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emo

IT업계의 유유상종

세상 어디나 그렇겠지만 대한민국의 IT 업계 특히 웹 서비스를 만드는 업계는 유유상종 모임이 유난한 듯 하다. 유유상종, 같은 성격의 사람들이 같이 모인다는 말이다. 유유상종이라는 사자성어는 특별한 감성이 없지만 대개 나쁜 의미로 쓰인다. 지금 이야기하는 경우도 그렇다.

1996년인가 1997년인가 웹에 대한 어떤 모임이 있었다. 당시 웹(WWW)이 막 시작할 즈음이었고 그것에 대해 연구하고 특히 한국에서 웹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며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가 모여서 어떤 모임을 만들었다. 그 모임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처음에 꽤나 순수한 의도로 만들어졌던 그 모임은 점차 한국의 웹에 대해 의미있는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어떤 모임으로 변질되었고 나중엔 자기들이 만든 새로운 웹 서비스에 대해 서로 칭찬하고 밀어주는 단체가 되어 버렸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당시 그 모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변질된 상태를 말했을 뿐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순수한 의도를 왜곡했다고 말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정말 그들이 변질되었음을 느낀다.


그들은 닷컴 버블 이후 한 동안 물 밑으로 사라졌다가 최근 다시 나타났다. <웹 2.0>이라는 키워드가 대두되면서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비온 뒤 지렁이처럼 슬금슬금 나타났다. 도대체 지난 몇 년 간 뭘하고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웹이 어쩌구, 롱테일이 어쩌구, 시멘틱이 어쩌구하며 다시 나타났다. 내가 검증해 본 그들의 과거는 웹이나 롱테일이나 시멘틱과 별로 관계없는 '밥벌이'를 위해 열심히 살았었다. 그것조차 웹 생태계에 복무하는 어떤 일이었다고 그들은 주장했는데 매우 치졸했다.다시 나타난 그들은 <웹 2.0>에 대해 목소리 높여 이야기했고 웹 생태계에 대해 이빨이 흐늘거리도록 주장했다. 그리고 2008년이 되었다.


그들은 무슨 무슨 바코드니 무슨 무슨 오픈 디스커스니 무슨 무슨 코딩이니 하는 그럴싸한 제목으로 모임을 계속 만들고 있다. 그것이 한국 웹 생태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그런 모임을 만들고 새로운 사람들을 섭외하여 참여하게 만듦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철저히 믿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바보같은 인생의 대열에 또 새로운 바보들이 끼어든다. 바보들의 행진은 그렇게 반복된다. 옆에서 아무리 "그렇게 고민하는 건 좋지 않다"고 얘기해봐야 씨도 안 먹힌다.



지난 1월 24일 거의 18개월 만에 공개적인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60분 동안 발표를 하며 내 속에서 근질거리는 어떤 이야기를 참고 또 참았다. 결국 그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그 날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이런 멍청한 인간들아! 고객은 저 밖에 있고, 당신의 상사도 저 밖에 있고, 투자자도 저 밖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도대체 뭘 바라나?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당장 내일 일정을 포기하고 고객과 상사와 투자자를 만나길 바란다. 혁신은 발에서 나오지 뇌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 위대한 뇌를 왜 이 따위 강의를 듣는데 쓰고 있나?"


결국 나 또한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강의 후반에 이런 이야기를 하긴 했다,


"이런 저런 모임이 많습니다. 그런 모임에 참석할 시간에 고객과 더 만나길 바랍니다."


유유상종의 모임에 빠져들면 앞으로 자신의 회사 생활은 좀 편할 수 있다. 그런 모임에서 훌륭하고 가능성 있는 인물로 거론되면 회사 옮기긴 편할지 모른다. 그런 정도로 살고 싶으면 그렇게 행동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사는 게 별 의미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유유상종하지 말고 독야청청하라"고.

'Mem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웹 서비스 만들기  (1) 2008.02.18
블로고스피어에 대한 오해  (4) 2008.01.30
오픈(무료) 컨설팅을 하는 이유  (6) 2008.01.26
창조성과 프로세스  (2) 2008.01.22
해리포터식 면접의 기술  (5) 2008.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