일 쯤 되어서 그 분이 메일을 또 보냈나봐요, "급여 안 주면 고발하겠다."고.
 
 
나중에 사연을 들어보니 그 개발자 분은
오라클 DBMS 교육을 하는 학원에서 갓 졸업한 분이었는데
인터뷰를 할 때 "잘 할 수 있다. 잘 배운다. 학원에서 프로젝트도 많이 했다"고 
뻥을 신나게 쳤더군요. 그리고 실제 프로젝트를 할 때 메신저를 열어 놓고 
쉼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코드 물어 보느라 정신 없었다고 하더군요. 
결국 교육 과정을 다녀왔지만 도저히 현재 프로젝트를 감당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
일요일에 와서 개인 물건 가져가고 잠수...
 
 
그 때 그 분이 하필이면 여성 분이라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주절주절 썼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 만난 여성 개발자 중 그분 같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아마 당시에 사장이나 경영진이 개념이 없었던 거죠.
그 개발자도 잘못이지만 그런 사람을 거르지 못한 경영진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쓰고 나니 여성 개발자 까는 글이라고 오해할 분이 분명 있을 것 같은데...
당시엔 그런 개발자 - 소위 학원 양산형 개발자 - 들이 꽤 많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에요. 그 여성 개발자 분 그런 일만 아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쉬워요. 강남 스타일인 분이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