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emo

한나라당 택시 기사 대 통합민주당 블루문

투표를 끝내고 회사에 와서 일을 하다 늦게 퇴근을 하며 택시를 탔다.











주절주절 비가 내리는 서울 시내를 달리는데 남궁옥분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오래된 가수인 남궁옥분에 대한 이야기를 택시 기사님과 나누다 큰 마음 먹고 오늘 투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 과거 경험을 미뤄 봤을 때 60세 가까이 된 택시 기사님과 정치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건 큰 모험이었다. 이런 이야기의 대부분은 기사님의 승리다. 더구나 나는 오늘 그야말로 죽 쑨 통합민주당에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작심을 하고 시작한 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늘 투표 하셨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투표를 했다는 기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슬쩍 이렇게 물었다,

"혹시 한나라당에 투표하셨어요? 전 통합민주당에 투표했어요."

나름대로 도발적이라 생각했던 질문에 대해 기사님의 대답은 생각했던 것과 다소 달랐다,

"인물 보고 계속 뽑았는데 이번엔 뽑을 인물이 없더군요. 한나라당, 민주당... 뭐 다 찍어 버리고 한나라당 찍었죠."

기사님의 대답에 잠깐 혼란스러웠는데 무슨 말인지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지역구 후보는 무효표(후보를 모두 찍어 버렸다는 말씀이었다)를 찍고 지지 정당은 한나라당을 찍었다는 것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 택시를 타고 오며 이런 저런 선거와 투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기사님과 이야기를 한 느낌이다. 나는 분명 어떤 후보를 찍었다고 이야기를 했고 나는 어떤 정당을 지지한다고 이야기했다. 기사님은 내가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과 다른 후보와 정당을 지지했고 투표를 했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내 입장에서, 그 기사님 입장에서 아주 반대되는 그런 후보와 정당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한 시간 가까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서로의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는 서른 일곱이었고 기사님은 예순 둘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가 했던 이야기 대부분은 "뽑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지하는 정당이 서로 다르더라도 기사님과 내가 사는 곳이 달랐기 때문에 지역구를 잘 보살필 국회 의원에 대한 생각은 같았다. 지역구를 잘 보살피고 그렇게 해 온 사람을 뽑고 싶었지만 이번에 그런 후보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나마 낫다는 사람을 뽑았지만 20년 가까이 그 지역에 산 기사님은 뽑을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낙하산으로 떨어진 사람을 뽑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 마음이었기 때문에 기사님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내릴 때까지 기사님과 18대 총선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내 아버지뻘 되는 연배의 기사님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분이었고 그 분이 그 당을 지지하는 기간만큼 나도 민주당을 지지했다. 그런데 우리 둘이 느낀 점은 지역구를 위해 손발이 닳도록 일할 후보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또한 믿고 지지할만한 각 정당의 후보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기사님은 어제 철야 근무를 하고 새벽에 집에 가기 전에 투표를 했다고 한다. 나는 회사를 출근하기 전에 투표를 했다. 우리 둘은 투표를 할 때 나름의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내가 뽑는 후보가 정말 최선일까? 내가 뽑는 후보보다 나은 사람이 없을까? 왜 우리는 항상 최선이 아니라 차선 혹은 차악을 선택해야할까?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길가에 내리며 기사님께 이런 인사를 했다,

"다음엔 더 좋아지겠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길 바란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한나라당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것에 대한 감사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나의 마음은 아프다. 그러나 내가 택시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평화로왔던 마음처럼 한나라당의 승리를 축하하고 싶다. 부탁하건데 한나라당의 의원들과 한나라당이 대화와 협력의 마음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나는 무작정 싸움이 싫다. 어쨌든 국민과 시민이 이런 선택을 한 것 아닌가. 한나라당은 그런 국민과 시민의 마음을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불안한 마음은 싫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택시를 타고 있는 동안 기사님과 싸움을 거듭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조용히 내릴 수도 있었지만 택시를 타고 있는 동안 계속 불안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이 보수적인 사람들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보수적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넓혀야 한다.

투쟁은 계속되어야하지만 투쟁을 위한 투쟁은 고려해봐야 한다. 한나라당의 압도적 의석수 확보를 축하한다. 축하한다. 정말 축하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분명히 이야기한다. 국민이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투표가 전부가 아니다! 이걸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이번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나올 수도 있다. 협박이 아니라 투표하지 않은 과반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말을 해봐야 당선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현재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사실 4년 전에 소위 정권 정당도 마음 놓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황당한 상황을 맞이하지 않았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고 또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싸움보다 협력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20년 이상 한나라당을 지지한 택시 기사님과 또한 20년 가까이 민주당을 지지한 내가 이야기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머지 않아 우리 - 그러니까 서로의 지지 정당이 다르더라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이 같은 사람들이 함께 할 이야기가 훨씬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공감대를 계속 만들어 간다면 어떤 정당이 되든 어떤 후보가 되든 어떤 대통령이 되든 대한민국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오늘 찍은 후보 혹은 정당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권한다. 그 선택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나 혹은 내가 지지하는 어떤 것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이 나라, 이 조국을 위한 것인가? 선거 이후를 생각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와 반대가 아니라 어쨌든 공생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