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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오픈(무료) 컨설팅을 하는 이유

작년 8월말 (주)트레이스존이라는 법인을 만들기 2년 전부터 아무런 대가없이 컨설팅을 하곤 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당신도 나와 컨설팅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뭔가 이름이 필요했고 그래서 붙인 이름이 <Open consulting>입니다.





9월부터 시작된 오픈 컨설팅에 직접 회사로 방문하거나 이메일, 메신저, 전화 등을 통해 참여하신 분이 40여 회사와 개인이며 거의 100여 명에 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 오신 분들 대부분이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일 (공짜 컨설팅)을 하나요?"

90분에서 어떤 경우엔 120분을 넘겨 이야기를 하고 나면 대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상당히 난감합니다. 2007년 9월 오픈 컨설팅을 시작할 때 과거와 다른 새로운 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회사로 찾아 오시라"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아마 공짜 컨설팅을 해 준다는데 찾아가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 오픈 컨설팅을 할 때는 제가 그 회사로 찾아가곤 했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 회사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정확히 알려면 회사를 직접 찾아가는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 개인 사업자가 아니라 법인의 대표자로 일해야하기 때문에 매출과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는' 오픈 컨설팅을 계속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분도 "회사 업무 준비하는 것도 힘든데 왜 공짜 컨설팅까지 하냐?"며 반대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내 놓은 것이 내가 찾아가는 대신 상대방이 오게 한다는 것과 회사 일정이 빌 때 오픈 컨설팅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조건을 제시하며 내심 '아무래도 부담스러워서 신청하는 분들이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오픈 컨설팅을 신청하시고 본의 아니게 일정이 꽉 차서 다음 달로 미뤄지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오픈 컨설팅을 받으러 오는 분들이 결코 공짜 컨설팅을 받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를 방문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조정하고 다른 일을 미루는 노력을 하기 때문에 결코 공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업무 이후 시간 - 저녁 7시에만 오픈 컨설팅이 가능합니다 - 에만 오픈 컨설팅을 하겠다고 주장했다면 어땠을까요? 아... 찾아 오신 분들이 더 미안해 했을 수 있겠군요. 개인 시간에 공짜 컨설팅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을테니까요. 하지만 저 또한 업무 시간엔 영업과 관련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업무 외 시간에 오픈 컨설팅을 하는 게 마음이 편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업무 철학은 "업무 외 시간엔 놀아야 한다"라서 일부러 그런 조건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안한 조건에 맞게 자신의 일정을 조정하는 것 자체에서 벌써 오픈 컨설팅이 상대방의 어떤 노력의 결과이기에 공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방문하는 분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픈 컨설팅을 하는 또 다른 이유를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런 것입니다. 이런 이유를 설명할 때는 민망하기 때문에 스스로 얼굴이 달아 오르고 말을 더듬거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분명히 제가 오픈 컨설팅을 하는 이유입니다.


제 회사는 웹 서비스를 만드는 컨설팅을 합니다. 우리는 마치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그룹처럼 일합니다. 고객이 어떤 요구 조건을 이야기하면 그것에 맞는 웹 서비스를 제안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개발 사항을 만들어 내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코디네이션합니다. 만들어진 후 성공적으로 서비스가 운영되기 위한 지원도 합니다. 컨설팅의 원래 의미와 많이 다른 일을 합니다. 일 하는 법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일을 실제로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분석하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만드는 일을 더 잘 합니다. 이런 일을 하려면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끊이지 않아야 하고 우리 회사는 그런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팝니다.

그런데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끊이지 않으려면 뭔가 방법이 필요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저도, 우리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참신한 생각보다는 의례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저 열심히 생각하고 토론한다고 이런 세월의 무게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외부의 끊임없는 자극이 필요하고 그런 자극을 주는 요소 중 하나가 오픈 컨설팅입니다. 오픈 컨설팅을 공지하면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어떤 회사나 어떤 개인이 질문을 던집니다. 그 질문을 받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대안을 모색하며 기획과 아이디어의 칼날을 벼립니다. 누가 어떤 질문을 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평소에 사회, 문화, 정치, 경제의 다양한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하고 영역의 제한없이 스스로 공부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어떤 회사를 스스로 선택하여 만나기도 하고, 컨설팅 의뢰가 들어 온 회사나 사업 영역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기도 합니다. 이건 우리가 조정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오픈 컨설팅의 경우 일정은 우리가 조정할 수 있지만 주제는 제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웹 서비스만 컨설팅하지 마케팅 이슈는 모른다"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대답하기 위해 어떤 주제든 받고 이야기합니다.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을 통해 웹 서비스 기획자로서, 컨설턴트로서 기획과 아이디어의 칼날을 벼릴 수 있다는 것,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픈 컨설팅은 결코 공짜 컨설팅이 아닙니다.


아주 길게 오픈 컨설팅을 하는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짧게 줄이면 이렇습니다,

"오픈 컨설팅은 정말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제가 회사를 하는 동안 오픈 컨설팅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어 가고 그 나이에 맞게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걸리적거리는 것도 많아지고 고려할 환경의 변수도 증가합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환경 변수가 증가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변수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때문에 나이가 먹을수록 혁신하기보다는 정체하게 되고 변화보다는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좋아하게 됩니다. 기획자에게 그런 변화는 죽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웹 서비스를 만들어 내야하는 저는, 우리 회사는 그런 변화와 싸워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그 임무를 위해 오픈 컨설팅은 좋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3~4년 전에 어떤 웹 기획자 커뮤니티에서 "웹 기획자의 한계는 서른 다섯 정도인 것 같다. 그 이후 우리는 뭘 하고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 질문에 대답한 사람들은 대개 질문자의 견해에 공감하는 것 같았습니다. 서른 다섯 정도되면 머리가 굳어 버리고 기성 세대의 생각 이상을 하기 힘들고 새로운 젊은 세대가 치고 올라오니 기획자가 실무에서 아이디어를 내기엔 무리가 아닌가? 이런 견해 말입니다. 당시 이 질문과 그에 대한 댓글을 읽고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서른 다섯? 웃기네. 나는 죽을 때까지 혁신적인 웹 서비스를 기획할란다!"

이제 서른 일곱이 되었고 여전히 웹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으며 아직은 사람들이 제게 '저런 썩은 아이디어로 밥벌이하나?'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마흔이 되려면 4년이 남았고 쉰이 되려면 14년이 남았습니다. 어제 했던 이야기로 오늘 밥벌이를 하지 않고, 한 기업에 내 놓았던 아이디어를 다른 기업에 똑같이 팔아 먹을 생각도 없습니다. 매일 이렇게 살면 마흔이 되든 쉰이 되든 계속 웹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을 겁니다. 오픈 컨설팅도 계속 하고 있을 것이구요.



p.s : 세상을 살며 먹고 사는 것 외에 또 다른 어떤 일을 반드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일을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생을 두 번 살 수 없지만 인생을 다양하게 살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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