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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실전 웹기획과 아카데믹 웹기획

실전 어쩌구의 제목을 듣자면 뭔가 시험과 관련되는 것 같다. 실전은 말 그대로 전쟁 용어다. 훈련과 대비되는 것이 실전이다. 굳이 군대를 다녀 온 사람이 아니더라도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이라는 표현을 들어 봤을 것이다. 웹기획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다. 실전 웹기획과 아카데믹 웹기획이 그것이다.

아카데믹(academic) 웹기획은 다른 말로 아마추어 웹기획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아카데믹 웹기획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래와 같은 세 가지 경향으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다,

- 프로세스 지향적
- 개념과 의미 지향적
- 경험 지향적

위 3가지 경향은 아카데믹 웹기획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며 대개 현업 경력이 적거나 상식 수준에서 웹기획을 하려는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웹기획과 관련한 몇몇 BBS나 블로그, 웹 사이트에 올라 온 글을 읽어 보면 이런 경향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프로세스 지향적인 경향은 웹기획이 웹 사이트나 웹 서비스 개발에 대한 조정과 균형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오류다. 실제로 웹 사이트나 서비스 개발에서 조정과 균형은 개발자 스스로 하는 경우가 많다. 웹기획자는 이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불필요한 문서 작업에 시간을 소모하는 경우가 흔하다. 프로세스 지향적인 웹 기획자 중 컨설턴트도 있는데 이들은 말과 대화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소위 오럴 엔지니어(oral engineer)라고 부르는 부류다.

개념과 의미 지향적인 웹기획자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웹기획자는 정말 아카데믹 웹기획자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웹 2.0의 정의를 찾기 위해 헤매고 다닌 웹기획자 중 다수가 이런 경향에 지배되고 있다. 개념과 의미는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코드 한 줄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부류다. 주로 안정된 기업에서 이런 부류의 웹기획자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기업 내부의 이런 저런 자원을 엮어 이런 저런 웹 사이트를 만들면 된다고 파워포인트 몇 장에 휘갈겨 기획안을 내는 사람들이다. 10장의 파워포인트 문서 중 8장이 개념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2장이 실질적인 기획안인 경우가 많다. 그나만 그 2장은 개발 그룹의 현황을 파악하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펴서 쓴 경우다. 개념과 의미 지향적인 웹기획자는 아카데믹 웹기획자 최악의 표상이다.

경험 지향적인 현상은 웹기획 자체에 대한 경험은 적지만 다른 부문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난다. 모바일 마케팅을 10년 가량 한 부장이 웹기획안에 대해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의문을 표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지적은 모바일 마케터의 경험에 의한 진솔하며 반드시 받아 들여야하는 지적일 수 있다. 웹기획자가 이런 지적을 참조할 수 있을 때 경험은 항상 아름답지만 문제는 지적이 아니라 지시인 경우다. 경험 지향적인 현상은 창업주가 웹기획에 관여할 때 극명한 문제로 나타난다. 창업주의 경험이 지적이 아닌 지시가 되는 바람에 누구에게도 쓸모없는 웹 사이트가 된 사례는 끝없이 찾을 수 있다.

이런 아카데믹 웹기획은 현업에서 웹기획이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한다. 누구나 HTML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웹기획을 할 수 있다. 이런 대명제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웹기획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문자의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브로셔 웹 사이트 정도라면 그나마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웹 사이트는 사업과 연계하여 어떤 식으로든 방문자와 커뮤니케이션을 발생시킨다. 웹기획은 몇 개의 문서를 웹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커뮤니케이션, 비즈니스가 연계되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에서 전문적인 기술이 있는 웹기획자는 실전 웹기획을 위한 기술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아카데믹 웹기획은 무용지물인가? 그렇지 않다. 아카데믹 웹기획은 웹기획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상식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실전 웹기획을 하려면 아카데믹 웹기획에서 요구하는 지식과 상식과 경험을 습득해야 한다.

실전 웹기획에서 감(feel)이 매우 중요하다. 누구든 '저 웹 사이트는 쓰레기같아'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전문 웹기획자가 말하는 '쓰레기'는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UI가 쓰레기인가? 비즈니스모델이 쓰레기인가? 만든 사람의 의지가 쓰레기인가? 사용자들이 모두 쓰레기라고 말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정확히 답할 수 있어야 전문 웹기획자라고 할 수 있다. 전문 웹기획자가 그런 증명을 매번 상세한 문서로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전문적인 식견에 기초하여 어떤 사안에 대해 즉각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 요구한다면 왜 자신이 그런 의견을 도출했는지 상세히 그리고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감은 다른 말로 통찰력(insight)라고 할 수 있다.

아카데믹 웹기획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사람들은 앞서 이야기한 3가지 경향을 반복하며 스스로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바는 실전 웹기획을 위한 경험과 상식과 지식을 쌓는 것이다. 아카데믹 웹기획은 책이나 쓰고 블로그에서 떠들어 댈 때는 쓸모 있을지 몰라도 실전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 실전 웹기획에 대해서는 그동안 정리된 문서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일부 특정 회사나 스스로 웹서비스를 만든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컨퍼런스나 웹에 올려 둔 자료가 있다. 이것도 어떤 경험에 대한 기술이라 배우는 웹기획자들이 참조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분명 실전 웹기획은 존재하고 그것은 아카데믹 웹기획의 다음 단계에 해당한다.

몇년 전 많은 웹기획자들이 "NHN은 어떻게 저렇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혹은 "싸이월드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에 대해 질문한 바 있다. 이런 질문이야말로 아카데믹 웹기획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미 성공한 웹 사이트를 분석함으로써 좀더 쉽게 자신들의 목적 - 자신들의 웹 사이트도 저들처럼 성공하는 것 - 을 이루려는 욕심이다. 그 예는 단지 그 도메인(domain)의 예일 뿐이지 자신에게 적용했을 때 똑같은 현상이 발생한다는 보장은 없다. 내가 이런 대답을 했을 때 또 다른 웹기획자들은 "성공 사례를 연구하고 참조하여 일반적인 트렌드라도 발견하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것 또한 아카데믹 웹기획의 전형이다. 그런 일반적인 트렌드는 굳이 NHN과 싸이월드를 분석하지 않더라도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닌가. 그걸 몰랐다면 공부를 더 할 일이다.

실전 웹기획은 웹 자체에 대한 공부보다 주변과 일상에 대한 공부를 훨씬 더 필요로 한다. 혁신적인 메신저 서비스를 기획하고 싶다면 MSN이나 네이트온을 벤치마크할 것이 아니라 메신저 API의 현황이나 IPTV나 커뮤니티의 덧글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실전 웹기획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반복해서 이야기하듯 실전 웹기획은 아카데믹 웹기획에서 요구하는 학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기도 전에 뛰려고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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