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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약국갔다 도촬족으로 몰린 사연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다.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이해심 부족과 만연한 불신 풍조를 보여주는 사례라 이야기해 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변기에 던져 넣기만 해도...

오전에 병원에 들러서 처방전을 받고 병원 근처에 있는 여러 약국 중 가까운 곳에 들어갔다. 처방전을 건내고 약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코 앞에 붙은 조그만 광고 종이가 눈에 띄었다. 다른 약국이 다 그렇듯 이 곳도 손님이 기다리는 좌석 앞에 이런 저런 새로운 약품을 홍보하는 광고지가 붙어 있었다. 약국에서 직접 만든 듯한 다소 조잡하게 보이는 그 광고지에는 "대장암을 알 수 있는 약품"이라는 제목으로 재미있는 상품이 소개되어 있었다. 대변을 보고 실험지를 변기 안에 던져 넣기만 하면 대장암 초기 여부를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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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앞에 앉아 있던 약사에게 "이거 술집에서 홍보용으로 쓰면 좋겠는데요?"라고 말했다. 이뭥미?라는 표정으로 쳐다 보길래 "술집에서 10만원 이상 술 드신 분들께 건강 유의하시라고 내일 아침 변기에 던져 넣어 보라고 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약사도 키득 거리며 웃길래 좀 더 생각해보니 이런 저런 장난이 떠 올랐다. 진짜 그런 제안을 할 술집하는 사람은 없지만 블로그에 올리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약사에게 이 상품의 광고 전단지를 달라고 했다. 광고 전단지의 내용을 읽어 보니 변기 속에 피 성분이 있는 지 알아냄으로써 대장 관련 질환의 초기 증상을 알아 보는 실험지였다.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아이디어인 것 같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이 약국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니 첫 출발지였던 그 광고 종이 사진도 찍어둬야겠다 싶었다.

카메라가 없어서 아쉬우나마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오랜만에 작동해 보는 것이라 줌 동작을 찾을 수 없어 이리 저리 눌러 보다 광고 종이를 몇 장 찍는데 성공했다. 그 때 사건이 벌어졌다.



왜 사진 찍는 거에요! 기분 나쁘게!

약국 데스크에서 계산을 하던 직원 중 한 명이 내 앞으로 오더니 대뜸,

"손님, 지금 여기 사진 찍었죠?"

라며 따지듯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려다 가끔 식당에서도 사진 찍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에 여기도 사진을 찍으면 안되나 싶어 물어봤다,

"여기 사진을 찍으면 안되나요?"
"네, 기분 나빠요"

엥? 기분이 나쁘다니? 광고 종이 사진을 찍는데 왜 기분이 나쁘냐고 다시 물어봤다 대답은 똑같았다,

"사진 찍지 마세요, 기분 나빠요"

아무래도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아 당신을 찍으려고 했던 게 아니라 광고 종이를 찍었던 것이라고 해도 광고 전단지면 된 거지 왜 사진을 찍냐고 기분 나쁘다고 계속 언성을 높였다. 자신이 살짝 내 뒤로 돌아가서 봤는데 사진을 찍는 걸 확인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건 무슨 사람을 도촬꾼(도둑 촬영 : 허가없이 타인의 초상이나 행동을 찍는 행위)으로 몰아 대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어서 대꾸도 못하고 앉아 있으니 옆에서 중년의 남성 약사가 나서서 "저 친구가 자기 사진 찍는 줄 알고 그러는 것 같다"고 한다.

"광고 종이를 찍었다고 말했는데 이거 찍으면 안되는 건가요?"

라고 물으니 그런 건 아니라며 겸연쩍게 웃으며 이 상황을 그냥 내버려두고 뒤로 빠져 버린다. 히스테리컬한 표정으로 내 앞에서 쏘아 보고 있는 여성과 더 이상 말을 섞어 봐야 망신만 당할 것 같아 과감하게 한 마디 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라고 말했지만 속에서 내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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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그 여성은 내 앞을 떠나 다른 자리에서 계산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어이가 없는 마음과 점점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약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약이 나오자 약 복용법 설명도 제대로 듣지 않고 주섬주섬 약을 주워 넣고 나오며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있던 바로 코 앞에 앉아 있던 여성 약사에게 중얼거리듯 한 마디했다,

"내 참... 약 지으러 왔다 졸지에 도찰꾼 되 버리네..."

그러나 약사가 쥐 죽은 목소리로 조용히 "손님 이해하세요, 죄송합니다"라고 한다. 약국 문을 열고 나오며 도대체 뭐 이런 약국이 다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약국 내부의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다면 멋 모르는 나 같은 손님에게 주의를 주면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그 계산원의 오해처럼 자신을 도촬한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계산원이 나설 것이 아니라 메니저나 대표자가 나와서 나에게 이야기를 하는 게 맞았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계산원이 십여명의 손님이 있는 와중에도 그렇게 득달같이 달려든 것은 그 약국 주인 딸이거나 오늘 그만 두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덕분에 재미있는 포스팅을 쓰려고 했던 마음은 싹 사라져 버렸고 기분만 상해서 돌아와야 했다.



핸드폰 카메라 촬영에 대한 오해

가만 생각해보니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을 하다 이번과 비슷한 경우가 두 번 더 있었다. 한 번은 4년 전쯤인데, 귀가하는 길에 버스에서 새로 장만한 핸드폰의 카메라 모드를 테스트하느라 한참을 이리 저리 눌러 보고 있었는데 두 칸 앞에 앉은 어린 학생 둘이 "저 사람 우리 몰래 찍고 있나봐"라며 들으라는 듯 쑥덕이는 것이었다. 화들짝 놀라서 휴대폰을 내렸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런 행동을 한 내가 더 이상했다. 다른 한 번은 1년 전 쯤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예전에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다가 '카메라 아직 찍히기는 하나?'라는 생각에 바닥 방향으로 몇 번 찍었는데 찍다가 생각하니 사람들이 오해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앞을 보니 한 여성이 불쾌한 표정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공공 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잡히면 어떤 좋은 장면이 있어도 핸드폰을 꺼내는 일은 없었다. 특히 여성이 얼굴이나 몸의 일부만 따로 잡히는 경우 카메라도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번 일과 같은 경우를 당하니 아예 사진 촬영 기능이 없는 핸드폰을 사는 게 낫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사진 촬영 기능이 있으면 쓰고 싶고 쓰다 보면 이런 일과 만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나. 나처럼 사진을 잘 찍지 않지만 글을 자주 쓰는 사람들에겐 아무리 가벼운 디지털 카메라라도 핸드폰 카메라가 장면을 기억하기엔 편한데 그럼 이런 일이 필연적으로 벌어 지지 않겠나.

아마 어떤 사람들은 "나는 평생 그런 일 없는데 왜 너는 그런 일이 세번이나 있냐? 네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물을 수 있다. 혹은 "다른 사람들은 아무 문제없이 잘 쓰는데 당신이 재수가 없었던 것이다"라고 탓할 수 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부터 나는 핸드폰 카메라 사용 규칙을 더욱 강화하여 "화면에 사람 그림자라도 보이면 안 찍는다"는 규칙을 세울 작정이다. 이젠 찍을 것이라고 보도 블럭이나 꽃이나 변기 뚜껑 정도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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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문제

실제로 도촬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많은 지 알 수는 없지만 없는 건 아니다. 도촬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길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거나 몰래 신체의 일부를 찍어 비밀 게시판에 공유하는 경우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입는 여성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1년 전 이야기지만 청담동 일대의 대로에서 떼거리로 모여 앉아 지나가는 여성들의 사진을 공공연히 찍어대던 사람들도 있었다. 경찰이 와서 초상권 침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 '그냥 풍경을 찍고 있을 뿐이다'라고 둘러대던 장면을 TV에서 본 기억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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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끌 정신에 이런 놈들부터 때려 잡든가...>

그러나 이런 일부의 몰지각한 사람들도 인해 또 다른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사진을 전문적 주제로 다루고 있는 D모 사이트의 자유 게시판에는 한 때 '도촬에 대한 오해'에 대한 글이 올라와 큰 호응을 받은 적 있다. 당시 글에 의하면 출사 나가는 길에 도촬로 오해 받지 않으려면 항상 렌즈에 커버를 씌우고 있어야 하고 가능하면 가방에 넣어 두며 똑딱이 카메라(소용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다 보라는 듯 찍어야 하고 핸드폰 카메라는 주머니에서 꺼내지도 말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런 사건을 통해 느끼는 안타까움은 사회 구성원 상호의 불신이 생각보다 매우 깊다는 것이다. 아까 내게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였던 그 약국 계산원은 어쩌면 누군가의 도촬이나 몰카에 의해 큰 피해를 봤을 지도 모른다. 자신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이 그런 나쁜 기억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었던 것일지 모른다. 그렇게 이해하고 싶다. 이 글을 쓸 즈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 여성이 좀 더 이해심있게 사진을 찍지 말도록 권고하거나 광고 부분만 따로 찍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왕 지난 일이니 할 수 없지 않나.

나와 같은 오해를 받은 사람들의 입장에선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더욱 많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찍는데 무슨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식당에서 손님에게 사진을 찍지 말도록 부탁하면 그 말까지 그대로 옮겨서 결국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려 놓고 "이 딴 게 무슨 비밀이라고 사진도 못 찍게 하나?"라고 비아냥거리는 경우도 봤다. 비록 그런 사진에 대해 해당 식당이 고소를 하거나 항의를 하기는 어렵겠지만 바로 그런 과정으로 인해 식당은 사진을 찍는 손님들에게 억울한 마음을 갖게 된다. 만약 해당 식당이 영업이 잘 되지 않았고 그 이유가 음식에 대한 정보가 세어나간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이런 저런 이유를 찾다 결국 자기 허락도 없이 음식 사진 찍어 올린 바로 그 사람들을 탓하게 될 것이다.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은 비록 그 상황이 자신이 생각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고 아무런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아도 꼭 물어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우연히 사진을 찍히게 된다면 화부터 내지말고 정중한 태도로 다가가 사진에 자신이 나오면 곤란하다고 말하는 게 나을 듯 하다. 오해하고 오해 받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야 이미 핸드폰 카메라라는 문명의 이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쓴 사람들 때문이니 이제부터라도 그런 오해는 풀어야지 않나 싶다.

어쨌든 결론은 그 약국의 계산원도 마음 풀었으면 좋겠고 나도 오해는 잊기로 한다.






하지만 다음 번엔 그 약국 안 간다, 비싸더라.



난 뒤 끝 없어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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