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guacu ONLY

미디어와 블로그

좀 전에 미디어 다음에 갔더니 뉴스 페이지의 왼쪽 테이블에 이은주 추모 페이지 배너가 보인다.

배너를 클릭해서 들어갔더니 몇 개의 주요 콘텐트로 구성된 추모 페이지가 나타난다. 페이지의 내용은 새롭게 작성한 것이 아니라 기존 이은주와 관련하여 미디어 다음에 등록되어 있던 기사와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지난 14일 내가 공급했던 추모 기사도 링크로 걸려 있다.

이은주 추모 기사는 내가 가장 먼저 쓴 것은 아니다. 2월 14일 데일리 서프가 내가 올린 포스트를 참조하여 작성한 기사를 확인하러 갔다가 이은주 관련 기사를 읽게 되었다.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벌써 1년이 다 된 것이다. 추모 기사를 쓸 생각은 없었지만 뉴스 검색을 해서 이은주 관련 기사를 찾아 보았다. 2월 14일 기준으로 2~3 개 정도의 이은주 추모 공연에 대한 단신만 올라와 있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작년 이맘 때 언론이 그토록 쏟아냈던 이은주에 대한 기사들, 이제 그들은 완전히 그녀를 잊어 버린 것일까. 그래서 한 번 다시 불을 질러 보기로 했다. 오후 7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은주에 대한 정보를 재수집하고 고민을 하던 중에 그녀에 대한 각종 루머를 다시 떠올리지 않고 추모를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의 필모그라피(영화이력)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밤 12시 가까이 되어서 글을 완료했고 이것을 미디어 다음에 송고했다.

30분 쯤 후에 미디어 다음 담당 기자가 배경 음악의 사용에 대해 저작권 관련 문제가 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불새'에서 이은주가 불렀던 노래였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었지만 권고에 따라 삭제했다. 그리고 10시간 가량 메인 페이지와 미디어 다음 Only에 노출이 되었고 약 38만 회의 조회와 1,300여 개의 추모 댓글이 기록되었다. 2월 15일 이후 약 10 개 (네이버 뉴스 기준)의 이은주 추모 관련 기사가 새롭게 생성되었다. 미디어 다음의 이번 특집 페이지로 인해 다음 주 초에는 이은주 관련 추모 기사나 특집 기사가 더 생산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게 상세한 내용을 기술하는 것은 블로거와 미디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은주 추모 포스트를 미디어 다음에서 대중에게 부각시켜주지 않았다면 내가 쓴 포스트 하나는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미디어 다음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포스트를 찾았을 때 그에 적절한 대응을 했다. 몇 주 전 김완섭 고소 사건에 대해 내가 보낸 포스트에 응답을 한 것도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사건은 이미 일주일 전에 발생을 했으나 기존 미디어는 사건의 발생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고소를 당한 네티즌들도 두려움에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런 네티즌 중 어떤 사람이 과거 내가 올렸던 김완섭 관련 포스트에 고소 사실을 알리는 호소를 했다. 나는 이것에 주목을 했고 곧 조사에 들어갔고 조사가 끝난 후 그 내용을 미디어 다음에 올렸다. 이 글은 미디어 다음 메인에 노출되었고 5,400개가 넘는 댓글이 붙었다.

작은 영향력의 미디어인 블로그가 큰 영향력의 미디어인 미디어 다음의 도움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증폭시킬 수 있었다. 미디어 다음은 그로 인해 주요 이슈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는 이런 것을 win-win 관계라고 불렀다.

고전적인 관점에서 개인과 미디어의 관계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뉴스의 공급자와 소비자의 관계이며 또 다른 하나는 호소하는 자와 선택하는 자였다. 블로그를 개인 미디어라고 볼 때 여전히 많은 블로그가 호소하는 입장에 있다. 기존 미디어는 그 호소를 취사 선택한다. 이런 고전적 관계가 계속된다면 블로그는 결코 개인 미디어가 될 수 없다. 블로거가 저널리즘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여전히 많은 개인이 블로그를 통해 미디어에게 호소를 할 것이다. 그러나 저널리즘을 가진 몇몇 블로그는 호소하는 대신 기사를 직접 생산할 것이다. 넘어가서는 안되는 이슈를 다시 부각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다. 기존 미디어는 이런 촉매제로 인해 불타오른 여론을 크게 증폭시키는 연료를 공급해 줄 것이다. 이것이 2006년 2월 현재 한국의 블로그와 미디어의 관계 중 하나다. 그리고 내가 경험하고 실험 중인 관계이기도 하다.


(네이버 메인 페이지의 사용자 콘텐트. 네이버의 입맛에 맞는 글만 선정해 올린다)

미디어 다음과 나는 지금까지 몇 가지 실험을 했다. 우리는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공식적으로 협의한 적도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손발을 잘 맞춰 협력을 하고 있다. 이심전심이라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과 내가 필요한 것이 우연히 적절히 맞아 떨어진 것이다. 나는 미디어 다음으로부터 어떤 댓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두 번 특종으로 뽑혀 지급받은 20만원의 다음 캐시는 아직 한 푼도 쓰지 않고 있다. 그들이 내게 동일한 기사를 돈을 지불하고 얻기를 원했다면 10배는 넘는 돈을 지불했어야 했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내 주장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 줬다. 그들은 내게 메인으로 뽑아 줄테니 더 좋은 기사를 달라는 제안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런 관계를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것이다. 블로거로써 나는 곽(frame) 속에 갖히길 원치 않는다. 그들은 내가 쓴 기사 속에 네이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도 그것을 그대로 옮긴다. 심지어 어떤 댓글에는 "왜 네이버 유명 블로그가 다음 메인에 자꾸 뜨냐?"고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그건 나도, 그들도 예상했던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정치적 지향점과 맞는 미디어를 찾아 뉴스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현재 한국 블로거들의 입장에서 너무 수준 높은 과제다. 그것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일단 관계와 파트너쉽을 정립해야 한다. 기존 미디어가 바라보는 블로그 혹은 블로거에 대한 관점을 실제 함께 일을 하고 뉴스를 공급하고 문제를 풀어가며 바꿔 나가야 한다. 자신의 블로그에 "기존 미디어는 문제 있어"라고 투덜거리는 것으로는 결코 인식과 환경은 바뀌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 그런 일을 해 주길 바랬다. 2년 반 동안 기다렸으면 충분한 것 아닌가?

유명한 사람만 혹은 전문적 지식이 있는 사람만 내가 하고 있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이 할 수 있다. 지금 블로그를 갖고 있고 스스로 블로거라고 생각한다면 언제든 기존 미디어에게 여러분이 쓴 것, 여러분이 본 것, 여러분이 느낀 것을 보낼 수 있다. 보낼 방법을 모르겠는가? 아니면 보내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가? 그런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는 것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목적이다.

오래지 않아 나보다 훨씬 훌륭한 블로거들이 다양한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들은 기자도 아니고 시민기자도 아니고 활동가도 아닐 것이다. 다양한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이며 또한 정치적 지향들도 다양할 것이다. 그들을 각종 미디어에서 자주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질에 대한 문제, 표현에 대한 문제, 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자주 발생할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변해간다. 누군가 도전을 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정말 실질적인 것이다. 관념과 상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이며 그것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해결되어가기 마련이다. 내가 어떤 일을 도전했고 그것에 성공했다면 그 이후에 내가 걸었던 길을 따라 오는 사람들은 보다 쉬울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걸었던 길을 부정할 것이다. 내가 지금 미디어와 블로거의 관계를 부정하듯 내 뒤를 이을 사람들도 내가 걸었던 길을 부정할 것이다.

세상은 부정을 통해 발전한다. 그것이야말로 알(egg)을 깨는 과정이다. 알을 깨뜨리고 나와야 비로소 새로운 세상과 만날 수 있다. 블로그는 대안 미디어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미디어이며 저널리즘이며 또한 생활의 기록이다. 우리는 꽤 훌륭한 도구를 얻었다.