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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말과 글

말은 비교적 짧고 독립적인 정보의 나열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에 반해 쓰기는 다른 것들에 좀더 의존적인, 조금은 긴 정보들을 연결한다... (중략)

말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며 즉흥적으로 그 자리에서 보충하거나 다듬을 수 있다. 쓰는 것은 물리적으로 매우 느리지만 다시 쓸 수도 있고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신중하게 만들 수 있다. 읽는 것은 빠르면서 여러 번 다시 반복할 수 있고 읽는 이의 개인적 진행 속도에 따라 전달되는 내용의 양이 달라진다.

글은 대개 말보다 정보를 더 많이 담는데, 그 이유는 쓰기를 통해 재구성된 개념은 보통 10여 단어 이내에 압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지나치게 압축을 하지 않고 좋은 어법과 올바른 구두점을 사용하여 문장을 잘 다음어 나갈 줄 안다.

('언어와 타이포그래피' 중 63p, 칼스완. 2003년 커뮤니케이션북스)


블로그에 특히 글을 많이 쓰고 있기에 늘 블로그 자체에 대한 고민과 함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한다. 또한 컨설팅을 업으로 하고 있기에 말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한다. 때문에 글쓰기와 말하기의 차이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이 고민에 대해 최근 지인의 추천으로 보게 된 책에 좋은 답이 될만한 구절이 있었다. 150페이지 정도에 관련 이미지를 뺀다면 글의 분량은 그리 많지 않은 책이지만 일주일 넘게 읽고 있다. 짧은 글이라고 빨리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게 또 한 번 증명된다.

위에 인용한 부분에서 내가 느낀 또 다른 점은 컨설턴트의 자질에 대한 부분이었다. 컨설팅 업무는 대상과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듣고 하는 일과 조사하고 연구하고 토론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문서로 전환하는 일이 있다. 작년 말과 올해 초에 인턴과 신규 컨설턴트를 영입하기 위해 구인하고 면접을 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과거 회사에서 필요로 했던 사람과 컨설팅 업무를 위해 필요로 하는 사람이 확연히 다름을 정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블로그나 자기 소개서에 좋은 글을 쓴 사람을 인터뷰했지만 정작 말하는 부분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칼스완의 표현을 빌자면 컨설턴트는 "말을 자연스럽게 만들며 즉흥적으로 그 자리에서 다음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책의 후반부에 나오지만 이런 능력은 학습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것이기도 하다. 글 잘쓰는 사람이 말을 잘 하기도 한다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나 또한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많은 자리에서 발표를 할 기회가 있었고 웅변을 배우지 않았지만 - 8살 때 1년 배우긴 했다만 - 연극을 했기에 발음이나 억양에 대한 기본적인 훈련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대학에서 공부한 전공 학문의 특성에 토론의 논리성을 배울 기회가 있었고 사회 생활에서 기획을 하며 논리적 문장에 대해 공부할 기회도 있었다. 더구나 신규 사업을 기획하며 늘 새로운 사업에 대해 발표를 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표의 기술도 익히게 되었다. 오래전 인터넷과 웹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유즈넷의 토론 문화를 경험한 것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그런 기회에도 불구하고 현재 모습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어쨌든 배움의 기회에서 아주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웹 서비스 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걸 스스로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하는 말은 너무 즉흥적이고 내가 쓰는 글은 너무 진부하다. 내가 하는 말은 예가 너무 많고 내가 쓰는 글은 작위적인 경우가 많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못난 내 모습을 느낄 때마다, 이런 책을 통해 그런 상태를 확인할 때마다 해야 할 일을 발견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는 점이다. 자신의 못난 모습을 발견하여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바른지 파악하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인 '겸손함' 때문이 아닐까. 한 때는 언젠가 이런 과정이 끝났으면 싶었지만 지금은 이런 과정이 계속 되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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